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단체 "총·포로 수백명 살해"…사우디 '사실 아니다' 부인
유엔 "심각한 의혹"…사실이면 사우디 이미지 세탁 노력에 찬물
(서울=연합뉴스) 황철환 기자 = 사우디아라비아에 밀입국하려던 아프리카 빈국 출신 이민자들이 국경에서 무차별 학살됐다는 의혹이 진실 공방으로 흐르는 모양새다.
유엔과 국제 인권 단체들은 사우디아라비아 국경수비대가 이민자들에게 총을 쏘고 포탄을 쏟아부었다고 주장한다. 사우디는 이를 부인했지만, 미국은 전면조사를 촉구했다.
21일(현지시간) AFP 통신에 따르면 미 국무부 대변인은 "이런 의혹들에 대한 우리의 우려를 사우디 정부에 제기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사우디 당국이 철저하고 투명한 조사에 착수하고, 국제법에 따른 의무를 지킬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민자들을 살해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사우디 국경수비대는 미국 정부의 자금지원이나 훈련 등을 받은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미국은 아랍의 맹주인 사우디와 80년 가까이 동맹 관계를 이어오면서 군사협력을 유지해 왔다.
유엔도 우려를 표명하고 나섰다.
스테판 두자릭 유엔 대변인은 이날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가 발간한 보고서가 "일부 매우 심각한 의혹을 제기했다"면서 이런 상황이 "매우 우려된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유엔 인권사무소가 상황을 인지하고 있고 일부 접촉을 가졌지만 "(사우디) 국경의 상황을 확인하기가 매우 어렵다"고 덧붙였다.
앞서 HRW는 '그들이 우리에게 총알을 비처럼 퍼부었다' 제하의 보고서에서 사우디 국경수비대가 작년 3월부터 올해 6월 사이에만 최소 655명의 에티오피아 이주민을 살해했다고 밝혔다.
내전이 벌어지는 자국을 떠나 부유한 사우디에서 일자리를 찾으려던 이주민들에게 무차별 총격을 가하고 심지어는 포격을 가했다는 것이다. 이런 공격을 받은 이주민들 가운데엔 여성과 어린이도 다수 포함돼 있었다.
이들은 예멘 후티 반군과 연계된 밀입국 브로커를 통해 사우디 국경을 넘으려다 변을 당했다고 한다.
이런 의혹을 제기한 건 HRW가 처음이 아니다.
영국 BBC 방송에 따르면 유엔 조사관들은 작년 10월 사우디 정부에 서한을 보내 사우디-예멘 국경에서 사우디군에 의한 광범위한 살해 행위가 자행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서한에서 "사우디군이 국경 너머 이민자들에게 총탄과 포탄을 발사해 대규모, 무차별적으로 살해하는 조직적 패턴이 보인다"고 말했다.
당시 사우디 정부는 이민자를 조직적이고 대규모로 살해했다는 건 사실이 아니라면서 "당국은 이런 의혹을 확인하거나 입증할 정보나 증거를 찾지 못했다"고 밝혔다.
AFP 통신은 사우디 정부가 이날 HRW가 발간한 보고서와 관련해서도 "(이런 의혹은) 사실무근이고 신뢰할 만한 정보 출처에 근거한 것이 아니다"란 입장을 밝혔다고 전했다.
후티 반군 측도 HRW에 보낸 서신에서 아프리카 출신 이민자의 사우디 밀입국에 연루됐다는 의혹을 부인하면서 "(사우디 국경수비대가) 이민자와 예멘인을 고의로 살해한 사례를 알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이란의 지원을 받으면서 사우디 주도 아랍 동맹군과 내전을 벌여온 후티 반군은 이란과 사우디가 관계 정상화에 합의하자 동맹군과 휴전 협상을 진행 중이다.
한편 일각에선 이번 의혹이 경제 다변화와 여성 사회진출 확대 등으로 인권침해 국가라는 대외 이미지를 씻어내려는 사우디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사우디는 2018년 왕실에 대한 비판을 쏟아내던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가 주튀르키예 사우디 총영사관에서 피살된 사건을 계기로 서방 국가들과 상당한 갈등을 빚었으며, 최근에도 우크라이나 전쟁 대응과 석유 감산 문제 등으로 불편한 관계를 이어왔다.
hwangc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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