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웨이 7나노 반도체 스마트폰 출시로 본 美·中 하이테크 전쟁

입력 2023-09-06 11:31  

화웨이 7나노 반도체 스마트폰 출시로 본 美·中 하이테크 전쟁
美 통제·제재 속 기술 자립했는지에 촉각…화웨이 일체 함구
디리스킹 관건…美, 화웨이 노리는 중동 일부에도 수출 통제

(서울=연합뉴스) 인교준 기자 = 중국의 화웨이가 최근 7nm(나노미터·10억분의 1m) 공정 프로세서가 내장된 새 스마트폰 '메이트 60 프로'를 출시해 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다.
화웨이의 7나노 스마트폰 프로세서는 세계 1, 2위 TSMC와 삼성전자가 양산 경쟁 중인 3나노 공정에 5년 이상 뒤처진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화웨이가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시절부터 미 행정부의 '십자포화식' 제재를 받아온 터여서 기술 자립에 성공했는지에 시선이 쏠렸다.
이에 미국 안팎에선 중국을 겨냥한 첨단기술 제재의 실효성 논란이 일고 있다.
화웨이 등이 실질적인 기술 자립을 이뤘다면 큰 변화가 일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찻잔 속의 태풍'일 수도 있다.


◇ 美 십자포화 통제·포위 속 中 '기술 자립'?…질주 지속될까
업계에선 화웨이의 메이트 60 프로 스마트폰 안에 든 7나노 공정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에 주목한다. 이는 중국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업 SMIC(中芯國際·중신궈지)의 2세대 7나노 공정 칩 '기린 9000s'로 확인됐다.
통상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등 첨단 반도체 생산장비를 갖춰야 7나노 공정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중국 기업이 미국 주도의 통제 속에서 어떻게 이 프로세서의 양산에 성공했느냐가 관건이다.
세계 유일의 EUV 생산 기업인 네덜란드 ASML은 지난해부터 화웨이에 EUV 노광장비 수출을 금지한 데 이어 지난 1일부터 한 단계 낮은 심자외선(DUV) 노광장비의 중국 수출도 중단했다.
앞서 미국은 2019년 5월부터 화웨이를 제재 대상에 올렸다. 화웨이가 중국 인민해방군과 연계돼 미국 안보를 해칠 수 있다면서 블랙리스트에 등재하고 5세대 이동통신(5G)용 반도체의 수출과 관련 기술 이전을 금지했다.
화웨이가 통신 장비에 해킹 도구를 설치해 미국 등에서 기밀을 빼간다는 것이 구체적인 이유였다. 조 바이든 미 행정부는 4세대 이동통신(5G)용 반도체에 대해서도 유사한 조치를 검토 중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화웨이가 7나노 공정 기반의 AP를 어떤 방법으로 만들었는지에 대해 국제사회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화웨이가 해당 반도체 기술에 대해 함구하는 가운데 중국 내에선 이제 중국 독자적인 첨단 반도체 설계·생산이 가능해질 것이라는 민족주의적인 감정이 분출하고 있다.
메이트 60 프로를 사려는 대기 행렬이 늘어서고 판매 물량 부족으로 웃돈 거래가 성행하는가 하면 런정페이 화웨이 회장 '띄우기' 움직임이 줄을 잇고 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계열 환구시보는 "화웨이의 새 스마트폰은 미국의 극단적인 압박이 실패했다는 증거"라고 강조했다.
물론 화웨이의 7나노 반도체는 세계 시장에서 위협적이지는 않다. 삼성전자는 2019년부터 EUV 노광 기술을 적용한 7나노 제품, 지난해 6월 3나노 제품 양산을 시작했으며, 2025년부터 모바일용 2나노 제품 생산을 계획 중이다. 애플도 이달 중에 3나노 칩을 장착한 아이폰15를 공개할 예정이다.
업계는 중국이 7나노 공정 기술 자립을 바탕으로 양산 체제를 갖출 수 있느냐, 그리고 관련 기술을 진전시킬 수 있느냐에 주목한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화웨이가 메이트 60 프로 출시로 미국에 상징적인 승리를 했지만, 역풍은 여전하다"면서도, "문제의 칩이 어디서 공급됐는지에 대한 의문이 일고 있다"고 짚었다.


