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시선] 빛바랜 옛소련의 영광…실패한 달탐사와 우크라戰의 '데자뷔'

입력 2023-08-25 07:07  

[특파원 시선] 빛바랜 옛소련의 영광…실패한 달탐사와 우크라戰의 '데자뷔'
러, 우주선 이상 징후에도 착륙 강행…서방 제재 탓 부품난에 횡령 의혹까지
'옛 영광 재현' 같은 목표로 시작된 우크라전도 졸전 거듭, 경제까지 '휘청'


(이스탄불=연합뉴스) 조성흠 특파원 = 47년 만에 야심 차게 추진한 러시아의 달 탐사 계획이 '루나-25' 탐사선의 달 표면 추락으로 막을 내리고 말았다.
25일 외신에 따르면 러시아의 이번 도전은 심(深)우주 진출을 위한 교두보로서 달 남극을 선점하려는 미국, 중국, 인도와의 경쟁과 맞물려 추진됐다.
아울러 미국과 함께 우주 경쟁을 선도했던 러시아가 1976년 이후 거의 반세기 만에 달 탐사에 재도전한 것으로서 국제사회의 시선이 집중됐다.
우주 강국을 자부해온 러시아로선 이런 중요한 도전에 실패한 데다, 러시아의 실패로부터 불과 사흘 뒤인 지난 23일 인도가 같은 시도를 성공시킴으로써 체면을 단단히 구기게 됐다.
실패 원인을 두고 여러 분석이 나오는 가운데 러시아 연방우주공사(로스코스모스)는 옛소련 붕괴 후 우주 개발 프로젝트가 오랜 기간 중단된 것이 가장 큰 이유라고 밝혔지만, 러시아가 직면한 구조적 문제와 고질적 병폐가 집약된 결과라는 평가가 나온다.
러시아 우주연구소의 나탄 아이스몬트 수석연구원은 리아노보스티에 "추락 이전부터 장비 이상 징후가 있었지만 담당 관계자들이 착륙 지시를 내렸다"고 말했다.
러시아의 유명 우주 블로거인 비탈리 에고로프는 로스코스모스가 달 남극 도달 경쟁을 벌인 인도에 앞서고자 서두르느라 경고를 무시했을 수 있다고 풀이했다.
지난해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본격화한 러시아에 대한 서방의 제재 역시 이번 탐사 실패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러시아는 제재로 인해 무기화가 가능한 각종 물자 반입이 제한되면서 우주선의 핵심 부품 조달이 어려워졌고 서방과의 기술 교류도 제한됐다.
이번 루나-25 프로젝트에서도 로스코스모스는 유럽우주국(ESA)으로부터 착륙에 필요한 카메라를 제공받기로 했으나, 전쟁 발발 이후 해당 제휴는 무산됐다.
또한 로스코스모스는 기술 교류 제한 탓에 서방 제품보다 2배나 무거운 항행 기기를 자체 개발해야 했고, 이에 따라 프로젝트가 연기된 것은 물론 탐사선의 적재량도 줄어들었다.
일각에서는 정부 예산 횡령을 위해 애초 설계한 것과 다른 값싼 부품이 사용됐을 것이라는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
이런 여러 난맥상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에서는 탐사를 계속해야 한다는 주장이 자성의 목소리를 압도하고 있다.
이번 달 탐사를 우주 경쟁의 승리로 선전하던 러시아 국영 TV는 탐사선 추락 이후 이를 애써 축소하고 있으며, 일부 매체는 탐사선이 여러 데이터를 전송한 것을 근거로 이번 프로젝트가 완전한 실패는 아니었다고 평가했다고 AP는 전했다.
로스코스모스의 유리 보리소프 대표는 국방력과 과학주권 보장을 위해 달 탐사가 여전히 중요하다면서 "2027년 예정된 다음 임무는 성공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친정부 정치평론가인 세르게이 마르코프도 "이번 루나-25 참사의 결과는 심각하다"면서도 "국민도 국가도 패배를 변명하는 약자가 아니라 승리하는 강자와 함께하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옛 소련은 1957년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1'에 이어 1961년 세계 최초의 유인 우주선 '보스토크-1'까지 쏘아 올리면서 미국을 앞설 정도로 우주 경쟁의 절대 강자로 인정받았다.
이 같은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겠다는 것이 목표였다는 점에서 이번 루나-25 프로젝트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같은 야망을 공유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우크라이나 침공은 시작부터 전개까지 많은 점에서 루나-25 프로젝트를 떠올리게 한다.
위험 징후에도 프로젝트를 강행한 루나-25처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의 저항 의지와 능력을 과소평가하고 전면 침공을 벌이는 오판을 저질렀다.
서방의 제재는 우주선 부품 조달만 어렵게 한 것이 아니라 러시아 경제 전체를 휘청이게 하고 있다.
러시아군은 부패와 무능의 늪에서 졸전을 거듭하고 있지만, 크렘린궁은 '특별군사작전'의 모든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호언장담을 되풀이하고 있다.
루나-25와 이번 전쟁이 다른 점이 있다면 루나-25는 실패로 결론이 났지만 전쟁은 아직 진행 중이라는 것 정도다.
따라서 전쟁의 결과를 예상하려면 루나-25의 사례를 참고하는 것이 도움이 될 듯하다.
지난 20일 로스코스모스는 "루나-25가 계산되지 않은 궤도로 진입했고, 달 표면에 충돌해 소멸했다"고 밝혔다.
josh@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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