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청산' 앞세운 전령련 류진號…'정경유착 차단' 당면과제

입력 2023-08-22 13:06  

'과거청산' 앞세운 전령련 류진號…'정경유착 차단' 당면과제
60여년 이어진 '정경유착' 꼬리표 떼고 '환골탈태' 급선무
혁신안 구체화·실천역량 관건…4대그룹 실질적 복귀와 직결
'싱크탱크형 경제단체' 전환 과제도

(서울=연합뉴스) 김보경 기자 =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로 22일 새롭게 출범했다.
재계의 맏형이자 국내 최대 민간 경제단체라는 과거의 위상 회복에 시동을 건 모양새다.
당장 '초심'을 되새기는 차원에서 명칭을 바꾼 것은 물론, 싱크탱크형 경제단체로 전환하겠다는 혁신 방안을 밝힌 상태다. 특히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으며 과거를 청산하겠다는 각오다.
하지만 아직 선언에 불과한 것으로, 전경련 앞에는 정경유착 우려 해소를 포함해 혁신안을 구체화하는 것은 물론 이를 실천해 나가는 역량을 보여줘야 하는 무거운 과제가 놓여있다.
이는 삼성, SK, 현대차, LG 등 4대 그룹의 '실질적 복귀', 즉 전경련의 무게감과도 직결된다.
이날 전경련 회장으로 취임한 류진 풍산그룹 회장은 이 같은 '혁신'의 조타수 역할을 맡는다.
'한경협'이라는 공식 명칭은 내달 산업통상자원부의 승인 이후부터 사용된다.



◇ 정부-재계 소통이 '정경유착'으로…추락한 위상
전경련은 기업인들의 모임이라는 단체 성격상 태생부터 정경유착 논란을 피하지 못했다.
전경련은 1961년 8월 '시장경제와 자유경쟁이 작동하는 선진 자본주의 국가 건설'을 목표로 출범한 한국경제인협회를 전신으로 삼는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부정축재처리법을 만들고 이를 근거로 기업인들을 구속한 뒤 '공장을 세워 부정축재를 속죄할 것', '단체를 만들어 협력할 것'을 석방조건으로 내걸었다.
이병철 당시 삼성물산 회장은 이 조건을 받아들여 석방된 기업인 13명과 함께 경제재건촉진회를 조직했고, 곧 한국경제인협회로 이름을 바꿨다.
1968년 회원사가 160여개 기업으로 늘자, 일본경제단체연합회 등과 대등한 조직을 꿈꾸며 전국경제인연합회로 간판을 바꿨다.
이후 전경련은 국내 최대 민간 경제단체로 정부와 재계의 소통창구 역할을 했다.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구자경 LG 명예회장, 최종현 SK 회장, 김우중 대우 회장 등이 회장을 맡으며, 1988년 서울올림픽, 울산공업단지 건설 등 국가 프로젝트를 정부와 함께 추진한 것은 전경련의 성과로 꼽힌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각종 기금 갹출 등 전경련을 고리로 한 정경유착이 심화했다. 일해재단 자금 모금,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지원, 세풍 사건, 차떼기 사건 등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병폐는 박근혜 정부 시절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 출연금 문제로 곪아 터졌고, 결국 4대 그룹이 탈퇴하며 전경련의 위상은 급추락했다.
이후 전경련은 문재인 정부 들어 모든 행사에서 '패싱'되는 굴욕을 겪었다.