◇ 화웨이로 촉발된 미·중 '첨단기술 전쟁'…이젠 디리스킹이 관건
미국의 화웨이 공격은 첨단 반도체·기술의 중국 이전을 차단하려는 '마스터플랜'의 시작이었다.
미국 패권에 도전 의지를 비쳐온 중국은 반도체 산업이 관건이 될 것으로 보고 2025년까지 반도체 자급률 70% 달성을 목표로 60조원대 국가 펀드인 '대기금'(공식 명칭은 국가집적회로산업투자펀드)을 2014년 출범시켰으나,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그런데도 3기 집권에 들어간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다시 반도체 굴기에 나섰으며, 미국도 이즈음부터 제재를 본격화했다.
작년 8월 바이든 미 대통령이 서명한 반도체법(CHIPS Act)이 대표적이다. 반도체 산업 발전과 기술적 우위 유지를 위해 모두 2천800억 달러(약 368조원)를 미국 반도체 산업에 투자하는 것이 골자다. 여기에서 중국은 철저히 배제됐다.
미 행정부는 작년 10월 네덜란드 ASML 이외에 일본 니콘 등 외국의 주요 반도체 장비업체들도 대중 수출 통제에 동참토록 조처했다.
또 미국·한국·대만·일본은 반도체 공급 협력체인 '칩4'를 운용 중이다. 중국으로선 낄 자리가 없는 셈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달 9일 중국의 첨단반도체·양자 컴퓨팅·인공지능(AI) 등 3개 분야에 대한 사모펀드와 벤처캐피털 등 미국 자본의 투자를 규제하는 대중국 투자 규제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해당 기술이 중국의 군사력 강화에 사용되는 걸 막자는 것이다.
미국은 이른바 '마당은 좁게 담장은 높게(small yard, high fence)' 원칙에 따라 중국과 무역·경제적 관계를 유지하되, 미국의 첨단 기술에 대한 중국의 접근을 차단하는 조치를 계속해서 취해오고 있다. 이른바 미국의 대중국 디리스킹(de-risking·위험 제거) 정책이다.
그러나 중국은 이에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셰펑 주미 중국대사는 지난달 31일 워싱턴포스트(WP)에 실은 기고를 통해 "미국은 디리스킹을 명분으로 디커플링(공급망 등 분리)을 추구하기를 중단해야 한다"며 디리스킹, 디커플링 등은 세계 경제를 더 꼬이게 할 뿐이라고 주장했다.

◇ 사우디 통로로 중동 노리는 화웨이…美, 중동에도 수출 통제
7나노 칩 스마트폰 출시라는 성공을 거둔 화웨이는 내친김에 사우디아라비아의 수도 리야드에 클라우드 데이터 센터를 5일 개설했다.
미국의 오랜 우방인데도 최근 몇 년 새 미·중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사우디아라비아를 교두보 삼아 중동과 아프리카로 사업 확장을 꾀할 의도다. 이를 통해 중국 기업들의 중동 시장 진출과 확장을 지원한다는 구상도 한다.

화웨이의 리야드 센터는 AI 응용서비스를 포함해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한편 5년 동안 현지에서 관련 분야 개발자 20만명을 육성하고 현지 기업 1천여곳과 스타트업 2천곳과 협력할 계획이라고 SCMP는 전했다.
미국 주도의 서방 시장에서 거센 압박에 직면한 화웨이의 리야드 데이터 센터 개설은 석유 의존을 줄이고 디지털 경제로 전환을 목표로 하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이해와 맞아떨어진다.
시 주석은 작년 12월 사우디아라비아 방문 때 양국 간에 500억 달러(약 66조원)의 투자 협력 방안에 서명했으며, 여기에 화웨이의 클라우드 데이터센터 개설 계획도 포함됐다.
화웨이의 사우디아라비아 진출이 중국 당국의 디리스킹 대응 차원에서 이뤄졌다는 걸 짐작하도록 하는 대목이다.
이에 미국도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양상이다. 미 행정부는 자국 반도체 기업인 엔비디아와 AMD에 AI용 반도체를 중국 이외에 중동의 일부 국가에도 수출하지 못하도록 조처했다.
엔비디아는 지난달 28일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2분기 실적보고서에서 이런 사실을 공개했다. 중동 일부 국가들에 AI용 반도체인 A100·H100 제품군을 판매하려면 추가로 허가받을 필요가 있다는 통보를 받았다는 것이다.
kjih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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