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하지 않는다' 프랑스어판 출간 맞춰 파리 방문
차기작으로 서울 배경 '겨울 3부작' 준비…"이후 개인 관심사 쓸 것"
(파리=연합뉴스) 송진원 특파원 = "역사적 사건을 소설로 쓴다는 건 단지 과거의 일을 쓰는 게 아니라 인간 본성을 들여다보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주 4·3사건을 모르는 프랑스 독자들도 잘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소설가 한강이 '작별하지 않는다'의 프랑스어판 출간을 기념해 프랑스 파리를 찾았다.
현지 출판사 '그라세'와 주프랑스 한국문화원이 마련한 '독자와의 대화'에 앞서 연합뉴스와 만난 한강은 "'학살'은 아주 많은 곳에서 오랜 시간에 걸쳐 반복되는 역사이고, 그런 점에서 보면 보편적인 주제"라며 "인간은 서로 연결돼 있고 이해할 수 있으니 이 책도 잘 받아들여질 거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제주 4·3 사건을 세 여성의 시선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소설가인 주인공 경하가 손가락이 절단 사고를 당한 친구 인선의 제주도 집에 가서 인선의 어머니 정심의 기억에 의존한 아픈 과거사를 되짚는 내용이다.
'작별하지 않는다'가 해외에서 번역돼 출판된 건 프랑스가 처음이다. 한강에게도 "되게 반가운 소식"이었단다.
'채식주의자', '희랍어 시간', '바람이 분다, 가라' 등 적지 않은 한강의 책이 앞서 프랑스어로 번역돼 현지에 출간됐다.
'작별하지 않는다' 속 주인공 인선과 정심은 제주 출신이라 제주 방언이 상당한데, 이를 현지 출판사는 어떻게 번역했을까.
한강은 "방언을 어떻게 번역했는지는 저도 수수께끼인데, 프랑스어를 못 읽어서 어떻게 했는지 궁금하다"며 웃었다.
한강은 '작별하지 않는다'를 두고 한국 출간 뒤 가진 온라인 간담회에서 "지극한 사랑에 대한 소설"이라고 표현했다.
한강은 "처음엔 경하가 주인공인 것 같다가, 이후엔 인선, 나중엔 정심이 진짜 주인공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정심의 이야기를 쓸 때 그 사람의 삶, 투쟁, 용기를 많이 생각했다"며 "지극한 사랑에 대한 소설이라고 할 때 가장 염두에 둔 인물은 정심"이라고 조곤조곤 설명했다.
소설 속 정심은 제주 4·3사건으로 부모를 잃고, 생사를 알 수 없는 오빠의 흔적을 찾아 세월을 보낸다. 오빠가 집단 학살의 희생양이 됐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유해라도 찾을까 싶어 고령에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학살 현장을 찾아다니기도 한다.
한강은 "정심은 애도를 종결하지 않고 끝까지 투쟁하지 않나. 기억을 끝내지 않고 끝까지 작별하지 않는 사람이었다고 생각한다"며 "나의 세계도 살고, 내가 사랑하는 존재의 삶도 사는 것처럼. 그런 지극한 사랑을 말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작별하지 않는다'의 배경엔 처음부터 끝까지 눈이 내린다.
한강은 "지구는 물의 행성이라 계속 순환하지 않나. 바다, 구름, 비와 눈이 다 순환하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눈은 침묵과 소리, 삶과 죽음, 환상과 현실 사이에 계속 내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눈은 다른 차원으로 들어가게 해주는 힘이 있다고 생각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눈이 내리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프랑스 일간 르몽드는 이 책을 두고 "꿈과 현실을 구분할 수 없는 소설"이면서 "미약하고 연약할지라도 삶을 선택하는 과정을 담은 교훈적인 소설"이라고 평가했다.
한강은 "다른 제 소설처럼 이 소설도 인간의 폭력성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결국은 소설 마지막에 촛불을 밝히는 것처럼, 그 밝음을 향해, 빛을 향해 가고 있는 소설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강은 '작별하지 않는다'에 앞서 광주 5·18 민주화 운동을 소재로 한 '소년이 온다'를 냈다.
그는 "역사적 사건을 쓰겠다고 결심했다기보다 저의 내면을 계속 들여다보니까 인간 본성에 대한 질문이 항상 남아 있었고, 그 질문을 더듬어 가는 과정에서 쓰게 된 책"이라며 "앞으로 역사적 학살에 대한 얘기를 더 쓸 것 같진 않다. 다 쓴 것 같다"고 말했다.
다음엔 어떤 작품으로 독자를 만나게 될까.
그는 "서울을 배경으로 한 '조금 이상한' 이야기 3편을 모아서 이르면 내년 겨울 3부작으로 내게 될 것 같다"며 "그 이후엔 좀 개인적인 관심사에 대해 쓰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한강의 개인적 관심사는 뭘까. "글쎄요…. 그건 궁금증으로 남겨둘까요?"
s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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