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발언대] "화재현장에서 소중한 인명 구합니다"

입력 2023-09-16 07:03   수정 2023-10-10 13:46

[스타트업 발언대] "화재현장에서 소중한 인명 구합니다"
270g 초경량 산소호흡기 내놓은 백종태 우리웰 공동대표

(서울=연합뉴스) 박세진 기자 = 소방청 통계에 따르면 올 1~8월 기준으로 전국 곳곳에서 발생한 화재로 죽거나(188명) 다친(1천433명) 사람은 1천621명이다.
이들의 사상(死傷) 원인을 보면 연기·유독가스 흡입이 30%(485명)를 차지했고, 화상까지 당한 경우를 포함한 연기·유독가스 흡입은 40%(654명)에 달했다.
화상으로 인한 사상자는 44%(712명)로 집계됐다.


이 통계는 화재 현장의 연기·유독가스가 화염만큼이나 치명적임을 보여준다.
국내 한 스타트업이 화재 현장의 연기·유독가스로부터 인명을 효과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세계 최경량급 산소마스크(산소호흡기)를 개발했다.
대전에 본사를 두고 있는 ㈜우리웰(WooriWel)이다.
지난 11일 우리웰을 이끄는 백종태(67) 공동대표를 연합뉴스 공감스튜디오에서 만났다.


순식간에 소중한 생명을 앗아가는 화재는 일상생활 속에 잠복한 재난이다.
사소한 부주의 등으로 언제 어디서나 누구든지 화재를 당할 수 있다.
불이 난 장소에서 대피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시간이 골든타임(5분 이내)인데, 백 대표는 자사 개발 산소마스크가 골든타임 안에 안전한 대피를 도울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음식을 만들 때 부뚜막이 아니라 광이나 창고 속에 있는 소금은 바로 넣기가 어렵죠. 불이 나면 아주 다급한 상황이 됩니다. 부뚜막에 있는 소금처럼 가까이 두고 유사시 쉽게 쓸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백 대표는 모델명이 카이렌(CAIREN S-5)인 자사 산소마스크의 가장 큰 특징으로 사용 편의성과 휴대·보관 용이성을 꼽는다.
얼굴 부분을 덮는 후드, 산소통, 그리고 산소를 일정하게 공급하는 감압기 등 3개 핵심 부품으로 구성된 이 제품의 무게는 5~6분 사용할 수 있는 산소탱크 부착 기준으로 270g이다.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산소호흡기로는 세계에서 가장 가벼운 모델이라고 한다.


백 대표는 화재 현장의 연기와 유독가스가 순식간에 의식을 잃게 하거나 목숨까지 앗아가는 점을 들어 산소마스크 같은 개인용 호흡기를 가까운 곳에 두고 비상시 쉽게 쓸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현재 지하철역 같은 다중 이용 시설이나 산업현장에는 화재에 대비한 생명 보호 장비로 방독면이 주로 비치돼 있다.
백 대표는 그러나 방독면은 산소 공급 기능이 없어 대체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 국내외에서 사용되는 기존 산소호흡기는 유독가스로부터 인명을 보호하는 데 기능적으로 가장 좋긴 하지만 크기와 통상 1㎏ 이상인 무게 때문에 일반적인 활용성이 떨어지는 것이 문제라고 했다.


한양대 공대를 나와 카이스트에서 재료공학 석·박사 과정을 마친 백 대표는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에서 한국 반도체 산업의 성장을 이끈 D램 반도체를 연구했던 전문가다.
초창기 D램 연구개발에 기여한 공로로 1980년대에 한국 반도체를 빛낸 32인 명단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그런 그가 연구원에서 창업인으로 변신하는 데는 1990년대 후반부터 일어난 벤처 열풍이 한몫했다.
"연구해 보고 개발도 했는데, 기술의 꽃은 역시 제품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시는 벤처기업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는 시기이기도 했죠."
ETRI 책임연구원 생활을 접고 2000년 대덕연구단지에 전자통신 부품 기업을 세워 사업을 시작한 백 대표는 승승장구했다.
대덕밸리벤처연합회(현 대덕이노폴리스벤처협회) 3대 회장(2002년 11월~2004년 10월)을 지내기도 했다.
그러나 수출을 중개하던 사업 파트너의 배신으로 상당한 빚을 떠안은 채 회사 문을 닫아야 하는 위기를 맞았다고 한다.
"한마디로 폭삭 망했어요. 그 후유증을 지금도 겪고 있으니까요."


첫 사업에서 고배를 든 백 대표는 그대로 주저앉지 않고 오뚝이처럼 다시 섰다.
큰 실패를 경험한 뒤 어느 순간에 생명 보호 사업 쪽으로 '필'(느낌)이 왔다는 백 대표가 2010년 새롭게 시작한 사업 아이템은 화마에서 인명을 구하는 산소호흡기였다.
그가 선보인 첫 산소호흡기 모델(카이렌 S-1)은 2016년 유엔 기관에 납품할 수 있는 품목으로 선정될 정도로 성능과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휴대형인 이 제품의 무게는 700g으로 당시에 세계 최경량급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백 대표는 그 후로도 경량화 쪽으로 연구 역량을 모아 무게를 270g까지 줄인 카이렌 S-5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신제품 개발 방향을 놓고 고민하던 시기에 한 지인 여성이 '화재가 무섭다'며 '가방에 넣어서 다닐 수 있는 산소호흡기를 만들어 달라'는 거예요. 그 말을 듣고서 세계에서 가장 가벼운 제품을 만들어 보겠다는 마음을 먹게 됐습니다."
백 대표는 난연성 후드에 초박막 소재를 적용하고 독자적으로 확보한 기술로 감압기를 설계해 세계 최고 수준의 초경량 산소호흡기를 구현했다고 설명했다.
이 과정에는 백 대표의 카이스트 선배이자 공동창업 멤버인 안병태(재료공학), 김종득(화학공학) 두 카이스트 명예교수가 힘을 보탰다고 한다.


카이렌 산소호흡기는 무게뿐만 아니라 텀블러 형태의 케이스도 남다른 점으로 꼽힌다.
백 대표는 "산소호흡기는 일반적으로 봉지 타입 포장인데, 정말로 다급한 상황에선 봉지를 뜯지 못해 사용하지 못하는 사례가 있다"며 긴급한 상황에서도 쉽게 쓸 수 있게 한손에 쥘 수 있는 원통형 하드케이스로 디자인했다고 말했다.
그는 세계적으로 봐도 이런 모양의 산소호흡기는 없다고 단언했다.
"7명이 사망한 최근의 한 아웃렛 화재 사례를 보면 연기와 유독가스를 마시고 20초 만에 다 쓰러졌다고 합니다. 신속한 산소호흡기 착용이 중요함을 시사하는데, 우리 제품은 그것에 초점이 맞춰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백 대표는 카이렌 S-5가 가격 면에서도 경쟁력이 있다고 자신한다.
그는 현재 소비자 가격이 세트당 10만원 수준이지만 앞으로 대량 공급 환경이 갖춰지면 가격이 크게 내려갈 수 있다고 예상했다.
parksj@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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