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심한 EU의 '반보조금 조사 예고' 파장 주목…中, '강온양면' 전략 대응
中, 원자재·기술·시장 3박자 경쟁력에 자신감…EU, 디리스킹 카드도 만지작
(서울=연합뉴스) 인교준 기자 = 중국의 '전기자동차 굴기'가 미국과 유럽을 바짝 긴장시키고 있다.
미국이 지난해 8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제정을 통해 중국에 일찌감치 경고음을 발신한 데 이어 근래 유럽연합(EU)이 반(反)보조금 조사를 예고한 데서도 이런 기색이 역력하다.
이런 조치가 중국산 전기차 질주에 제동을 걸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이제 첨단 반도체에 이은 전기차 전쟁이 본격화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 EU, 반보조금 조사 예고…中, 강온양면 대응
최근 2주 새 중국과 EU 간에 긴장이 고조됐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이 13일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반보조금 조사를 예고하면서다. 이에 중국은 발 빠르게 대응했다.
중국 실물 경제의 사령탑이라고 할 허리펑 부총리가 25일 베이징에서 열린 제10차 중국·EU경제무역 고위급회담에 직접 나섰다.
중국은 전기차 업계에 보조금을 주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수직계열화한 중국 기업들의 경쟁력이 유럽 자동차 기업들보다 좋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런 주장에 EU는 수긍하지 않는다. 그동안 중국이 전기차 산업 육성에 전력투구해온 사정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중국은 2009년부터 전기차 구매세를 인하한 데 이어 2014년부터 완전히 면제했으며, 이 조치를 2027년까지 이어갈 예정이다. 이를 통해 2009∼2022년에 중국은 300억달러(약 40조5천억원)의 세금을 면제했고, 2027년까지 970억달러(약 131조원)를 추가로 면제할 것으로 블룸버그통신은 분석했다.
여기에 중국 공업정보화부는 자국 내 자동차 기업들이 생산하는 전기차 수에 따라 보조금을 줘왔다. 작년 말까지 376만대의 신에너지(전기·하이브리드·수소차)에 390억위안(약 7조2천100억원)이 지급됐다고 블룸버그가 전했다.
중국의 대표적 전기차 기업인 비야디(比亞迪·BYD)가 가장 많이 받았다. 또 중국 지방정부들은 전기차 공장에 대해 저렴한 가격으로 토지를 제공하는 한편 낮은 금리로 대출해준다.
이 때문에 EU는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반보조금 조사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중국과의 경제적 관계를 차단하는 디커플링을 요구하는 격앙된 반응도 있다.
지난해 유럽 내 중국산 전기차 점유율은 8%대였으나, 유럽산에 비해 가격이 20% 정도 싼 중국산은 2025년에는 15%대로 뛸 것으로 전망된다. EU에 비상이 걸린 이유다.
미국이 1년여 전 중국을 전기차와 배터리 공급망에서 고립시키는 인플레이션 감축법을 시행한 데 이어 프랑스도 최근 유럽산 전기차만을 대상으로 한 전기차 보조금 개정안을 발표했다.
이에 중국은 일단 강온양면 전략으로 맞선 모습이다.
가능하면 상대를 자극하지 않으면서도 상대적으로 앞선 가격·기술 경쟁력을 바탕으로 미국과 유럽 소비자들로부터 '선택' 받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허리펑 부총리가 회담에서 "중국은 유럽과 함께 전통적인 분야의 협력을 공고히 하고 새로운 분야 협력을 확장해 세계적인 도전에 대응하고 양측 관계가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길 원한다"고 말한 데서도 그런 분위기가 묻어난다.
◇ 원자재·기술·시장 3박자 갖춘 中…묘수 못찾는 서방
중국은 올해 상반기 자동차 수출 1위 국가로 부상했다.
중국자동차공업협회(CAAM)와 일본자동차공업회에 따르면 중국과 일본 주요 기업의 올해 상반기 자동차 수출 대수는 각각 214만대와 202만대로, 중국이 12만 대 많았다.
2020년 107만대에서 2021년 211만대, 2022년 332만대로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는 중국이 연간 기준으로도 1위가 확실시된다.
