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원 합동연설 대신 비공개로 의원 면담…'로우키' 행보
美 당국자 "우크라 지지 약화 아냐…중요성 못지 않다" 강조
"바이든, 4천300억원 추가원조 발표키로…에이태큼스는 빠져"
(서울=연합뉴스) 황철환 기자 =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300일을 맞은 작년 12월 21일 첩보작전을 방불케 하는 철통 보안 속에 미국을 찾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자유의 수호자'로 미 조야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하지만, 그로부터 정확히 9개월이 지난 21일(현지시간) 다시금 워싱턴DC에 내리는 젤렌스키 대통령이 마주할 분위기는 그때와 달리 싸늘한 기운이 감돌 것으로 전망된다.
올해 6월 시작된 우크라이나의 이른바 대반격 작전이 기대만큼 진전을 보이지 못한 데다, 내년 차기 미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언제까지 우크라이나에 무조건적인 원조를 지속해야 하느냐는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고 있어서다.
당장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압도적 격차로 독주 중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조 바이든 현 행정부의 우크라이나 군사원조에 줄곧 부정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출구 없는 장기전으로 흐르는 양상에 집권당인 민주당 일각에서도 정치적 부담을 느끼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바이든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서조차 반신반의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와중에도 전쟁을 경고하며 서방 각국을 결집, 대규모 원조를 성사시켜 러시아의 팽창 야욕을 무너뜨리는 업적을 냈다.
하지만 올해 들어 전선이 교착된 채 소모전이 이어지면서 작년 2월 이후 400억 달러(약 53조원)가 넘는 막대한 원조를 쏟아부은 바이든 행정부의 전략은 다시금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미국 서민들이 직면한 생활고를 외면한 채 우크라이나에 혈세를 낭비한다는 공화당의 정치공세가 먹혀들 경우 내년 대선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1일 젤렌스키는 마지막 방문 당시와는 다른 정치적 시점에 워싱턴에 도착하게 됐다"고 20일 짚었다.
그러면서 "젤렌스키는 (이전처럼) 미 의회 상·하원 합동연설을 하는 대신 굼뜨게 진행되는 반격과 미국의 원조를 어떻게 사용하는지와 관련해 그를 괴롭히길 원하는 일부 공화당원을 비롯한 의원들과 비공개로 만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작년 12월 젤렌스키 대통령의 방미는 우크라이나 동부 전선에서 1만㎢가 넘는 영토를 되찾는 대승을 거둔 직후 이뤄졌으나, 올해는 큰 기대를 모았던 대반격이 3개월째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는 상황에 미국을 찾았다는 점이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미 정부 당국자들은 젤렌스키 대통령의 워싱턴DC 방문이 작년 12월과 달리 '로우키'로 진행되는 것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의 지지 약화를 보여주는 건 아니라고 강조했다.
한 당국자는 "지난 방문처럼 모두의 주목을 받는 순간이 없을 수도 있지만 중요성은 그때 못지않게 크다"고 말했다.
하지만 공화당 소속인 케빈 매카시 하원의장은 20일 젤렌스키 대통령의 방미를 앞두고 우크라이나 추가 원조를 약속할 것인지 묻는 말에 "젤렌스키가 미 의회 의원으로 선출됐나? 그가 우리 대통령인가? 난 무엇도 약속할 것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이미 들인 돈이 책임 있게 쓰였는지 어떻게 알 수 있는지, 승리를 위한 계획은 무엇인지와 관련해 물을 말이 있다. 난 그게 미국 일반 대중이 알고 싶은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미 공화당은 상원에선 내년도 예산안 처리 지연으로 인한 정부 '셧다운'에 대비해 우크라이나 원조액을 늘리겠다는 의사를 밝히는 등 여전히 우크라이나에 대한 초당적 지지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공화당 유권자들 사이에선 우크라이나를 돕는데 미국이 너무 많은 일을 하고 있다는 여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고 WSJ은 지적했다.
한편, 바이든 행정부는 젤렌스키 대통령의 방미에 맞춰 3억2천500만 달러(약 4천300억원) 규모의 추가 군사원조 패키지를 발표할 계획이라고 로이터 통신은 전했다.
이 매체는 익명의 미 정부 당국자를 인용, 이번 패키지에 155㎜ 야포로 발사 가능한 집속탄과 여러 신무기가 포함될 예정이지만 우크라이나 측이 요구해 온 사거리 300㎞의 에이태큼스(ATACMS) 전술 탄도 미사일은 포함되지 않는다고 보도했다.
이번 패키지는 비상시 의회 동의 없이 발동할 수 있는 '대통령 사용 권한(PDA)'을 활용해 여분의 재고장비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집행될 것이라고 통신은 덧붙였다.
hwangc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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