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발적 충돌 우려에 美, 대화채널 복원 요구…무반응 中, '핫라인 부재' 활용 해석
대만·남중국해 위기 키워 대만 총통선거 개입·남중국해 영유권 확장 시도 관측도
(서울=연합뉴스) 인교준 기자 = 미국과 중국의 고위급 국방안보 채널 중단 사태가 길어지고 있다.
작년 11월 22일 캄보디아에서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과 웨이펑허 중국 국방부장 간 회담 이후 1년이 가까워지고 있다.
지난 3월 임명된 리상푸 중국 국방부장이 4개월 만인 지난 7월 공개석상에서 사라지면서 말 그대로 암중모색 상황이다.
중국은 지난해 8월 2∼3일 낸시 펠로시 당시 미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을 빌미 삼아 미국과의 3개 군 통신 채널을 끊은 데 이어 국방장관 회담도 중단했다.
중국은 대통령과 부통령에 이은 권력 서열 3위인 미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이야말로 중대한 내정간섭이라면서, 교류 중단은 당연한 대응조치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중국이 일부러 군사적 긴장을 조성해 미중 관계는 물론 대만·남중국해 문제에서 이득을 챙기려 한다는 분석도 있다.
미국은 고위급 국방 안보 채널 부재로 인한 우발적 충돌 가능성을 우려하면서 채널 복원을 요구하고 있으나, 중국이 이를 애써 외면하는 모양새다.
◇ 美 "실질적 대화 필요"…中, 묵묵부답
미국 국방부의 일라이 래트너 인도·태평양 안보 담당 차관보는 5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열린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주최 토론회에서 미중 국방 지도자들 간에 "실질적인 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양국 간 긴장이 자칫 충돌로 이어지는 걸 방지하려면 '핫라인' 복원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중국이 1년 넘게 잦은 군사훈련과 도발로 대만해협 위기를 고조시키는 한편 남중국해 영유권 장악 시도를 지속하는 가운데 지난 2월 중국 정찰 풍선(중국은 과학연구용 비행선이라고 주장)의 미국 영공 침입 사건 이후 미중 간에도 충돌 위기가 이어지고 있어서다.
이 때문에 래트너 차관보는 중국이 고위급 국방 안보 채널 재개를 거부하고 있으나, "계속해서 요청할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 조 바이든 미 행정부는 2월과 5월에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보내 카운터파트인 왕이 외교부장(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 겸 당 외사판공실 주임)을 설득해 국방 안보 채널 복원을 시도했다.
올해에만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과 재닛 옐런 재무장관, 존 케리 기후 특사, 지나 러몬도 상무장관 등 장관급 고위 인사 4명을 중국에 보내 양국 관계 개선에 힘썼으나, 중국은 유독 고위급 군사 회담은 기피하고 있다.
특히 지난 6월 2∼4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시아안보회의(샹그릴라 대화) 시기에 오스틴 미 국방장관이 현지에서 리상푸 중국 국방부장에게 회담을 요구했으나 거절당했다.
당시 중국은 미 행정부가 리 부장 제재를 고수하기 때문에 회담을 할 수 없다는 뜻을 간접적으로 밝혔으나, 중국 내 사정기관의 반(反)부패 조사 대상자로 추정되는 리 부장이 공개석상에서 사라진 이후에도 회담에 응하지 않고 있다.
지난 8월 14∼16일 남태평양 섬나라 피지에서 열린 연례 인도·태평양 군참모총장 회의를 계기로 존 아퀼리노 미 인도·태평양 사령관과 쉬치링 중국 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합동참모부 부참모장의 만남이 성사돼 미·중 고위급 군사 회담 가능성이 점쳐졌으나, 이마저도 희미해졌다.
바이든 행정부는 11월 미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바이든 대통령과 시진핑 국가주석 간 회동을 준비하면서, 이를 기회로 미·중 고위급 군사 회담도 재개한다는 계획을 가진 걸로 보인다. 그러나 중국은 아직 확답을 주지 않고 있다.
◇ 中, 대만 압박? 남중국해 영유권 강화?…美 '디리스킹 압박' 약화 의도 해석도
중국의 고위급 군사 회담 거부에는 여러 노림수가 있어 보인다.
이전에는 가능하면 미국과 안보·군사적 대립을 피해 왔던 중국이 이젠 군사적 위기 고조를 미국을 비롯해 여러 나라에 압박 수단으로 쓰는 양상이다.
실제 중국은 작년 8월 펠로시 미 하원의장의 방문을 빌미 삼아 거침없는 군사 압박을 지속해왔다. 같은 달 인민해방군 동부전구를 동원해 사실상 침공을 염두에 둔 '대만 봉쇄 군사훈련'을 한 것이 시작이다. 이때 중국은 대만 상공을 지나는 탄도미사일을 발사해 충격을 줬다.
이어 지난 4월 차이잉원 대만 총통의 방미 때 케빈 매카시 미 하원의장과 만남을 핑계로 재차 대만 봉쇄 훈련을 한 데 이어 군용기와 함정을 보내 대만해협 중간선 침범을 상시화하고 있다.
중국은 이같은 도발을 통해 대만 독립 의지를 차단하려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안보 불안을 조성함으로써 평화와 안정을 바라는 대만 유권자들이 내년 1월 치러질 총통선거에서 중국과 적대적인 민주진보당(민진당)을 기피하도록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중국은 2016년 집권한 이후 8년 동안 독립 의지를 꺾지 않아 온 차이 총통과 일절 접촉하지 않아 왔으며 이번 선거에서 민진당 라이칭더 후보를 낙선시키는 데 전력을 기울이는 모양새다.
중국은 아울러 미국과 핫라인이 가동되지 않는 상황에서 남중국해 영유권 장악에 더 박차를 가하는 모습이다.
중국은 근래 스프래틀리 군도(중국명 난사군도) 세컨드 토머스 암초(중국명 런아이자오·필리핀명 아융인)에서 필리핀과 충돌을 불사하고 있다.
이 암초는 필리핀이 1999년 이곳 해역에 좌초한 자국 군함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암초에 10명 안팎의 해병대원을 상주시키고 있는 곳이다. 이에 암초 주변을 둘러싼 중국은 접근하는 필리핀 해경 선박에 물대포 공격을 가하고 있다.
중국은 남중국해 스카버러 암초(중국명 황옌다오) 주변 해상에는 부유식 장벽까지 설치하면서 필리핀과 갈등을 지속하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과 관련, 래트너 차관보는 중국 지도부가 자신들의 목표 달성을 위해 군을 '배후'로 활용했다고 지적했다.
핫라인이 끊긴 '불편한' 미·중 관계를 지속함으로써 첨단반도체·양자컴퓨팅·인공지능(AI) 기술에 대한 접근을 막는 미국의 '디리스킹(de-risking·위험 제거)' 압박을 약화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kjih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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