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방법원 판사 "증거제출 의무 안지키고 '립서비스'만 해"
줄리아니측 "FBI가 가져가서 제출 못해…사법무기화 사례" 반박
(뉴욕=연합뉴스) 이지헌 특파원 = 2020년 미국 대선 개표 과정에서 조지아주 선거 사무원이 개표 조작에 가담했다고 음모론을 제기한 루디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이 명예훼손으로 인한 손해배상 책임을 져야 한다고 미 연방법원이 판단했다.
손해배상액은 이어지는 재판에서 배심원단이 결정할 예정이다.
3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타임스(NYT)와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워싱턴DC 연방지방법원 베릴 하월 판사는 이날 줄리아니 전 시장을 상대로 제기된 명예훼손 사건의 증거 개시 절차에서 그가 증거 제출 의무를 어기는 고의적인 불법행위를 저질렀다고 결론내렸다.
하월 판사는 결정문에서 "줄리아니 전 시장은 증거 개시 절차에서 의무를 준수하겠다고 립서비스만 했다"며 "선거에서 편법을 동원하면 형사처벌 위험이 수반되는 것처럼 증거 개시 절차의 생략은 제재를 수반한다"라고 말했다.
미국 사법제도에서는 본 재판에 앞선 증거 개시 절차에서 양측 당사자가 상대방이 보유한 증거와 자료 등을 서로 공개하도록 요청할 수 있도록 한다.
이 과정에서 줄리아니 전 시장 측이 개표 조작 허위 주장 유포의 빌미가 됐던 핵심 증거물의 제출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앞서 2020년 대선 당시 조지아주 선거 사무원이었던 루비 프리먼과 섀이 모스 모녀는 자신들이 개표 조작에 가담했다는 허위 주장을 퍼뜨려 명예가 훼손되고 트럼프 지지자들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당했다며 2021년 줄리아니 전 시장을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했다.
이날 하월 판사의 결정으로 줄리아니 전 시장은 프리먼 등에게 명예훼손에 따른 손해배상 의무를 지게 됐다.
구체적인 배상액은 오는 11월부터 내년 2월 사이에 열리는 재판에서 배심원단이 결정하게 된다.
조지아주는 지난 대선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이 막판 대역전극을 펼쳐 대선 승리에 결정적인 발판을 제공한 지역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조지아주 대선 개표 결과를 뒤집기 위해 주 국무장관에게 전화해 "1만1천780표를 찾아라"라고 압박해 기소된 바 있다. 줄리아니 전 시장도 이 사건 공범으로 함께 기소된 상태다.
한편 프리먼과 모스 모녀는 이번 결정에 대해 "우리 명예를 회복하고 삶의 피해를 복구하기 위한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라며 "하지만 오늘 결정으로 여기에 한 걸음 가까워졌다"라고 말했다.
반면 줄리아니 전 시장 측은 이날 성명에서 "사법절차가 곧 처벌이 되는 사법 시스템의 무기화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반발했다.
연방수사국(FBI)이 휴대전화 등 모든 전자기기를 압수해 가서 증거물을 제시하지 못 한 것뿐이라는 게 줄리아니 전 시장 측의 설명이다.
p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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