심각한 경제 상황에 인민은행 잇달아 금리 인하…주담대 금리는 동결
증시 지원책도 발표…"더 강력한 부동산·소비 부양책 필요" 지적도
(홍콩=연합뉴스) 윤고은 특파원 = 중국 경제가 디플레이션(물가 하락) 국면 속 부동산·금융업계의 연쇄 채무불이행(디폴트) 위험, 수출 둔화와 미국의 압박 강화 등으로 전방위적 위기에 처하자 유동성 확대로 경기 부양에 나섰다.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은 21일 1년 만기 대출우대금리(LPR)를 연 3.45%로 0.1%포인트 인하한다고 발표했다.
다만 주택담보대출에 영향을 주는 5년 만기 LPR은 연 4.2%로 종전 금리를 유지했다.
이는 1년 만기, 5년 만기 LPR 모두 0.15%포인트 인하를 예상한 시장 전망치에 미치지 못해 유동성 공급 규모·위안화 환율 방어 등과 관련한 당국의 고민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기준금리인 LPR는 명목상으로 시중 주택담보대출 동향을 취합한 수치지만, 인민은행이 각종 통화정책 도구와 정책 지도 기능을 활용해 LPR 형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시중에서는 사실상 중앙은행이 LPR를 결정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로이터 통신은 인민은행이 "5년 만기 LPR은 동결해 시장을 놀라게 했다"고 전했다.
호주뉴질랜드은행(ANZ)의 중국 선임 전략가인 싱자오펑은 "(이는)놀라운 결과로, (중국의) 은행들이 아직 잘 준비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며 "우리는 다음 몇 달 안에 금리 인하가 이어질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고 블룸버그 통신은 전했다.
당국이 유동성 공급을 꾀하면서도 부동산 시장 부양에 대해서는 신중하게 접근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글로벌 부동산 컨설팅업체 JLL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겸 중화권 연구 책임자인 브루스 팡은 이날 인민은행의 예상보다 약한 금리 인하를 두고 "중국 당국이 부동산 시장 과열을 원치 않는다는 신호를 보낸 것"이라는 해석을 내놨다.
그러면서 당국이 이미 신규 주택담보대출 금리 인하를 위한 메커니즘을 채택했기 때문에 5년 만기 LPR을 조정할 부담이 줄어들었다고 설명했다.
싱가포르 OCBC 은행의 금리 전략가 프랜시스 청도 블룸버그에 "정책 입안자들이 주담대 금리 인하가 최선의 조치가 아니라고 판단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 15일 인민은행은 7일물 역레포(역환매조건부채권) 금리를 1.8%로, 1년 만기 중기 유동성지원창구(MLF) 금리를 2.5%로 각각 0.1%포인트와 0.15%포인트 인하한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시장에 총 6천50억 위안(약 111조원)의 유동성을 공급했다고 중국 매체들은 전했다.
인민은행은 이어 16일에는 7일물 역레포 계약을 통해 2천970억 위안(약 55조원)의 현금을 시장에 투입했다. 지난 2월 이후 단기 자금 투입 규모로는 최대다.
경기 하강이 예상보다 심각해지자 잇달아 유동성 공급 카드를 꺼내 든 것이다.
당국은 또 지난 18일 거래 수수료 인하 등 증시 지원책을 발표했으며, 금융기관들에 경제 회복을 위해 대출을 확대하라고 주문하는 등 갖가지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인민은행은 20일 금융감독관리총국, 증권감독관리위원회와 지난 18일 화상회의를 열어 실물경제 발전과 금융위기 예방 방안 등을 논의했다며 "주요 금융기관들은 책임을 지고 대출을 늘려야 하며 대형 국유은행은 계속 기둥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나 금리 인하를 통한 유동성 공급만으로는 지금의 중국 경제를 치료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중국 지도부가 '제로 코로나' 해제 이후 더딘 경제 회복에도 불구하고 대규모 부양책을 자제해온 상황에서 현재 문제의 핵심인 부동산 시장 부양과 소비자에 대한 현금성 지원 등 더 강력한 부양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UBS는 지난주 보고서에서 부동산 시장 안정을 위해 더욱 강력하고 신속한 부동산 정책의 완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JLL의 팡은 금리 인하가 수요 측면에서는 부동산 시장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지만 중국 금융 정책은 더 강력하고 목표가 정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금융 정책만으로는 현재 중국 경제가 처한 단기·중기·장기적 '3중고'를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고 짚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이날 발표된 금리 인하 폭은 충분하지 않으며 실질적 효과를 위해서는 더 최적화하고 강력한 정책이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온다"고 평가했다.
