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세 동성애자 카셀라키스, 최대야당 대표로…그리스 정계 '대이변'
(로마=연합뉴스) 신창용 특파원 = 그리스 최대 야당 급진좌파연합(시리자)의 새로운 당 대표로 35세의 전 골드만삭스 트레이더가 선출돼 좌파 진영이 충격에 휩싸였다.
26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스테파노스 카셀라키스는 지난 24일 시리자 당 대표 선출 결선 투표에서 56%를 득표해 44%에 그친 에피 악치오글라 전 노동부 장관을 제치고 새 당수가 됐다.
다음 날 그리스 최대 일간지 카티메리니는 "가장 삐딱한 시나리오 작가도 이런 정치적 블랙 코미디를 생각해낼 수는 없다"고 헤드라인을 뽑았다. 시리자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 당 대표가 됐기 때문이다.
카셀라키스는 그리스에서 태어났지만 10대 시절 미국으로 건너가 줄곧 미국에서 지내온 그리스계 미국인이다.
그는 펜실베이니아대를 졸업한 뒤 글로벌 투자은행 골드만삭스에서 트레이더로 일했다. 이후로는 해운업에 뛰어들어 자산 규모를 불린 것으로 알려졌다.
글로벌 자본시장의 중심으로 불리는 미국 월스트리트 출신이 반(反)자본주의를 지향하는 시리자를 이끌게 된 셈이다.
카셀라키스가 정치 경험이 전무하다는 점도 우려를 낳고 있다. 그는 2008년 미국 민주당 예비선거에서 조 바이든 당시 상원의원을 위해 자원봉사자로 일한 경험이 정치 이력의 거의 전부다.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무명의 정치인이었던 카셀라키스는 지난달 29일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린 4분짜리 동영상이 화제가 되며 돌풍을 일으켰다.
그는 이 동영상에서 "그리스의 꿈을 이루고자 하는 열망"에서 시리자 지도부 경선에 출마하기로 결정했다며 자신이 비록 정치 경험은 없지만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 총리에게 맞설 수 있는 적임자라고 주장했다.
그는 "더 나은 영어 실력, 더 나은 사업 수완, 더 나은 학위로 미초타키스 총리를 꺾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중도 우파를 권좌에서 축출할 것"이라며 "그리스의 꿈이 현실이 되려면 기득권자를 물리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스인들이 기성 정치인들에게 환멸을 느끼며 새 정치를 원하는 상황에서 카셀라키스는 세대교체 바람을 타고 단숨에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시리자 당 대표 경선에는 카셀라키스를 제외하고 4명이 출사표를 던졌는데, 이 중 3명이 전직 장관이었다. 하지만 유권자들은 경륜 대신 정치 경험이 없는 '젊은 피'를 선택했다.
카셀라키스는 간호사로 근무했던 남자인 미국인 타일러 맥베스(31)와 동성 결혼했다. 동성애자가 그리스 정당 대표가 된 건 카셀라키스가 처음이다.
그는 이번 선거에서 명확한 정치적 의제나 뚜렷한 목표를 제시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많다. 시리자 내부에서 노선 갈등이 벌어질 경우 자칫 당이 분열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이번 선거는 지난 6월 시리자의 총선 패배 책임을 지고 알렉시스 치프라스 전 총리가 당 대표직에서 사임하면서 치러지게 됐다.
치프라스 전 총리는 2019년 총선에서 낙마해 미초타키스에게 총리직을 넘겨줬고, 올해 총선에서도 미초타키스에게 또다시 무릎을 꿇자 15년 만에 시리자 대표직에서 스스로 물러났다.
changy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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