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방어선에 막혀 기갑 소모 커지자 '보병 중심 근접전술' 회귀
WSJ "도보로 이뤄지는 느리고 유혈낭자한 진격"
(서울=연합뉴스) 황철환 기자 = 러시아군에 들키지 않도록 미제 M2 브래들리 보병전투차에서 내린 우크라이나군 병사 5명이 나무그늘을 따라 수 시간을 걸어 러시아군 방어선에 접근한다.
참호에 뛰어들어 근접전투를 벌이던 이들은 러시아군의 반격이 시작되자 퇴각하지만, 포격과 드론(무인기) 자폭에 사상자가 속출한다. 멀쩡히 본진으로 돌아온 우크라이나군 병사는 3명이었다.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처럼 '도보로 이뤄지는 느리고 유혈 낭자한 진격'이 현재 우크라이나군의 대반격 작전이 진행되는 양상이라고 23일(현지시간) 전했다.
이 매체는 서방이 제공한 무기로 무장하고 훈련을 받은 우크라이나군 제47 독립기계화여단 1대대 2중대 소속 병사들을 취재해 이같이 보도했다.
당초 우크라이나군은 서방이 제공한 탱크와 장갑차 등으로 무장한 별도의 정예부대로 러시아군 방어선을 돌파, 자국 국경 바깥으로 침략자들을 몰아낸다는 계획이었다.
자원 입대자를 중심으로 구성된 제47 독립기계화여단도 이런 정예부대 중 하나다.
6월 초 우크라이나군의 대반격이 개시됐을 때 이 부대에는 자포리자주 오리히우를 거쳐 최단 거리로 아조우해까지 길을 뚫어 러시아군 점령지를 분단하는 임무가 하달됐다.
하지만, 라트비아와 독일에서 서방식 전투훈련을 받은 2중대 소속 병사들은 첫 열흘 동안 한차례도 브래들리에서 내려 전투를 치르지 못했다고 말했다.
익숙하지 않은 지형과 야간 장비 부족으로 길을 잃은 데다, 지뢰제거차량이 우크라이나군 지뢰를 잘못 밟아 파괴되는 등 혼란이 잇따라서다.
작년 말부터 수많은 지뢰를 매설하고 겹겹이 참호를 구축해 일찌감치 방어선을 보강한 러시아군의 저항도 예상을 훨씬 웃돌았다.
빗발치듯 쏟아붓는 대전차 로켓과 헬기에서 발사되는 미사일, 야포 사격 때문에 방어선에 접근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던 것이다.
여러차례 공세에도 별다른 성과 없이 손실이 누적되자 결국 우크라이나군은 전술을 바꿔야 할 상황에 직면했다. 탱크와 장갑차 소모가 감당 불가능할 정도로 커졌던 것이다.
이에 우크라이나군은 힘으로 방어선을 단번에 돌파하는 대신 이번 전쟁 초기에 그랬던 것처럼 보병 위주의 소(小)부대 전술과 근접전으로 전선을 야금야금 밀어내는 방식으로 전술을 전환한 것으로 알려졌다.
브래들리 보병전투차 등 장비는 아예 전투에 투입되지 않은 채 병사들을 옮기고 부상자를 후송하는 등 부수적인 용도로만 쓰인다고 한다.
WSJ은 대반격 작전을 벌이는 "(우크라이나군) 돌격분대들은 무더위 속에 탈수에 시달리며 수 ㎞를 걸어 참호에 몸을 숨긴 적과 마주하고 있다"고 현지 상황을 전했다.
입대하기 전까지 광부로 일했다는 23세 병사 '돈바스'(가명)는 지난달 17일 러시아군 참호 공략 중 유탄과 자폭 드론 공격에 동료 여럿을 잃었고, 퇴각하던 중에도 러시아군 전차포에 맞아 차량 바퀴가 망가지는 등 아슬아슬한 순간이 이어졌다고 말했다.
그는 지휘관들이 왜 그렇게 위험한 공세에 병력을 밀어 넣는지 의문이라면서 "우리 여단은 매우 의욕이 넘쳐서 누구도 '난 안 간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 하지만, 나갈 때마다 동료 병사가 죽거나 다치는 건 정신적으로 힘든 일"이라고 털어놨다.
hwangc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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