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아나 대통령, 유럽 노예 무역상 후손들에게 배상 촉구
(서울=연합뉴스) 이도연 기자 = 19세기 카리브해 가이아나에서 수천 명의 노예를 부렸던 백인 농장주의 후손들이 조상의 업보를 대신 사과했다.
25일(현지시간) AP통신과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19세기 가이아나에서 수천 명의 노예를 소유했던 영국인 설탕 농장주의 후손들이 이날 가이아나를 찾아 조상이 지은 죄에 대해 사과하고 "노예제는 반 인류 범죄"라고 언급했다.
노예 농장주이자 영국 정치인이었던 존 글래드스턴의 후손인 찰스 글래드스턴은 다른 친척 5명과 함께 조상의 죄를 사과하기 위해 가이아나를 방문했다.
그는 가이아나 대학에서 연설을 통해 "우리 조상들이 이 범죄에 연루된 것을 인정하며, 깊은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다"며 "가이아나에서 노예가 됐던 분들의 후손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노예제도가 많은 사람의 일상에 계속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고 덧붙였다.
이번 사과는 이르판 알리 가이아나 대통령이 "유럽 노예무역 상인의 후손이 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촉구한 직후 이뤄졌다.
전날 알리 대통령은 대서양 횡단 노예무역과 아프리카 노예 매매에 연루된 이들에게 반인도적 범죄에 대한 사후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과거 노예무역의 대상이 됐던 카리브해 국가들은 영국을 상대로 배상금 청구 소송을 검토하고 있다.
찰스 글래드스턴은 이날 사과와 함께 자신의 일가가 가이아나에서 여러 프로젝트를 위한 기금을 조성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영국 정부는 배상을 요구하는 카리브해 국가들과 의미 있는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글래드스턴이 연설한 가이아나 대학 강당 밖에서는 일부 시위자들이 "살인자"라고 소리치거나 '글래드스턴 일가는 살인자들이다', '도둑맞은 사람들, 도둑맞은 꿈'이라고 쓴 팻말을 들었다.
시위를 주도한 세드릭 카스텔로는 이번 사과를 형식적이라고 비판하며 영국 등 유럽 국가들이 가이아나와 다른 카리브해 국가들에 수십억달러의 배상금을 지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영국 정부와 다른 국가들은 노예무역을 통해 이익을 얻었고 그 후손과 상속인들도 마찬가지"라며 "그들은 우리에게 빚을 지고 있고, 그 유산은 미래 세대에도 이어질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글래드스턴의 연설 현장에 알리 대통령 등 고위 정부 관계자는 아무도 참석하지 않았다.
알리 대통령은 글래드스턴의 사과를 환영하며 "글래드스턴 가문은 조상인 존 글래드스턴이 소유했던 데메라라 등 플랜테이션 농장에서 노예제도로 이익을 얻었음을 인정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존 글래드스턴은 19세기 자메이카와 가이아나 데메라라에서 대규모 설탕 농장을 운영했다. 1823년 그의 농장에서 노예들의 반란이 일어나자 이를 잔인하게 진압해 노예 수백명이 살해당했다.
존 글래드스턴은 1833년 노예제 폐지 이후 노예 소유주로서 대규모 보상금까지 받았다. 그의 아들은 영국의 총리를 4차례나 지낸 윌리엄 글래드스턴이다.
dy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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