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행위원장, '연임 도전' 관심속 마지막 연례연설…선거 의식 '親기업 모드' 해석
수백명 취재진도 열띤 취재경쟁…유럽의회 앞선 "화석연료 철폐 선언해야" 퍼포먼스
(스트라스부르=연합뉴스) 정빛나 특파원 = "유럽연합(EU)은 경쟁력 우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건 무엇이든 할 것이다."(Europe will do whatever it takes to keep its competitive edge.)
EU 행정부 수반 격인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이 13일(현지시간)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유럽의회에서 한 연례 정책연설에서 유럽 산업 경쟁력 강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무엇이든 하겠다'는 표현은 2011∼2019년 유럽중앙은행(ECB)을 이끈 마리오 드라기 전 총재가 2012년 유럽 재정위기 당시 한 발언을 인용한 것이다.
이탈리아를 넘어 유럽의 대표적인 금융경제통으로 꼽히는 그는 당시 과감한 대규모 통화 완화 정책으로 유로존(당시 유로화 사용 19개국) 부채위기를 막아내 '슈퍼 마리오', '유로존 구원투수' 등의 별칭이 붙은 인물이다.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연설 중 드라기 전 총재에게 EU의 '미래 경쟁력'에 관한 자문 보고서 작성을 정식 요청했다고 깜짝 공개하기도 했다.
이는 기후변화 위기 대응을 위해 친환경 산업으로의 전환을 천명했지만 고물가, 노동력 부족, 글로벌 경쟁 심화 등 EU가 직면한 녹록지 않은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란 평가다.
63분가량 진행된 연설 내내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이 유럽 산업 보호 및 경쟁력 강화에 방점을 둔 것도 그 연장선으로 해석된다.
이날 발표한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반보조금 조사 방침도 단적인 예다.
그는 막대한 국가 보조금으로 가격이 낮게 책정된 중국산 전기차가 시장을 왜곡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럽 자동차 업계가 피해를 보고 있다는 인식이다.
이와 함께 유럽 풍력발전 산업 확대를 위해 신속 허가, 안정적 공급망 지원 등을 골자로 한 '유럽 풍력 발전패키지' 법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 밖에 역내 중소기업의 경쟁력이 강화될 수 있도록 연내 '중소기업 특사'를 신설하고, 첨단·신생 기술 보호를 위한 자금 지원을 확대할 것이라는 예고도 곁들였다.
이 같은 내용은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이 2019년 취임한 이후 매년 발표한 연례 연설 가운데 친(親)기업 성향이 가장 짙은 것이기도 하다.
작년과 비교해보더라도 지난해에는 우크라이나 지원이 최우선으로 다뤄졌으나, 올해는 뒷순위로 언급된 것은 물론 추가 지원 등에 관한 구체성도 상대적으로 떨어졌다고 외신은 짚었다.
일각에서는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의 이날 연설이 내년 6월 유럽의회 선거를 앞두고 '연임 도전'을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EU 집행위원장은 보통 유럽의회 선거에서 최다 의석을 차지한 정치그룹에서 추천한 후보가 최종 선출된다.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도 2019년 의회 선거에서 1위를 차지한 유럽국민당(EPP)이 내세운 후보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상황이 다르다.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이 이끄는 현 집행부가 추진한 친환경 정책인 '그린딜'(Green Deal) 일부 입법안을 두고 친기업 성향인 EPP가 반발하면서 최근까지도 파열음이 일었다.
그는 연임 도전 의사를 공식화하지 않았지만, 결국에는 EPP 지지를 확보하겠다는 계산이 깔린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실제로 그는 그린딜 추진 과정에서도 산업계와 대화 창구를 신설해 소통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겠다는 입장은 분명히 하면서도, 업계의 반발을 살만한 추가적인 환경입법 조처는 발표되지 않았다.
이를 두고 유럽 환경 관련 비정부기구(NGO) 연합체인 EEB는 그린딜의 주요 입법안 일부가 여전히 지연되고 있다면서 이날 연설이 기후변화 대응 조처와 관련해 불충분한 연설이었다고 비판했다.
연설이 진행된 유럽의회 앞에서는 그린피스 등 환경단체 회원 일부가 화석연료 철폐 등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더욱 구체성 있는 조처를 발표하라고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했다.
2010년부터 시작된 EU 집행위원장의 연례 정책연설은 지난 1년간의 성과와 향후 정책 방향을 제시하는 EU 연중 최대 이벤트 중 하나다.
올해는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의 임기 마지막이자 그의 연임 도전 여부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면서 더욱 주목받았다.
본회의 첫날부터 유럽 각국에서 취재진 수백명이 몰리면서 총 2층 규모로 된 기자실 자리가 부족해 EU 측이 임시 공간을 추가로 마련해야 했다.
유럽의회는 각국 매체에 현장 취재 기회 제공 차원에서 본회의 기간 브뤼셀 주재 언론사 30곳을 별도로 초청하고 있으며, 연합뉴스는 이번 회의 기간 한국 매체 가운데 유일하게 초청 명단에 포함됐다.
shine@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