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 주입한 '무늬만 민주주의'에 젊은층 불만 임계점"
중·러·신흥국 세력확대…서방, 군사정변에도 무기력 노출
(서울=연합뉴스) 신유리 기자 = 니제르에 이어 가봉에서까지 군부 쿠데타가 시도되면서 아프리카에서 서방 입김이 약해졌다는 진단이 나온다고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이 3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서방이 이들 국가에 절차적 민주주의를 안착시키고 영향력 확대를 추진했으나 현지 젊은층에게 번영과 기회를 제시하는 데 실패해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니제르와 가봉은 각각 수십년에 걸쳐 프랑스 통치를 겪은 뒤 '포스트 식민 정권'이 들어서 민주주의 국가를 표방했다.
그러나 이들 정권은 국가 구성원이 함께 풍요를 누리는 실질적 민주주의를 이루지 못해 그간 젊고 도시화한 인구의 불만을 키워왔다.
가봉 인구의 절반은 프랑스 식민지 시절을 겪은 세대지만, 현재 평균연령 중간값은 21세에 불과하다.
이는 니제르, 차드, 말리, 부르키나파소 같은 프랑스 식민지 중 가장 젊은 축에 속하는 것이다.
가봉에서 군부가 대통령을 감금하고 과도 지도부 구성을 발표하는 등 쿠데타를 선언하자 거리에서는 환호가 쏟아졌다.
군인들이 TV에 나와 "우리가 권력을 장악했다"면서 대통령 축출을 선언하고, 군중은 거리로 쏟아져 나와 쿠데타를 지지하는 구호를 외쳤다.
WSJ은 니제르에서 지난달부터 이어지고 있는 쿠데타 정국에 더해 이번 사태도 아프리카에서 익숙한 상황이 됐다고 짚었다.
지리적으로는 니제르와 가봉은 닮은 점이 거의 없는 국가다.
가봉은 원유, 망간이 풍부하고 울창한 숲과 야생을 보존한 곳으로 아프리카에서 부유한 나라 중 하나로 꼽힌다.
니제르는 사하라 사막 남부 사헬 지대에 있는 데다 이슬람 세력이 활개를 치면서 불안이 커지는 상황이다.
정치적 배경도 사뭇 다르다.
가봉에서 1967년부터 봉고 일가가 사실상 정권을 승계해오고 있으며, 니제르에서는 2021년 선거로 당선된 모하메드 바줌 대통령이 있다.
하지만 1천900㎞ 떨어진 두 국가에서 한 달여 만에 나란히 군부 쿠데타 시도가 터진 데에는 비슷한 배경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WSJ은 그 공통분모로 아프리카에서 행사하던 서방의 영향력이 예전 같지 않다는 점을 들었다.
가봉은 특히 프랑스 식민지 시절을 지나 현재도 프랑스와 긴밀한 협력 관계를 유지해왔다.
그런 면에서 이번 쿠데타는 서방이 음모를 사전에 차단할 만큼 압력을 가하는 데 결국 실패한 것으로 해석된다.
아울러 이는 아프리카에 불어닥친 세력균형의 변화 조짐이 반영된 것으로도 관측된다.
최근 중국, 아랍에미리트(UAE), 튀르키예 같은 신흥국가가 아프리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미국과 유럽보다 커졌다.
러시아 또한 일부 아프리카 국가에서 용병기업 바그너그룹을 내세워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이번 정변은 미국과 유럽이 사헬 지대(사하라 사막 남쪽 주변)에서 알카에다, 이슬람국가(IS) 등의 극단주의 무장세력에 대응하던 중에 터졌다.
그사이 가봉은 최근 몇년간 우선순위에서 배제된 듯한 우방 취급을 받았다.
실제로 가봉 치안과 안보를 지원하던 프랑스군 주둔 규모도 2009년 당시 1천100명에서 350명으로 줄었다.
newglas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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