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장비도, 외부 전문가도 없다"…구조대 구경도 못 한 마을 다수
해외 지원 제한적으로만 수용한 정부 결정에도 반발 고개
(서울=연합뉴스) 황철환 기자 = 규모 6.8의 강진으로 수천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모로코에서 정부의 늑장 대응에 대한 주민의 원성이 커지는 모양새다.
10일(현지시간) 진앙과 약 50㎞ 거리에 위치한 마라케시 인근 타페가그테 마을을 찾은 영국 BBC 방송은 마을 주민의 절반 이상이 사망하거나 실종됐다고 전했다.
전체 주민 200명 중 무려 90명이 숨진 채 발견됐고, 여태 소재가 파악되지 않은 사람의 수도 다수라는 것이다.
생존자들은 "이 마을 사람들은 모두 병원에 있거나 죽었다"고 말했다.
실제, 한때 조용한 농촌 마을이었던 이곳은 거대한 잔해 더미로 바뀌어 있었다. 벽돌과 석재를 이용해 전통 방식으로 지어진 집들이 버틸 수 있는 한계를 넘은 진동에 일제히 무너져 내린 결과다.
지난 8일 강진이 덮친 이후 사흘째인 이날 현재 잔해 주변에선 아무런 인기척도 들리지 않는다고 취재진은 전했다.
잔해에 묻혔다가 간신히 빠져나왔다는 주민 하산은 "도망칠 기회가 없었다. 그들에겐 스스로를 구할 시간이 없었다"면서 자신의 삼촌이 아직도 잔해 아래 묻혀 있지만 파낼 방법이 없다고 토로했다.
그는 매몰자 구조를 위한 중장비도, 외부 전문가도 오지 않았다면서 "우린 정부의 도움이 필요한데 그들은 사람들을 도우러 오는데 매우 늦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BBC는 이곳뿐 아니라 아틀라스산맥 일대의 많은 마을에서 비슷한 참상이 벌어졌다고 전했다.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도 "주민들이 사랑하는 이들을 구하려 맨손으로 잔해를 파헤치고 있다"면서 "정부가 약속한 구조팀은 대부분 지역에서 보이지 않고 있으며, 산맥 고지대 마을 다수에선 어떠한 소식도 전해지지 않고 있다"고 짚었다.
모로코 당국은 10일 기준으로 최소 2천122명이 숨지고 2천400여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고 밝혔지만, 연락이 두절된 산지 마을의 피해가 구체적으로 확인되면 사상자가 더욱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그런데도 모로코는 스페인과 튀니지, 카타르, 요르단의 지원만 받기로 하는 등 외국의 도움을 받아들이는데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 피해 주민들을 더욱 애타게 하고 있다.
하산은 모로코 당국이 모든 형태의 국제적 원조를 받아들여야 하는데 자존심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하는 듯 해 우려된다고 말했다.
그런 그의 주변에선 슬픔을 가누지 못하는 통곡이 곳곳에서 울리고 있었다. 한편에선 잔해 속에서 10살 소녀의 시신이 발견됐고, 이에 앞서서는 세 아들을 끌어안은 채 함께 목숨을 잃은 어머니의 장례식이 눈물 속에 엄수됐다.
지진이 마을을 덮쳤을 때 3㎞ 떨어진 주유소에서 일하고 있었다는 남편 아브두 라흐만은 한때 자신의 집이었던 잔해를 가리키면서 "찾아냈을 때 그들은 모두 서로를 끌어안고 있었다. 아들들은 모두 자고 있었다. 모두가 지진에 삼켜지고 말았다"고 말했다.
BBC는 "(모로코의) 전통적 공동체는 현대 세계와 분리돼 살아가는 데 만족해 왔을 수 있지만,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도 외부의 도움을 필사적으로, 그리고 가능한 빨리 필요로 하는 상황에 놓였다"고 말했다.
hwangc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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