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부품 공급 중단 무기로 삼성에 불리한 장기계약 강요
공정위 "손해 최소 1.6억달러…공정위 확보 증거들 소송에 활용 가능"
(세종=연합뉴스) 김다혜 기자 = 미국 반도체 기업 브로드컴이 스마트폰 부품 공급을 중단하는 방식으로 삼성전자를 압박해 자사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장기 계약(LTA)을 강요했다는 공정거래위원회 판단이 나왔다.
공정위는 브로드컴 미국 본사와 한국·싱가포르 지사 등 4개 사가 거래상 지위를 남용한 행위(공정거래법 위반)에 대해 시정명령과 과징금 191억원(잠정)을 부과하기로 했다고 22일 밝혔다.
삼성전자는 2020년 3월 브로드컴의 RFFE(통신 주파수 품질을 향상하는 부품)와 와이파이·블루투스 관련 부품을 2021년부터 3년간 매년 7억6천만달러 이상 구매하고, 구매 금액이 그에 못 미치면 브로드컴에 차액을 배상한다는 내용의 계약을 맺었다.
공정위는 이 계약 체결 과정에서 브로드컴이 구매 주문 승인 중단, 제품 선적 및 생산 중단 등 불공정한 수단을 동원해 삼성에 일방적으로 불리한 계약을 강요했다고 판단했다.
당시 브로드컴은 RFFE 등의 시장에서 압도적인 점유율을 가진 세계 1위 사업자였고 삼성전자는 막 출시한 갤럭시 S20 등의 생산 차질을 막기 위해 브로드컴의 일방적인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는 설명이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는 부품 선택권이 제한되고 필요 이상의 부품을 구매해야 했으며, 코보 등 더 저렴한 경쟁사 부품을 사용하지 못해 최소 1억6천만달러(약 2천137억원)의 추가 비용을 부담했다고 공정위는 지적했다.
브로드컴은 심의 과정에서 해당 계약이 자발적으로 체결된 상호 호혜적 계약이라고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브로드컴은 부품 공급사로서 삼성전자에 '갑질'을 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었고, 삼성전자가 부품 구매에 관한 구두 약속을 여러 차례 파기해 전략적 파트너십을 유지하려면 LTA를 체결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공정위는 브로드컴이 코보·퀄컴 등 경쟁사를 배제할 목적으로 삼성전자에 LTA 체결을 강제했으며 내부적으로도 구매 주문 승인 중단 등 자사 결정을 '폭탄 투하', '핵폭탄', '기업 윤리에 반하는', '협박'이라고 인식했다고 지적했다.
공정위는 2021년 8월까지 삼성전자가 LTA 이행을 위해 구매한 부품 금액 8억달러 전액을 관련 매출액으로 보고 부과율 상한인 2%를 적용해 과징금을 산정했다.
다만 브로드컴과 삼성전자 간 LTA가 공정위가 조사에 착수한 이후인 2021년 8월 조기에 종료되면서 과징금 규모는 200억원에 못 미쳤다.
공정위 관계자는 "법 위반이라는 점을 명확히 했기 때문에 삼성전자가 향후 브로드컴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나설 경우 공정위가 확보한 증거 자료를 소송에 유리하게 충분히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삼성전자는 브로드컴의 LTA 강요로 추가 비용 등 3억2천630만달러(약 4천375억원) 상당의 피해를 봤다고 주장한 바 있다.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은 브리핑에서 "이번 조치는 기술 혁신의 핵심 기반 산업이자 연관 시장 파급효과가 큰 반도체 시장에서의 공정한 거래 질서를 확립하고 경쟁 여건을 조성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처벌 필요성이 명확하다면 공정위가 애초에 브로드컴의 동의의결 신청을 받아주지 말았어야 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동의의결은 법 위반 혐의를 받는 사업자가 스스로 원상회복, 소비자 또는 거래상대방 피해구제 등 타당한 시정방안을 제안하면 위법 여부를 확정하지 않고 사건을 신속하게 종결하는 제도다.
공정위는 브로드컴의 신청을 받아들여 200억원 규모의 중소기업 상생 기금 마련을 골자로 하는 동의의결안을 마련했으나, 피해자인 삼성전자와 신고인인 퀄컴이 반발하자 지난 6월 동의의결안을 기각하고 제재심의 절차를 재개한 바 있다.
브로드컴은 추후 공정위의 시정명령 및 과징금 부과 처분을 취소해달라는 행정소송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공정위 의결은 1심 판결과 같은 효력이 있어 필요시 서울고등법원과 대법원판결을 거쳐 확정된다.
삼성전자 역시 브로드컴을 상대로 민사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나설 전망으로 향후 법정 다툼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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