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유럽 망명, 국가대표 선수로…"슬픔과 기쁨 함께 있어"
(서울=연합뉴스) 김연숙 기자 = 지난달 초 폴란드에서 열린 월드 팀 체스 챔피언십에서 미국과 프랑스가 맞붙었다. 아투사 푸르카시얀과 미트라 헤자지푸르도 소속 선수로 대작했다.
이들은 이제 고향 이란이 아닌 미국과 프랑스를 대표하는 체스 선수로 각각 뛰고 있다. 긴 머리를 그대로 드러내 외견상 구분은 쉽지 않다. 이란에서 선수로 활동할 때 머리에 반드시 착용해야 했던 히잡은 이제 더 이상 쓰지 않는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1일(현지시간) 푸르카시얀과 헤자지푸르처럼 이란에서 망명해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국가대표로 뛰고 있는 선수들의 삶을 조명했다.
최근 몇 년간 이란을 떠난 여성 그랜드마스터는 5명이다. 이 중 일부는 히잡을 쓰지 않고 국제 경기를 치렀다가 고국을 떠나게 됐다.
도르사 데라크샤니가 가장 먼저 이란을 떠났다. 그는 2017년 지브롤터에서 열린 대회에 히잡 없이 참가했다가 이란 대표팀 출전을 금지당했다.
2022 토너먼트에 히잡 없이 참가해 언론의 주목을 받았던 사라 카뎀은 이제 스페인 대표팀 선수로 활동 중이다.
이란 마슈하드 출신인 헤자지푸르는 프랑스 여자 국가대표팀 소속으로 올해 체스 챔피언십에서 동메달을 땄다. 프랑스 대표팀에 합류한 지 몇 주 만에 거둔 성과다.
헤자지푸르는 푸르카시얀과 맞붙은 순간에 대해 "이상했다. 슬펐지만 약간의 기쁨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조국을 떠날 수 있었고, 성공적으로 다른 국가 대표팀에 합류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의 나라 이란을 대표할 수 없어 슬펐다"고 덧붙였다.
올해로 30살인 그는 6살에 체스를 시작해 19살에 이란 전국 여성 챔피언이 됐다. 한번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히잡을 쓰지 않고 머리카락을 그대로 드러낸 사진을 올렸다가 정권의 압박을 받고 삭제했다.
그리고 2019년 헤자지푸르도 데라크샤니와 같은 길을 가기로 했다.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블리츠 체스 챔피언십에서 히잡을 벗었다.
이후 그는 프랑스 한 체스클럽의 초청을 받아 그곳에서 지내며 훈련했고, 망명 그랜드마스터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프랑스가 피난처가 되긴 했지만, 프랑스 시민이 아니었던 그는 국가대표팀으로 뛸 수는 없었다.
프랑스어를 완벽하게 익히고 컴퓨터과학과 공학 공부로 하루를 채웠다. 3년 반에 걸친 시민권 획득 절차를 거쳐 올 3월 프랑스 시민이 됐고, 국가대표팀이 됐다.
헤자지푸르는 히잡을 벗은 자신의 결정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더 일찍 하지 못해 아쉬웠다. 이란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가족은 멀리 떨어져 있지만, 몇 년간 전문적으로 체스를 두지 못했을 때의 생활이 힘들었더라도, 내 선택을 의심한 적은 없다. 좋은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란에서 22세 여성 마흐사 아미니가 머리에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찰에 체포됐다가 의문사한 사건을 계기로 반정부 시위가 확산하는 것을 지켜본 헤자지푸르는 "역사적이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란 안팎의 국민 모두 단결에서 정권에 맞서 싸우고 있다"며 "조만간 변화와 혁명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또 "그곳에서 26년을 보내면서 이란 여성들이 이슬람 규칙과 일상생활에서 겪는 문제로 얼마나 제한을 받는지 봤다. 내가 겪었던 일들을 생각해보면 중립적일 수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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