내연기관 자동차 강자인 도요타·혼다·닛산 등을 보유한 일본이 전기차 강자인 BYD를 앞세운 중국에 무릎을 꿇은 형국이다.
중국은 작년에 처음으로 전기차 수출 100만대를 돌파했다. 이 중 61.7%가 독일·영국·프랑스 유럽을 중심으로 한 선진국에 수출됐다는 점이 눈길을 끌었다. 14억 인구를 바탕으로 경쟁력과 덩치를 키운 중국 전기차 기업들이 유럽에서도 통한 것이다.
중국은 탄탄한 내수를 기반으로 전 세계 전기차 판매량의 61.1%를 차지하고 있다. 친환경이 대세인 상황에서 향후 몇 년 새 전기차 판매량이 내연 자동차 판매량을 앞설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의 전기차 장악력은 더 커질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간과해선 안 될 대목은 중국 전기차 산업의 경쟁력이다.
1995년 중국 선전의 소형 배터리 제조기업으로 출발한 BYD는 올해 상반기 128만7천대의 전기차를 팔아 세계 1위로 우뚝 섰다. 리오토·샤오펑 등 스타트업들은 세련된 디자인의 신차를 내놓고 있다.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인 알리바바는 생성형 인공지능(AI)이 탑재된 고성능 전기차를 출시했고. 최대 통신장비업체 화웨이는 중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를 선보였다. 휴대전화·TV 등이 주력인 샤오미도 가세했다.
전기차 핵심인 전기차용 배터리 분야에서 중국의 CATL(닝더스다이·寧德時代)과 BYD가 세계 1, 2위를 점유한 상황에서 중국 내 정보통신(IT)·플랫폼 기업이 전기차 시장에 뛰어들어 경쟁력을 강화하는 모양새다.
중국이 국가전략 차원에서 수십년간 아프리카와 남미를 주요 타깃으로 광물 확보에 주력해온 점도 전기차 산업 경쟁력을 키운 배경이다.
글로벌 메탈·광산 시장조사업체 CRU에 따르면 동력 배터리 제조용 흑연(70%)·망간(95%)·코발트(73%)·리튬(67%)·니켈(63%) 등에 대한 중국의 점유율은 통제 불가능 수준이다.
이를 통해 중국이 원자재 채굴·가공을 시작으로 배터리 생산과 전기차 제조로 이어지는 수직 계열화를 이뤘다는 평가도 받는다.
여기에 중국의 대표적인 검색 엔진 기업인 바이두는 이미 베이징·상하이·광저우·선전·충칭·우한·청두·창사·허페이·양취안·우전 등 10개 이상 대도시에서 자율주행 택시를 운영해오는 등 자율주행과 AI 분야에서도 앞서 나가고 있다.
이 때문에 미국과 유럽의 대응이 늦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중국이 앞서가는 상황에서 결정적인 타격을 입힐 만한 방안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 EU의 반보조금 조사 예고 '변수'…디리스킹 가능성도
이런 상황에서 EU의 중국산 전기차를 겨냥한 반보조금 조사 예고는 의미가 작지 않다.
조사 결과 정부의 불법적인 보조금을 받아 만든 '값싸고 성능좋은' 전기차라면 그에 상응하는 관세를 부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상계관세가 부과되는 기간에 유럽의 자동차 기업들은 경쟁력을 키울 수 있다.
EU가 반보조금 조사를 결정할 경우 미국·일본 등의 여러 나라로 확산할 가능성도 위협적인 대목이다.
이런 가운데 발디스 돔브로우스키스 EU 경제·통상 담당 수석 집행부위원장이 지난 23일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금융 콘퍼런스에서 "중국과의 디커플링(공급망 등 분리)을 원하지 않는다"면서도 "EU의 대중(對中) 무역 적자가 거의 4000억유로(약 569조800억원)에 달한다"고 강조해 눈길을 끌었다.
EU의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불만도, 이 같은 무역 불균형의 연장선에서 나왔음이 감지된다. 중국이 보조금 지급으로 자국 산업 경쟁력을 키워 EU에 피해를 주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일각에선 EU가 여러 가지 여건을 고려할 때 적어도 전기차와 관련해선 중국과 공급망을 분리하는 디커플링을 선택하지는 못하겠지만 디리스킹(위험제거) 정책을 선택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kjih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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