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김대호 기자 = 모든 금융계좌의 입출금을 정지해 경제활동을 마비시키는 중고 거래 '3자 사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으나 당국의 무관심 속에 피해자들이 잇따르고 있다.
최근에는 한명의 사기꾼으로부터 똑같은 수법으로 비슷한 시기에 피해를 본 정황이 확인됐다.
23일 연합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에 사는 A씨는 지난달 26일 장인의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중고 거래 사이트인 당근마켓을 통해 B씨에게 돌 반지, 골드바 등 금을 672만원에 판매하고 계좌로 입금받았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금융기관으로부터 자신이 보이스피싱범으로 지목돼 모든 금융 계좌의 입출금이 정지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알고 보니 돈을 부친 사람은 B씨가 아닌 제3자인 C씨였다. C씨는 B씨로부터 금반지 등을 받기로 하고 돈을 부쳤으나 물건을 받지 못하자 사기로 신고했다. B씨가 C씨에게 A씨 계좌번호를 알려준 뒤 잠적하는 바람에 일면식도 없던 A씨와 C씨 사이에 분쟁이 발생하는 '제3자 사기'가 발생한 것이다.
A씨는 금융기관과 금융감독원에 중고 거래가 정상적으로 이뤄졌음을 증명하는 카카오톡 대화 내용과 거래 당시 폐쇄회로(CC)TV 영상 등을 증거로 제출해 2주만에 중고 거래 대금이 입금된 금융기관을 제외한 다른 금융기관들의 거래가 풀렸다. 그러나 중고 거래가 이뤄진 금융기관의 거래를 풀려면 A씨와 C씨가 다시 별도의 민형사 소송을 진행해야 한다. A씨는 돈을 입금받은 데다 사기범으로 신고돼 자신이 피해자라고 주장해도 경찰에서는 고소를 받아주지 않았다.
피해자들의 확인 결과 B씨는 지난달 29일 서울에 사는 D씨에게 당근마켓을 통해 금목걸이를 구입하며 '3자 사기'를 저지른 동일범으로 나타났다. A씨와 D씨가 진술한 범인의 인상착의와 범행 증거로 확보한 CCTV상의 범인 모습이 거의 비슷한 데다 중고품의 구매자가 여자인 것처럼 위장한 후 남편이 물건을 가지러 간다고 하는 등 범행 수법이 똑같았기 때문이다. 금을 거래 대상으로 한 점도 같았다. 현재 A씨와 D씨는 피해 내용과 해결 방안을 공유하고 있다.
A씨는 "어제 나에 대해 소송이 진행된다는 연락을 받았다. 경찰에 나가서 나의 거래가 정상적이었음을 소명해야 한다. C씨가 민사소송을 제기하면 나는 이에 맞서 채무부존재 확인 소송을 제기해야 한다고 들었다. 정상적인 중고 거래를 하고 범인으로 몰려 경제활동이 마비됐고 소송에서 지면 돈도 뺏기게 된다. 악질적인 '3자 사기'에 대한 당국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런 피해가 계속되는 것은 보이스피싱의 확산에 따라 금융계좌를 동결하는 법안은 마련이 돼 있지만 이를 악용한 '제3자 사기'에는 금감원이나 경찰 등이 무관심해 아무런 대책을 마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법조계에서는 보이스피싱에 대비해 신속하게 금융계좌를 동결하는 법을 만들었다면 이에 따라 발생하는 피해를 막기 위해 빠르게 금융계좌를 풀어주는 '퇴로'도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법무법인 호암의 신민영 변호사는 "몇 년 전부터 계속된 문제다. 이런 범죄가 있다는 데 경각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계좌를 정지하는 부분은 빨리 손을 봐야 한다. 처음 계좌를 정지할 때 거래 금액만 정지한다거나 소명 절차를 신속하게 진행해야 한다. 지금은 피해를 보면 푸는 절차가 사실상 없다"고 말했다.
앞서도 이런 '제3자 사기'가 여러 차례 발생했다. 지난 6월에는 배달 기사가 커피와 빵을 배달하고 요금을 계좌이체로 받은 후 보이스피싱범으로 몰려 금융거래가 정지됐고, 작년 12월에는 중고 거래 사이트에서 순금 팔찌를 643만원에 팔았다가 A씨와 똑같은 피해자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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