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미국 국채 금리가 연일 급등하면서 한국 경제에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 세계 채권 금리의 벤치마크 역할을 하는 10년 만기 미 국채 금리는 3일(현지시간) 연 4.81%를 기록해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7년 이후 16년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다. 지난달 27일 4.5%를 넘어선 데 이어 다시 4.8%를 돌파한 것으로, 이런 속도라면 조만간 5%대 진입할 가능성도 있다. 국채 금리가 치솟은 것은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앞으로도 상당 기간 고금리를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우세한 가운데 3분기 국채를 역대 최대 규모로 발행하겠다는 미국 재무부의 계획이 채권시장에 부담으로 작용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지난달 20일 "최종 금리에 도달한 것이 아니다"라면서 연내 추가 금리 인상을 강하게 시사한 바 있다. JP모건체이스의 제이미 다이먼 최고경영자(CEO)는 7%대 금리도 가능하다면서 스태그플레이션(고물가 속 경기 침체)을 경고하기도 했다. 미 국채 금리의 고공행진에 미국과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 증시는 동반 급락했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연고점을 또 경신했다.
한미 간 금리 격차가 이미 2%포인트까지 벌어진 상황에서 미국이 추가로 기준금리를 올릴 경우 한국도 금리를 올리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내몰릴 가능성이 크다. 정책금리 역전 현상이 심화하면 국내에 있던 외국인 투자 자금이 해외로 빠져나가면서 환율이 급등하는 등 경제 전반에 큰 부담을 주기 때문이다. 문제는 한국과 미국의 경제 상황이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미국은 고용 등 여러 경기 지표가 너무 강해 금리 인상을 통해 이를 진정시킬 필요가 있지만 한국은 반대로 침체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올해는 1%대 성장이 사실상 확정됐고 내년 성장률도 2%대를 장담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이런 환경에서 한국은행이 마지못해 금리를 추가 인상할 경우 환율과 물가에는 다소 도움이 되겠지만 경기 회복의 모멘텀은 더욱 약화할 수밖에 없다. 이자 부담이 커진 가계가 소비를 줄이고, 기업이 자금 조달의 어려움으로 투자를 줄이면 내수 침체는 더욱 깊어질 게 뻔하다. 물가를 잡자니 경기가 걱정이고, 경기를 진작시키자니 물가와 환율이 걱정인 진퇴양난의 국면이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최근 다섯 차례 연속 동결한 것도 이런 이유일 것이다.
더 큰 문제는 고금리 장기화가 유력한데도 가계와 기업의 부채가 빠른 속도로 증가했다는 것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세계 부채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민간 부채의 비율은 281.7%로 최근 5년 새 42.8%포인트가량 상승했다. 특히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2017년 92.0%에서 지난해 108.1%로 16.2%포인트 올라 데이터 확인이 가능한 26개국 중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가계대출의 상당 부분은 부동산 시장으로 흘러 들어간 것으로 추정된다. 이자 부담을 버티지 못한 '영끌족'의 매물이 쏟아지면 부동산 시장과 금융 시장이 상호 연쇄 작용을 일으키면서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를 수도 있다. 여기에 수출 부진으로 기업 실적이 줄고 불안정한 물가 앙등까지 지속하면 장기 침체가 고착할 공산이 크다. 우선 정부와 한은은 금융 시장의 불안이 실물경제로 전이되지 않도록 작은 불씨라도 조기에 선제 진화해야 한다. 정책 일관성을 통해 시장의 신뢰를 얻는 것도 중요하다. 한쪽에서는 부동산 시장 연착륙을 모색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규제 완화라는 명분으로 집값을 자극하는 엇박자는 결코 없어야 한다. 정부와 기업, 가계 모두 신발 끈을 조여 매고 시시각각 다가오는 위기에 철저히 대비하길 바란다.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