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국채·달러 기축통화 지위 등 거시경제 분야에서 中협조 절실
방중 러몬도 미 상무장관, 협력 플랫폼 구축에 주력
(서울=연합뉴스) 이우탁 기자 = 미국 상무부가 지난 2월 발표한 지난해 미국과 중국 간 교역액은 6천906억 달러(약 870조원)였다. 이전 최대치였던 2018년의 6천823억 달러를 4년 만에 갈아치운 것이고, 전년 대비로는 5.0% 증가했다.
대중국 상품 수출액은 1천538억 달러(약 203조원)로 역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수입액은 5천368억 달러(약 710조원)였다.
지난해 조 바이든 미 행정부가 반도체 등 첨단기술 분야에서 중국 상대로 수출 규제를 강화했음에도 양국 전체 상품 교역규모는 오히려 확대된 것이다.
세계 최강국 미국은 그동안 도전국 중국에 대해 전방위적 견제와 포위에 주력했다. 특히 당초 경제 분야에서 공급망 등 분리 정책인 디커플링이 심화하면서 교역규모가 줄어들 것으로 전망됐으나, 정반대 현상이 벌어진 셈이다.
이 통계는 이른바 신냉전으로 표현되는 미국과 중국의 갈등 양상이 과거 미국과 소련 간의 냉전과는 다른 속성을 내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과거 냉전 시절 미국과 소련은 군사와 경제, 이념의 영역에서 철저히 분리되어 있었다. 반면 미국과 중국은 여전히 긴밀히 연결돼있으며, 특히 경제 분야에서는 그 밀접성이 두드러진다.
대표적인 것이 미국 국채 동향이다. 중국은 도널드 트럼프 전 미 행정부의 중국 압박 강도가 높아지자 미국 국채를 대량 매도하기 시작했다. 한때 1조3천억 달러(약 1천720조원)에 달했던 중국 보유 미 국채 규모가 최근에는 8천500억 달러(약 1천125조원) 수준으로 줄었다.
흥미로운 것은 중국이 미 국채 매도 규모를 줄이는 시점인 지난 4월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의 존스홉킨스 대학 연설이 나왔다는 점이다.
옐런 장관은 "미국은 중국과의 디커플링을 원하지 않는다. 그것은 재앙적인 결과를 초래할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과 중국 경제는 너무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공생의 길을 찾을 필요가 있고,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연설 이후 미국 고위급 인사들이 연이어 중국을 찾았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에 이어 옐런 재무장관이, 그리고 존 케리 기후변화 특사가 뒤를 이었다.
이를 통해 미중 관계는 대결 위주에서 벗어나 일단 숨을 고르는 단계로 접어들었고, 양국 간 고위급 대화채널이 가동됐다.
이번에 방중한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장관과 왕원타오 중국 상무부장 간 28일 회담은 미중 관계의 현주소를 잘 표현한 것으로 평가된다. 양국은 무역 문제를 다룰 새 실무그룹을 구성한다는 데 합의했다.
새로 구성될 무역 문제 실무그룹에는 미중 양국 정부 관계자들과 민간 부문 대표들이 참여한다. 1년에 두 차례 열릴 미중 무역 실무그룹은 차관급이 참여하며, 첫 회의는 내년 초 미국에서 열릴 예정이다.
러몬도 장관은 회담 뒤 양국의 정보 교환은 "미국의 국가 안보 정책에 관한 오해를 줄일 플랫폼"을 만들어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미국이 경제 분야에서 중국의 협조가 필요해졌다는 것은 앞에서 언급한 국채 문제를 보면 확인할 수 있으며, 러몬도 장관의 이번 방중은 이를 위한 것이라고 관측하고 있다.
국채 문제뿐 아니라 달러의 기축 통화 지위 유지를 위해서도 미국은 중국의 협조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패권경쟁을 벌이는 미국과 중국이 어느덧 고위급 소통채널을 강화하고, 협력을 모색하는 이런 현상은 신냉전의 새로운 양상으로 평가되고 있다.
미중 관계의 수면 아래의 변화 흐름을 제대로 파악하고 대응하는 것이 한국의 새로운 과제로 부상하는 양상이다.
lwt@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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