중국은 올해 '위드 코로나'로 전환한 후 일상 회복 효과를 기대했지만, 세계 경제 둔화 속 고강도의 제로 코로나 체제하에 3년간 누적된 문제들이 속속 고개를 들고 지정학적 긴장마저 고조되면서 적색경보가 켜졌다.
2008년 리먼 브러더스 사태와 같은 위기가 중국에서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중국의 7월 소매판매와 산업생산은 지난해 동기 대비 각각 2.5%와 2.7% 증가하는 데 그치면서 소비와 생산이 모두 부진의 늪에 빠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7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0.3%로 2년 5개월 만에 마이너스로 전환했다.
생산자물가도 10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지속하면서 디플레이션 우려가 현실화하는 흐름이 뚜렷하다.
당국은 경제의 성장 엔진인 수출이 부진해지자 내수 진작을 위해 온갖 '당근'을 꺼내 들었지만, 중국 소비자들은 경제 위기감 속 지갑을 잘 열지 않고 있다.
특히 국내총생산(GDP)의 25% 이상을 차지하는 부동산 시장의 침체가 심화하고 그 여파가 금융업계까지 번지면서 소비 심리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2021년 말 디폴트를 선언한 대형 부동산 개발업체 헝다(恒大·에버그란데)는 지난 17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 파산법원에 파산보호법 15조(챕터 15)에 따른 파산보호 신청을 했다.
중국 최대 부동산 개발업체 비구이위안(碧桂園·컨트리가든)도 지난 7일 만기가 돌아온 액면가 10억 달러 채권 2종의 이자 2천250만 달러(약 300억원)를 지급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어 지난 상반기에 최대 76억 달러(약 10조1천억원)의 손실을 냈다고 발표했다.
비구이위안은 지난 16일에는 상하이 증시 공시에서 채권 상환에 불확실성이 크다고 밝혔고, 홍콩증시 대표지수인 항셍지수는 다음 달 4일부터 항셍지수 종목에서 비구이위안의 부동산관리 회사인 컨트리가든서비스홀딩스를 제외한다고 18일 발표했다.
컨트리가든서비스홀딩스의 주가는 올해 72% 급락했으며, 18일에는 0.76홍콩달러(약 130원)에 거래를 마쳤다.
게다가 부동산 시장의 위기가 금융권으로 전이되면서 '그림자 금융'의 위기가 드러나고 있다.
그림자 금융은 은행처럼 신용을 창출하면서도 은행과 같은 규제는 받지 않는 금융기업이나 금융상품을 일컫는다. 중국의 그림자 금융 규모는 총 3조 달러(약 4천조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거의 주목받지 못하던 자산 관리회사 중즈(中植)그룹이 이제는 중국의 취약한 금융의 상징이 됐다고 블룸버그 통신은 짚었다.
관리 자산 규모가 1조 위안(약 182조원) 이상인 중즈그룹과 함께 계열 신탁회사들은 고객 수천 명에 대한 현금 지급을 중단한 후 집중적인 조사를 받고 있다.
SCMP는 "중국 그림자 금융 산업을 흔드는 유동성 위기가 더 넓은 금융 분야의 위기를 촉발하고 이미 약화한 중국 경제에 도전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고 지적했다.
경기 악화에 고용 시장도 얼어붙어 16∼24세 청년실업률은 지난 6월 21.3%로 사상 최고치를 찍었다. 이후 당국이 '통계 최적화'를 이유로 7월 청년실업률 발표를 돌연 중단해버리자 도대체 상황이 얼마나 안 좋길래 그런 것이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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