◇ 정경유착 차단한다는데…구체적 방안·장치 마련 급선무
전경련이 재계 '맏형'의 위상을 회복하려면 정경유착과 같은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는 것이 급선무라는 게 재계의 중론이다. 이는 곧 전경련, 나아가 류진 회장의 당면 과제이기도 하다.
앞서 전경련은 지난 5월 명칭 변경, 정경유착 차단을 위한 윤리경영위원회 설치, 산하 연구기관인 한국경제연구원의 흡수 통합을 통한 싱크탱크형 경제단체로의 전환 등을 골자로 한 혁신안을 발표했다.
문제는 이 같은 혁신안이 본격적으로 실천되는 단계가 아니어서 전경련의 혁신 의지에 대한 의구심이 가시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4대 그룹의 '실질적 복귀'에 물음표가 붙는 것도 이 때문이다.
최근 삼성의 전경련 재가입을 논의한 삼성 준법감시위원회는 "현재의 혁신안은 단순히 선언에 그칠 뿐이고 실제로 그것이 실현될 가능성, 그것을 실천할 의지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우려스러운 입장"이라고 밝힌 바 있다.
따라서 류진 회장이 이끌 전경련은 정경유착 차단을 위한 세부 방안 마련과 함께 실행 의지를 보여야 하는 상황이다.
당장 류진 회장은 이날 전경련 임시총회에서 신임 회장으로 추대된 뒤 취임사를 통해 "어두운 과거를 깨끗이 청산하고 잘못된 고리는 끊어내겠다"며 "윤리경영을 실천하고 투명한 경영 문화가 경제계 전반에 뿌리내리도록 솔선수범하겠다"고 혁신 의지를 다졌다.
정경유착 과거 청산이 그 시작점이 될 전망이다.
이와 관련해서 외부 인사들로 구성된 윤리경영위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견해가 나온다.
윤리경영위는 앞으로 전경련 집행부와 사무국이 추진하려는 특정 사업이 회원사에 유무형의 외압으로 작용할 소지가 있다고 판단되면 적정성을 심의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다만 부당한 압력을 원천 차단할 방법은 무엇인지, 단순한 협조 요청과는 어떻게 구분할 것인지, 압력이 현실화할 경우 대처 방안은 무엇인지가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않은 것은 문제로 지적된다.
또 윤리경영위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독립적 운영과 결정에 대한 구속력 부여가 필수적이라고 재계 관계자들은 조언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윤리경영위를 만들고 단순 권고만 하는 수준에 머무른다면 위원회 설치 자체가 유명무실해질 수 있다"면서 "정경유착 차단이라는 본래의 목적을 수행할 수 있도록 독립적으로 운영돼야 한다"고 말했다.

◇ '싱크탱크형 경제단체' 내세워…"조직개편 등 뒤따라야"
싱크탱크형 경제단체로 정체성 전환을 꾀하는 것도 단순히 발표 차원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경련이 새로운 목적성을 부여받을 수 있도록 정관에 역할을 명시해야 할 뿐만 아니라 단체의 정체성 확립을 위해 글로벌 네트워크와 인력 확보가 우선돼야 한다는 뜻이다.
전경련이 이러한 작업을 통해 글로벌 이슈에 대응하는 재계의 구심점으로 역할 할 수 있을 때만 4대 그룹을 비롯한 회원사들의 적극적 활동을 유도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견해가 많다.
전경련은 국정농단 사태를 거치며 250명에 달했던 직원 수가 80명으로 급감했고, 특히 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 박사급 인력은 25명에서 6명으로 줄었다.
성균관대 최준선 교수는 "전경련이 혁신적인 과제를 끌고 나가려면 증원 등 조직 개편이 필요하다"며 "싱크탱크형 경제단체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국내를 비롯한 외국 전문 인력과 강력한 교류와 연계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런 점에서 류진 회장이 싱크탱크형 경제단체로 탈바꿈하려는 전경련을 이끄는 데 제격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류 회장이 역대 회장들에 비해 중량감이 있다고는 할 수 없지만, 화려한 글로벌 인맥을 갖췄기 때문이다.
최근 한미·한일 관계가 강화되면서 서로 협력해야 할 경제 현안이 많아지고 있는 만큼 류 회장이 전경련의 '글로벌 경제 이슈 대응 강화' 등에 역할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적지 않다.


vivid@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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