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비아 대홍수 생존자 증언…"참사 하루전 집에 있으라는 말 들어"
(카이로=연합뉴스) 김상훈 특파원 = "물 폭탄이 지진이 난 것처럼 철문을 흔들었어요. 그리고 20분 후 아들은 20m 높이의 다른 파도가 온다고 소리쳤죠."
폭우로 댐이 무너지면서 대홍수가 발생한 리비아 데르나에서 천신만고 끝에 살아난 압델 모네임 아와드 알-셰이크(73)씨는 지난 10일(이하 현지시간) 참사 당시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로부터 1주일이 흐른 18일 물이 빠지고 진흙투성이인 집에서 AFP통신과 인터뷰에 응한 그는 "안경과 전화기만 들고 단층짜리 집에서 빠져나왔다"면서 가족들과 함께 인근의 높은 건물로 대피한 뒤, 쓰나미 같은 파도가 자신의 집을 휩쓰는 걸 두 눈으로 지켜봤다고 했다.
그는 "20분쯤 지났을까? 위층에 있던 아들이 20m 높이쯤 되는 또 다른 파도가 밀려온다고 소리쳤다. 우리는 나무 사다리를 타고 지붕 꼭대기로 올라가 새벽까지 기다렸다"고 했다.
날이 밝자 무너진 건물 잔해와 시신들로 종말을 맞은 듯한 데르나가 고스란히 모습을 드러냈고, 이어 몇 명의 젊은 자원봉사자들이 찾아와 셰이크씨 가족의 피신을 도왔다고 한다.
공식 사망자 수가 3천명을 넘어선 데르나에서 살아남은 주민들은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채 일생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모하메드 알-자위(25)씨는 "물이 집안에 차오르면서 가구와 물건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첫 번째 파도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두 번째, 세 번째 파도는 강력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는 "산더미 같은 물 폭탄이 차량과 사람들, 가재도구들을 바다로 쓸어갔다"며 "참사 하루 전에 많은 비가 쏟아질 것이며 집 안에 있으라는 경보를 받았다. 그 외에 다른 정보는 없었다"고 했다.
유엔의 전문가들은 이번 참사에 기후변화가 일부 영향을 미쳤으며, 오랜 내전에 따른 핵심 인프라 및 조기 경보 및 긴급 대응 시스템 약화가 사망자 수를 늘린 원인이라고 지적해왔다.
참사 이후 목격된 참혹한 상황도 생존자들의 심리상태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자위 씨는 "물이 빠진 뒤 인근 거리에서 25∼30구의 시신을 봤다. 일단 시신을 덮을 것을 찾았고 이후 생존자 수색에 동참했다"고 말했다.
인근에 거주하는 레바논 국적자 모하메드 압델하피즈 씨는 "땅이 흔들렸다. 지진이 난 줄 알았다. 그리고 발코니로 나가보니 벌써 물이 차올라 있었다"고 했다.
그는 이제 유리가 사라진 빈 창틀을 통해 밖을 내다보며 "우리 집에서 계곡까지 4채의 건물이 있었는데 지금은 아무것도 없다. 원래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땅에는 진흙뿐"이라고 덧붙였다.
자신은 간신히 목숨을 건졌지만 실종된 일가족을 찾기 위해 무너진 집터를 서성이는 이들도 있다.
무너진 집터에서 무릎을 꿇은 채 땅을 파던 사브린 블릴 씨는 실종된 가족들의 이름을 목 놓아 부르며 "신이시여 단 한 사람이라도 단 한 구의 사체라도 찾게 해주세요"라고 외쳤다.
리비아에서는 지난 10일 태풍 다니엘이 쏟아낸 폭우로 2개 댐이 무너지면서 항구도시 데르나를 덮쳤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집계한 사망자는 최소 3천922명, 실종자는 9천여명에 달한다.
생존자들은 식수를 찾아 폐허가 된 도시를 뒤지고 있지만, 식수원이 오염돼 수인성 감염병이 돌 가능성이 크고 홍수에 떠밀려온 지뢰도 생존자들을 위협하고 있다.
meola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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