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연합뉴스) 이지헌 특파원 = 유가가 오르는데 미국 셰일오일 업계는 왜 생산량을 늘리지 않을까.
셰일오일은 전통적인 유정보다 생산 단가는 높지만, 생산량 조절이 훨씬 유연하다는 게 문과 출신인 기자가 알고 있던 얕은 지식이었다.
다른 산유국의 감산으로 유가가 급등하면 셰일오일 업체들이 시추 파이프를 꼽아 단기간에 생산량을 늘리면 되지 않을까.
셰일오일 생산이 늘면 국제유가는 안정화되고 자신들의 감산 결정이 미국 석유업계의 배만 불려준 사실을 알게 된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는 결국 감산을 포기하지 않을까.
미 에너지정보청(EIA)이 최근 낸 단기 전망 보고서는 의문만 증폭시켰다. 보고서에는 사우디의 감산 연장 발표로 글로벌 원유 재고 하락이 예상된다는 내용만이 담겼다.
궁금증의 실마리는 대형 셰일오일 기업들의 실적발표 콘퍼런스콜(전화회의) 내용을 살펴보면서 조금 풀렸다.
셰일오일 업체들은 생산시설을 늘리는 데 일차적인 관심을 두고 있지 않았다. 그들의 목표는 생산 효율화와 그에 따른 수익성 증대, 그리고 (어찌 보면 당연하게도) 주주가치 증대에 있었다.
우선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 투자해 유명한 미국 대형 에너지업체 옥시덴탈 페트럴리엄의 지난달 3일(현지시간) 콘퍼런스콜 발표를 살펴봤다.
옥시덴탈은 버핏의 지원 사격으로 미국의 대형 셰일오일 업체 애너다코를 인수, 셰일오일 업계의 강자로 부상한 회사다.
콘퍼런스콜에서 경영진과 애널리스트들이 가진 관심사는 생산 효율화와 자사주 매입 등 주주환원 정책, 환경규제 충족 등에 쏠려 있었다.
또 다른 대형 셰일오일 생산업체 데번 에너지의 지난달 2일 콘퍼런스콜 내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셰일 업체들이 성장성보다는 재무 건전성과 주주환원 정책에 일차적인 관심을 두게 된 이유는 투자자들의 그동안의 손실에 대해 보상을 요구하고 있는 탓이 크다.
미국 셰일 업계는 2010년대 '셰일 붐' 거치면서 급성장했으나 장기간 유지된 저유가 탓에 셰일 붐이 꺼지면서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거쳐야 했다.
숱한 업체들이 도산하자 셰일 업계의 밝은 전망을 기대하고 돈을 맡겼던 월가 투자자들은 보수적으로 변했고 성장보다는 당장의 이익 환원을 기대하게 됐다.
환경·사회책임·지배구조(ESG)가 투자 원칙으로 자리 잡으면서 탄소 배출량이 많은 에너지 업계에 대한 기관투자자들의 관심도가 줄어든 것도 성장보다는 안정된 경영과 주주환원에 관심을 두게 된 다른 배경이기도 하다.
다른 요인도 있다. 고물가 여파로 생산비용이 늘어난 것이다.
미 EIA의 최근 보고서는 미 텍사스주 퍼미안 분지의 석유 생산업체들이 굴착 깊이를 얇게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퍼미안 분지는 미 최대 셰일 오일 생산지 중 하나다.
굴착 파이프가 짧아지면 유정의 최대 생산 가능량은 줄어들지만 생산 비용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시추 비용 상승으로 셰일 오일 업체들이 생산시설 증대에 더욱 신중하게 된 것이다.
릭 먼크리프 데번 에너지 최고경영자(CEO)는 2분기 콘퍼런스콜에서 "타사보다 유리한 자원 기반을 토대로 생산량 증대보다는 주주가치 창출을 위해 체계적인 노력을 기울이겠다"라고 말하며 업계의 이런 입장을 대변했다.
물론 유가가 배럴당 90달러를 넘어 100달러를 바라보는 상황에서 고유가가 장기화할 경우 셰일 오일 업체들도 행동에 나설 가능성은 있다.
다만, 셰일 오일 업체들의 경영전략을 고려했을 때 변화는 기대보다 신중하고 느릴 가능성이 크다. EIA도 단기 전망 보고서에서 신속한 생산량 증가를 예측하지 않은 게 이를 반영한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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