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채 발행 규모 늘어날 듯…채권시장은 '수급 쏠림' 재우려
은행별 발행 물량·시기 협의 지속…LCR 규제 정상화도 유예 가닥
(서울=연합뉴스) 임수정 채새롬 오지은 기자 = 금융당국이 이달부터 은행권의 안정적인 자금 확보를 위해 은행채 발행 한도를 폐지하기로 확정했다.
고금리 예·적금 상품의 대규모 만기 도래 등으로 은행 자금 수요가 커지는 상황에서 은행채 한도를 계속 막아둘 경우 과도한 수신 경쟁으로 인한 시장 불안을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는 3일 "4분기부터 은행채 발행 한도 제한 조치를 폐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어 "한도를 터주지 않을 경우 자금 확보를 위한 과도한 수신 경쟁이 나타날 수 있고 이는 다시 시장 불안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금융위원회는 작년 말 레고랜드 사태 여파로 채권시장 불안이 심화하자 은행채 발행을 사실상 중단시켰다.
대표적인 초우량채인 은행채 발행이 늘 경우 채권시장 수요를 빨아들이며 일반 회사채 등에 대한 소외가 더 극심해질 것이란 게 정부의 우려였다.
금융위는 이후 차환 목적의 은행채 발행(월별 만기 도래 물량의 100%)만 제한적으로 허용해오다가 올해 3월부터는 월별 만기 도래 물량의 125%까지 발행을 허용했다.
지난 7월부터는 분기별 만기도래액의 125%로 발행 규모를 관리해왔다.
그러나 이달부터 은행권이 작년 말 고금리로 끌어모은 예·적금 상품들의 만기가 본격 도래하면서 은행권 자금 수요가 커지자 발행 한도를 아예 풀기로 한 것이다.
은행권은 작년 말 채권 시장을 통한 자금 조달 통로가 막히자 예금금리를 연 5%대까지 높이며 수신 경쟁에 뛰어들었고, 2금융권은 자금 이탈을 막기 위해 연 6%대 중반에 이르는 특판을 대규모로 판매했다.
금융권은 당시 늘어난 수신 규모를 100조원 수준으로 추산하고 있다.
대규모 자금의 상환을 앞두고 채권 발행 통로를 열어주지 않으면 다시 수신을 통한 경쟁적인 자금 조달에 나설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이다.
은행권 수신 경쟁은 필연적으로 은행 금리보다 높은 금리를 제시해야 하는 저축은행이나 상호금융 등 2금융권으로 번지면서 '머니 무브'(대규모 자금 이동)를 촉발할 수도 있다.
분기 말을 앞두고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 등 유동성 규제 비율을 맞추기 위한 자금 수요가 커진 점, 주택담보대출 잔액이 늘어나는 등 가계 대출 수요가 증가한 점 등도 은행권 자금 조달 통로 확대에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번 금융당국 조치로 은행채 발행이 늘며 채권시장에 '수급 쏠림'이 재현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금융권과 연합인포맥스에 따르면 지난달 은행채는 4조원대 규모로 순발행된 것으로 집계됐다.
은행채는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7월까지 5월 한 달을 제외하고는 줄곧 순상환 기조를 이어오다가 지난 8월 순발행(3조7천794억원)으로 돌아선 뒤 지난달에도 순발행 규모를 크게 늘린 것이다.
이런 가운데 국내 은행채(AAA·무보증) 1년물과 5년물 금리는 지난 26일 기준 각각 4.060%, 4.517%로 연중 최고치를 기록했다.
은행채 금리 상승은 대출금리 등 시장금리 상승 압력으로 이어지는 구조다.
다만 금융당국은 작년 말과는 채권시장 상황이 다르다고 판단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최근 채권시장 수급은 나쁘지 않아 은행채가 무리 없이 소화될 것으로 본다"며 "금리가 오르는 건 글로벌 긴축 장기화 전망을 반영하는 것일 뿐 시장 불안 지표로 볼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금융위는 이와 더불어 LCR 규제 비율 정상화 시점도 연기하기로 가닥을 잡았다.
LCR은 30일간 예상되는 순 현금 유출액 대비 고(高)유동성 자산의 비율이다.
금융위는 내년 LCR 비율을 코로나19 이전인 100%까지 되돌리는 것을 검토해왔지만 정상화 시점을 늦출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LCR이 현행으로 유지될 경우 은행채 발행 유인은 줄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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