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영국 등 일부 국가 제안만 수락…"가난한 나라 낙인 원치 않아"
(로마·파리=연합뉴스) 신창용 송진원 특파원 = 120년 만의 강진이 덮친 북아프리카 모로코를 향해 전 세계가 구호의 손길을 내밀고 있지만 정작 모로코 정부는 그 손길을 외면하고 있다.
로이터 통신과 영국 일간지 가디언 등에 따르면 강진 발생 나흘째를 맞은 11일(현지시간) 현재까지 모로코 정부는 스페인, 카타르, 영국, 아랍에미리트(UAE) 등 4개국의 지원만 승인했다.
모하메드 6세 국왕은 전날 내무부를 통해 발표한 성명에서 "우방국인 스페인, 카타르, 영국, UAE의 원조 제안을 수락했다"면서 "필요에 따라 다른 우방국에 지원 요청을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모로코 당국은 현장의 필요를 정확하게 평가해 4개국의 지원 제안만 받아들였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조율이 부족하면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모로코에서 120년 만의 강진이 발생해 막대한 인명 피해가 발생하자 국제사회는 발 빠르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미국과 독일, 쿠웨이트, 튀르키예, 이스라엘, 이탈리아, 대만, 오만, 스위스는 물론 2년 전 모로코와 국교를 단절한 알제리까지 나서 "모로코를 도울 준비가 돼 있으며 공식 지원 요청을 기다리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실제로 국제적인 구호 지원이 이뤄진 건 4개국에 불과했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모로코 지진과 관련해 필요한 모든 지원을 제공하겠다는 입장을 재차 밝혔지만, 모로코 정부는 아직도 응답하지 않고 있다.
모로코 출신 이주민이 많은 프랑스도 지원을 제안했지만, 공식적인 지원 요청이 없어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카트린 콜로나 프랑스 외교장관은 이날 BFM TV에 출연해 "우리는 모로코를 도울 준비가 돼 있다"며 "이는 모로코의 주권적 결정이며, 모로코가 결정할 몫"이라고 말했다.
모로코가 프랑스에 지원 요청을 하지 않은 건 두 나라 간 쌓인 갈등이 원인일 수 있지만 다른 국가들의 지원 제안까지 거부하는 배경을 놓고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모로코가 이번 재난을 스스로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국제적인 지원을 받는 데 소극적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기아 방지 활동으로 유명한 프랑스 지리학자 실비 브루넬은 프랑스 일간지 르피가로에 "국제 인도주의 지원은 항상 선진국에서 저개발국으로 향한다"며 "모로코는 전 세계가 도와주러 오는 가난하고 상처받은 나라로 비치는 걸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모로코 정부가 국제사회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을 주저하는 동안, 가족도 잃고, 터전도 잃은 모로코 국민들의 고통만 커지고 있다.
모로코 내무부에 따르면 전날 오후 4시까지 이번 강진으로 2천122명이 숨지고 2천421명이 다쳤다.
changyong@yna.co.kr, s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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