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자 유족 도쿄서 기자회견…일본 정부에 진상 규명과 반성 촉구
(도쿄=연합뉴스) 경수현 기자 = "간토(關東) 대학살은 결코 100년 전의 문제가 아니다. 전쟁 범죄를 사죄하지 않는 일본은 언제든 제노사이드(종족 학살)를 다시 저지를 수도 있다."
간토대지진 100주년을 하루 앞둔 31일 당시 희생자들의 유족이 일본 도쿄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진상 규명과 일본 정부의 반성을 촉구했다.
1923년 9월 1일 일본 수도권인 간토 지방에서 지진이 발생하고 벌어진 혼란 속에서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탔다', '방화했다'는 유언비어가 퍼지면서 일본인 자경단이나 경찰, 군인 등에게 수천 명이 억울하게 살해됐다.
당시 비극적인 사건의 전개에는 계엄령을 선포한 일본 정부의 책임도 적지 않았던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하지만 100년이 지나도록 진상 규명조차 이뤄지지 않는 데 대해 유족들은 이날 슬픔과 분노의 감정을 토해냈다.
큰집 할아버지가 당시 희생을 당했다는 조광환(63·경남 거창군 위천면)씨는 "희생당한 큰할아버지 소식은 당시 살아남은 후배에 의해 전해졌다"며 "유족들의 슬픔은 현재 진행형"이라고 말했다.
그의 큰할아버지 조권승 씨가 숨진 사실이 전해진 뒤 가족들은 항상 일본 쪽을 향해 묵념을 하며 제사를 치러왔다고 그는 전했다.
그러면서 얼마 전 손자며느리의 장례식을 치러 이제 큰할아버지의 남은 직계 가족은 증손자와 증손녀 2명뿐으로, 유족들은 여전히 힘겨운 삶을 살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일본이 지난해 '국가안전보장전략' 등 3대 안보 문서를 개정한 점을 지목하며 "일본은 이제 전쟁 가능한 국가가 됐다. 간토 대학살은 결코 100년 전의 문제가 아니다"라면서 "전쟁 범죄를 사죄하지 않는 한 일본은 제노사이드를 다시 저지를 수 있다"고 말했다.
외할아버지가 희생당했다는 권재익(67·경북 영주시)씨는 "일본 정부는 진상 규명과 사과, 유족 배상을 하고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와 강력한 협상을 시작할 것을 요청한다"고 말했다.
그는 외할아버지 남성규씨가 1923년 9월 5일 일본 군마현 후지오카경찰서에 대피해있다가 자경단들에 의해 끌려 나와 학살당했다며 사망 장소와 일시 등이 기록된 제적 등본을 증거 기록으로 제시했다.
그는 후지오카 경찰서에 대피한 조선인 노동자 17명이 당시 자경단에 살해당한 '후지오카 사건'의 희생자 중 한명이 자신의 외할아버지라고 확신하고 있다.
당시 38세이던 외할아버지가 숨지면서 당시 그의 처와 어린 남매는 청천벽력처럼 가장을 잃었다고 그는 말했다.
간토대지진 당시 외삼촌이 희생당했다는 재일 교포 2세 김도임(88·여)씨는 "어머니가 살아 계실 때 오빠의 억울한 죽음을 슬퍼하던 모습을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당시 33살이던 그의 외삼촌 박덕수씨는 일 처리를 위해 도쿄로 향했다가 연락이 끊기고 행방불명됐다고 한다.
이날 기자회견 자리에는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문제를 여러 편의 다큐멘터리로 다뤄온 재일동포 영화감독 오충공 씨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권태윤 변호사 등도 함께 했다.
권 변호사는 간토대지진 100년을 맞은 한국 사회의 분위기를 궁금해하는 일본 기자들을 상대로 여야 국회의원 100여명이 '간토 대학살 사건 진상규명 및 피해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을 발의하고 시민 사회단체에서도 여러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위안부나 강제징용 문제에 비해 진상 규명이 부족했고 이에 대해 한국 사회도 반성해야 할 점이 있지만 일본 정부에 큰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대응 방안으로 일본 정부에 소송을 제기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어 앞으로 일본 법학자들과도 가능성을 논의해갈 것"이라고 말했다.
eva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