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원어민 겨냥 영작문 보조도구 개발 오승현 데이터비 대표
(서울=연합뉴스) 박세진 기자 =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해 영어로 쓴 글에서 문법적 오류를 잡아내는 작문 보조도구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 조사업체 '베리파이드 마켓 리서치'(VMR) 분석에 따르면 올해 약 12억 달러(약 1조6천억원) 규모로 추산되는 이 시장은 2030년에 65억 달러(약 8조5천억원)로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데이터비는 영어권 기업이 주류로 뛰는 이 시장을 공략하려는 한국 토종 스타트업이다.
미국 거대 기업 아마존에서 일했던 오승현(40) 대표가 비영어권 출신자들이 영어로 원활하게 의사소통할 수 있도록 돕는 도구를 개발·운영하는 회사로 창업했다.
데이터비는 AI 기반 자동 영문 교정 서비스인 피칸파이(Pcanpi)를 2021년 10월 출시한 데 이어 챗GPT의 API(응용 프로그램 인터페이스)를 활용해 성능을 한층 높인 엔그램(Engram)을 올해 초 선보였다.
엔그램은 영어 문장의 문법적 오류뿐만 아니라 어색한 표현까지 잡아 준다.
전체 가입 회원이 4만 명을 넘어선 가운데 국내외에서 월평균 1만명 이상이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엔그램은 영어(잉글리시)와 문법(그래머)을 합성한 브랜드명이다.
오 대표는 업무나 학업 때문에 영어를 써야 하는 세계 전역의 비영어권 출신 직장인과 학생들이 애용하는 도구로 엔그램을 키우겠다는 비전을 갖고 있다.
오 대표를 지난 21일 연합뉴스 공감스튜디오에서 만나 창업 얘기를 들었다.
오 대표는 어릴 적부터 영어 공부를 좋아했다고 한다.
중학생 시절 미국에서 2년간 조기 유학했는데, 그것이 영어에 자신감을 갖게 된 출발점이 됐다.
그 후로도 영어 공부에 매진해 연세대에서 경영·통계학을 이중 전공한 뒤 다국적 기업 보스턴컨설팅그룹에 들어가 2년가량 컨설턴트로 활약했다.
오 대표를 창업으로 이끈 단초는 미국 노스웨스턴대 켈로그경영대학원에서 MBA(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고서 3년 남짓 시니어 프로덕트 매니저로 일한 아마존에서 생겼다.
"기자 출신인 한 백인 상사가 제가 작성한 제품기획 문서에 빨간 줄로 다 긋다시피 하면서 문법 공부 좀 하라더군요. 서른이 넘었을 때였는데 그런 얘길 듣고 굉장한 충격을 받았죠."
원어민은 아니지만 평소 영어 잘한다는 말을 들어왔고, 실제로 영어 능력을 평가하는 토익(TOEIC) 시험에서 만점까지 받은 그였기에 이 해프닝은 뇌리에 깊게 박혔다.
"당시 도움받을 소프트웨어가 있는지 찾아봤어요. 영어권에서 이 분야 최대 기업인 그래머리 것을 써봤는데 생각보다 만족스럽지 않았어요. 그래서 내가 직접 만들어보자고 생각하게 됐죠."
오 대표는 아마존에서 삼성전자로 이직해 약 3년간 AI 음성비서인 빅스비 담당 부서에서 일하다가 평소 가슴 속에 품었던 꿈을 좇아 2018년 창업의 길로 들어섰다.
엔그램은 사용자가 영어로 작성한 문장을 입력하면 AI 알고리즘이 문법적 오류와 어색한 표현을 인지해 대안을 제시해 준다.
노트북이나 스마트폰으로 엔그램 홈페이지에 접속해 사용할 수 있다.
회원으로 가입하면 하루 300단어까지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유료 회원은 월 9천900원에 무제한 이용할 수 있는데, 현재 한 달간은 무료 체험이 가능하다.
오 대표는 "오타와 문법적 오류는 물론이고 문법엔 문제가 없지만 콩글리시처럼 원어민들이 듣기에 어색한 표현까지 찾아내 자연스럽게 고쳐준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룩 앳 더 빌로우 차트'(Look at the below chart)라는 문장은 자연스러워 보이지만 부사인 '빌로우'가 형용사로 잘못 사용됐는데, 이 경우 '룩 앳 더 차트 빌로우'로 바로잡아 준다는 것이다.
현재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쓰이는 영어 문법 검사 도구가 그래머리(Grammarly) 서비스다.
오 대표는 사용자가 입력한 문장을 무작위로 뽑아 자체적으로 진행한 성능 비교 시험에서 엔그램의 교정 성공률이 그래머리보다 15%포인트 높게 나왔다고 자랑했다.
엔그램에 대한 국내외 시장 반응을 물으니 "국내에선 조금씩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사용자가 늘고 있다"고 했다.
해외에선 아직 인지도가 미미한 상태라서 해외 마케팅 부문에 많은 투자를 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엔그램은 연내에 새롭게 태어난다.
생성형 AI 기술을 적용해 원래 입력한 문장을 다른 어휘와 문장 구조로 표현해 주는 패러프레이징 기능과 한글 작성 이력서를 토대로 영문 이력서 초안을 만들어 주는 기능을 탑재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패러프레이징 기능은 좀 더 수준 높은 영어를 쓸 수 있게 도와주고, 이력서 초안 생성 기능은 해외 취업이나 유학을 준비하면서 막막해하는 사람에게 유용할 겁니다."
오 대표는 번역 프로그램과의 경합 가능성에 대해선 상호보완적 관계라고 설명했다.
"많은 고객이 번역 프로그램으로 영어 초안을 만들고 검수·수정 과정에서 엔그램을 이용합니다. 그 이유는 번역 과정에서 동음이의어 같은 언어적 특성에 기인한 오류가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오 대표는 그런 배경에서 번역 프로그램에 엔그램 같은 작문 보조도구를 탑재하거나 작문 보조도구에 번역 기능을 추가하는 식으로 다양한 도구를 묶은 서비스가 앞으로 나올 수 있다고 예상했다.
데이터비에선 현재 오 대표의 대학 동문으로 공동창업자인 서원교 CTO를 포함해 모두 8명이 일하고 있다.
지금 단계에선 이처럼 작은 기업을 운영하는 오 대표이지만 포부만큼은 원대하다.
글로벌 영어 작문 보조도구 시장에서 가장 큰 기업으로 꼽히는 그래머리를 벤치마킹 대상이자 경쟁업체로 보고 있을 정도다.
2009년 영문법 검사 소프트웨어 개발업체로 출발한 미국 스타트업 그래머리는 2021년 약 17조원대 기업 가치를 인정받아 2천600억원 규모의 투자를 받았다고 한다.
오 대표는 당근마켓에 초기 투자한 스트롱벤처스 등에서 3차례에 걸쳐 유치한 자금으로 사업 기반을 다지고 있다며 올해부터 급성장을 이루어 5년 이내에 IPO(기업공개)를 실현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parksj@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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