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매체, 원전 엔지니어 인용…"전력공급 중단 따른 핵재앙 우려"
"러 탄압에 엔지니어들 탈출…일반근로자, 엔지니어 행세로 IAEA 눈속임"
(서울=연합뉴스) 유철종 기자 = 지난해 러시아의 침공 이후 끊임없이 안전 문제가 제기돼온 우크라이나 남부 자포리자 원자력 발전소가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유사한 핵 재앙에 직면할 위험이 커지고 있다고 영국 일간 더타임스가 1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신문은 자포리자 원전에서 일하다 탈출한 고위직 엔지니어를 인용해 이 원전에서 심각한 재난이 발생할 확률이 높게는 20%나 된다고 지적했다.
러시아군이 점령 중인 자포리자 원전에서 수석 엔지니어로 일하다 지난 6월 탈출해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 정착한 이반(가명)은 인터뷰에서 "개인적으로 심각한 긴급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10~20%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들어 원전 직원들의 탈출이 대규모로 늘어나고 원전을 지키는 체첸군이 발전소를 군사기지화 하면서 원전에서 '후쿠시마 시나리오'가 재현될 가능성이 한층 커졌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3월 러시아군이 점령하기 전 원전에선 엔지니어 160명이 일하고 있었는데 이들 중 30명만 원전을 접수한 러시아 측에 협력하는 데 동의했다.
다른 엔지니어 130명은 근무를 거부하고 대신 원전에서 긴급상황이 발생할 경우에 대비해 도시에 남아있었다.
하지만 올여름 우크라이나군의 반격 작전이 개시되고 원전 주변 지역이 우크라이나군의 포격을 받으면서 러시아 점령군은 러시아 여권 취득을 거부한 우크라이나 주민들에 대한 탄압을 강화했다.
이후 현지에 남아있던 엔지니어 가운데 100명이 탈출을 위한 위험한 여정에 올랐다.
그중 한 명으로, 아내와 함께 탈출해 키이우에서 인터뷰에 응한 이반은 자포리자 원전의 6개 원자로 가운데 1개 이상에서 전력 공급 중단 등으로 멜트다운(노심용융)과 같은 비상상황이 발생한다면 후쿠시마 원전보다 더 참혹한 결과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했다.
자포리자 원전은 단일 원전으론 유럽 최대 규모로 후쿠시마 원전보다 발전 용량이 30% 정도 더 크다.
이 원전의 6개 원자로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측의 교전 격화로 지난해 9월 이후 모두 가동이 중단됐으나 이후 1개 원자로가 복원돼 가동 대기 상태에 있다.
하지만 원전 냉각 시스템에 전력이 공급되지 못하면 원자로 과열로 핵연료봉 다발이 녹는 노심용융과 방사성 물질 유출과 같은 최악의 핵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
이반은 "전력 공급이 끊기면 가동 대기 상태 원자로는 6~7시간, 가동 중단된 원자로는 1~2일 안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2011년 후쿠시마 사고가 쓰나미로 인해 모든 전력 공급이 중단되면서 발생했다는 점을 되짚으면서, 겨울이 시작되고 우크라이나의 에너지 기반시설에 대한 러시아 공격이 재발한다면 후쿠시마 사고와 유사한 일이 자포리자에서 벌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전쟁 전 자포리자 원전에는 7~8개의 전력 공급선이 가동됐지만 지금은 단 1개만 유지되고 있고, 비상시 전력공급을 위한 20여개의 디젤발전기도 제대로 관리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8월 원전 안전 감시를 위해 국제원자력기구(IAEA) 전문가들이 파견됐지만 이들은 '영화 속의 엑스트라 배우들'처럼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이반의 설명이다.
IAEA 전문가들은 러시아 정보기관인 연방보안국(FSB)의 지속적인 감시를 받고 있을 뿐 아니라, 관리인 등의 일반 근로자가 엔지니어 복장만 입고 원자로 제어실에 앉아있는 속임수에 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에너지부 장관 헤르만 갈루셴코도 "디젤 발전기로 전력 공급을 보충하고 있는 원전은 이미 위험하다"면서 "후쿠시마 시나리오까지는 한발짝 밖에 남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로켓이나 드론(무인기)이 우연히 가동 중인 디젤 발전기에 떨어지기만 해도 비상사태가 발생할 것이다. 과정이 시작되고 나면 누구도 그것을 멈출 수 없다. 누구도"라고 경고했다.
cjyou@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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