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팔 전쟁 현장] "이제 살았다" 발 묶였던 韓 관광객 텔아비브 공항서 귀국길
한국인 192명 대한항공 편으로 출발…다음 직항편 운항 계획은 미정
탈출 인파 행렬로 벤구리온 공항 출국장 북새통…입국장은 한산 '극명하게 대조'
(텔아비브·이스탄불=연합뉴스) 김상훈 특파원 = "성지순례 일정이 단축되게 돼 못내 아쉽지만, 무사히 떠나게 돼서 다행입니다. 다행히 언론에 보도된 참혹한 상황은 거의 겪지 않았습니다."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한 지 나흘째인 10일(현지시간) 이스라엘 텔아비브 공항의 입국장과 출국장의 풍경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전 세계 항공사들이 하마스의 로켓 공격을 우려해 텔아비브 노선 운항을 잇달아 취소하면서 입국장은 그 어느 때보다 한산했다.
기자도 애초 예약했던 카이로발 이스탄불 경유 항공편이 갑자기 취소되면서, 카이로-이스탄불 구간 표만 간신히 구해 튀르키에로 들어온 뒤, 또다시 차량으로 80㎞를 이동해 사비하 괵첸 국제공항에서 이날 오전 유일하게 텔아비브로 오는 비행기를 탔다.
기자가 탄 여객기가 이스라엘의 관문인 텔아비브 공항에 승객과 짐을 내려놓았을 시점에 공항에 도착한 다른 국제선 항공편은 그리스와 스위스발 2편뿐이었다.
평소 많은 사람으로 붐비며 긴 줄이 늘어섰던 입국장은 아주 한산했고, 수하물용 10개 컨베이어 벨트 가운데 절반 이상이 쉬고 있었다.
반면 3층 출국장은 인산인해였다.
이스라엘에 체류 중인 자국민을 대피시키기 위해 각국이 전세기 등을 동원했고, 로켓 공격 우려 때문에 비행기가 뜨지 않아 하루 이틀 발이 묶였던 외국인 등이 한꺼번에 몰렸기 때문이다.
이런 북새통 속에 전쟁의 영향을 받은 한국 관광객들도 적잖이 눈에 띄었다.
출국장 가운데 쪽에 마련된 대한항공 체크인 카운터에는 오전 11시를 넘어서면서 긴 줄이 늘어섰다.
대부분 교회나 성당 등에서 교우들과 함께 성지순례를 왔던 사람들이다.
이들 중 일부는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 이후 예정됐던 일정을 줄이거나 바꾼 경우도 있고, 예정된 일정을 소화하고도 인천행 직항편 출발이 지연되면서 하루 이틀간 몸과 마음고생을 해야 했다.
경기도에서 왔다는 관광객 이 모(70) 씨는 "성당 교우 31명이 함께 성지순례를 왔다. 전쟁이 터지면서 일정을 일부 단축했다"고 아쉬워했다.
이씨는 "언론에서 보도되는 참혹한 광경, 로켓포탄이 떨어지거나 경보가 울리는 두려운 상황은 다행히 경험하지 못했다"며 "그래도 끝까지 긴장했는데 안전하게 떠날 수 있게 돼 다행"이라고 말했다.
사업차 이스라엘 중부 하이파에 왔다가 전쟁이 터지는 바람에 귀국이 하루 지체됐다는 이경용(59) 씨는 "하이파는 하마스의 로켓 발사나 무장대원들의 공격을 받지 않아 평온했다"고 말했다.
그는 "귀국 비행편 일정이 하루 늦춰지면서 호텔과 렌터카 비용이 조금 더 들어가긴 했지만, 아무런 문제 없이 돌아갈 수 있게 돼 기쁘다"고 웃어 보였다.
서울의 한 교회에서 35명의 교우와 성지 순례를 왔다는 최모(65)는 "전쟁 터지기 전날 요르단으로 넘어갔는데, 하마스의 공격 소식을 접한 뒤 예루살렘 일정을 취소하고 요르단에 머물러 있었다"고 상황을 전했다.
그는 "성지순례의 핵심인 예루살렘 일정이 취소됐지만 교회에서도 위험한 성지순례를 원하지 않고 해서 접었다"며 "덕분에 로켓포탄과 사이렌의 공포를 경험하지 않고 일정을 마무리했다"고 말했다.
공항에서 기자가 만난 한국 관광객 대부분은 이제 귀국길에 오를 수 있다는 안도감에 여유로운 웃음을 보였다.
대한항공 텔아비브 지점의 전훈 지점장은 "오늘 192명의 한국 국적자가 귀국하지만 자리가 없어 못가시는 분들도 있다. 일단 이스탄불, 두바이 등을 경유하는 방법은 안내해 주고 있다"고 말했다.
전 지점장은 "가짜 뉴스도 많고 상황이 시시각각 변하고 있기 때문에 변수가 많다. 오늘 비행기 운항도 아침에 결정됐다"며 "다음 비행 일정도 잡히지 않았다. 오늘 내일 회의를 해봐야 윤곽이 잡힐 것 같다"고 설명했다.
meola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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