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엔 우크라 병사 장례식 폭격해 민간인 51명 몰살
"2015년 해산된 우크라 민병대 지휘관으로 오인해 공격했을수도"
(서울=연합뉴스) 황철환 기자 = 우크라이나 전쟁이 1년 8개월째에 접어든 가운데 러시아군의 시가지 폭격으로 10살 난 아들을 잃은 우크라이나 아버지의 망연자실한 모습이 카메라에 잡혀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다.
6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이날 오전 6시 30분께 우크라이나 북동부의 주요도시 하르키우 시내에 두 발의 미사일이 떨어졌다.
현장에 있던 취재진은 "미사일이 날아들어 오는 소음은 전투기가 바로 머리 위에서 저공비행을 하는 듯 들릴 정도로 컸다"고 전했다.
그 직후 두 차례에 걸쳐 귀청이 터질 듯한 폭음이 잇따랐다. 한 발은 시내 중심가에, 다른 한 발은 10살 소년 티모피 비츠코가 할머니와 곤히 자고 있던 3층짜리 아파트에 떨어졌다.
아파트 맨 위층의 3분의 1가량이 사라지면서 큰 구멍이 뚫렸고, 티모피의 아버지 올레흐는 잔해를 헤치고 아내와 막내아들을 구해냈지만 티모피는 구하지 못했다.
결국 티모피는 구조대원들이 현장에 출동한 뒤에야 스파이더맨이 그려진 파자마를 입고 숨진 채로 발견됐다.
올레흐는 티모피가 자기 몸보다 두배는 큰 시신운반용 가방에 넣어지는 모습을 망연자실한 눈빛으로 지켜봤다. 피투성이의 찢어진 운동복 차림으로 그가 서 있는 장면은 현지 언론이 촬영한 사진으로 전 세계에 전해져 전쟁의 참혹한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텔레그래프는 올레흐가 너무나도 상심해 직접 이야기를 들어볼 수는 없었다고 전했다.
하르키우에 떨어진 또 다른 미사일은 시내 한복판에 4.5m 깊이의 커다란 구멍을 만들고 호텔 등 주변 건물에 손상을 입혔다.
현지 당국자들은 이날 공격으로 비츠코 가족 외에 최소 28명이 다쳤다면서 러시아군이 하르키우 시내를 겨냥해 거의 1t 가까운 폭발물을 탑재 가능한 이스칸데르 전술 탄도 미사일을 발사한 것으로 추정했다.
티모피가 살던 아파트와 시내 중심가를 겨냥해 미사일 공격을 가한 이유는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러시아 국경과 가까운 하르키우는 작년 2월 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래 거의 상시로 폭격을 당해왔고, 한 호텔 지배인은 "이건 그저 평소대로의 일"이라며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고 텔레그래프는 전했다.
우크라이나 북동부 지역에선 전날에도 하르키우에서 동쪽으로 80㎞ 떨어진 흐로자 마을내 카페와 상점 등이 미사일 공격을 받아 민간인 51명이 떼죽음을 당했다.
이들 중 일부는 전사한 우크라이나 병사의 장례식에 참석한 뒤 카페에 모여 있다가 화를 입은 것으로 파악됐다.
이 사건은 러시아의 단일 공격으로는 가장 많은 민간인 사망자를 낸 사례 중 하나로 꼽힐 전망이다.
일각에선 러시아군이 장례가 치러지는 병사 안드리 코지르를 동명이인인 다른 인물로 잘못 알고 공격을 감행했을 것이란 의혹도 제기된다.
2014년 우크라이나 동부 친러 분리주의 세력의 독립 선언을 계기로 벌어진 '돈바스 분쟁'에서 전쟁범죄를 저질렀다는 의혹을 받는 우크라이나 민병대 아이다르 대대의 한 지휘관과 이름이 같은 까닭에 오인공격을 받았다는 것이다.
코지르는 작년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진 직후 목숨을 잃었지만, 후로자 마을이 러시아군에 점령된 탓에 드니프로에 매장돼 있었다.
작년 가을 흐로자가 해방되자 그의 아내와 아들은 코지르를 고향 땅에 옮겨와 정식 장례식을 치르려 했으나, 러시아군의 이번 공격으로 가족들마저 목숨을 잃은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에선 마을 내에 있던 친러 부역자가 러시아 측에 장례식 관련 소식을 알렸고, 러시아군이 전쟁범죄를 보복한다는 명분으로 민간인 지역에 미사일을 퍼부었을 것이란 이야기가 나온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극우세력과 연계됐다는 아이다르 대대는 이미 2015년 정부에 의해 해산된 상태라고 텔레그래프는 지적했다.
hwangc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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