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원의장 축출' 강경파 반대에 의장후보 사퇴…공화, 혼란 가중
우크라 지원·정부 셧다운 '발등의 불'…임시의장 권한 확대 가능성
(워싱턴=연합뉴스) 강병철 특파원 = 미국 하원 다수당인 공화당의 하원의장 후보로 선출된 스티브 스컬리스 원내대표가 선출된 지 하루만인 12일(현지시간) 전격 사퇴하면서 공화당발(發) 하원 대혼란 사태가 장기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이어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등의 지원 문제가 발등의 불이 되면서 하원의 조속한 정상화가 긴요한 상황에서도 공화당 내 소수 강경파의 몽니로 인해 하원 리더십 유고 사태를 해소하지 못하고 있다.
강경파가 지지하는 후보에 대해서는 중도파에서 반대하고 있어 11월 중순이 시한인 내년 회계연도 예산안 처리는 물론 한반도 안보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은 국방수권법안(NDAA·국방예산법안) 등의 처리에도 비상등이 켜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 강경파 20명 안팎 공개 반대에 하원의장 후보, 선출 하루 만에 백기
스컬리스 원내대표의 하원의장 후보직 사퇴는 강경파 20명 안팎 의원이 공개적으로 반대 의사를 밝힌 가운데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전날 진행된 투표에서 113표를 얻으면서 짐 조던 하원 법사위원장(99표)을 누르고 후보로 선출된 스컬리스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까지 가결 정족수인 217표를 확보하기 위해 자당 의원들을 상대로 설득전을 진행했다.
공화당 의원이 모두 221명이기 때문에 5명 이상 이탈표가 나오면 안 되는 상황에서 당장 이날에만 20명 안팎의 강경파 의원들이 공개적으로 스컬리스 후보를 찍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조던 위원장이 스컬리스 후보 지지 입장을 밝혔음에도 이들 상당수는 조던 위원장을 밀었다. 투표 결과에 대한 '깨끗한 승복'이라는 미덕은 찾아볼 수 없었다.
국경과 이민, 재정, 해외 안보 등에서 진정한 개혁이 필요한데 스컬리스 하원의장 후보는 '현상 유지' 후보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었다.
심지어 일부 의원은 현역 하원 의원도 아닌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하원의장으로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공화당은 이날 오후 의원들에게 휴대전화 반입까지 금지하면서 2시간여 비공개회의를 진행했으나 내부 분열상만 재확인됐다.
급기야 스컬리스 후보를 지지하는 마이크 로저스 의원(앨라배마)은 회의장에서 뛰쳐나와 "민주당 도움 없이는 217표 확보는 불가하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공화당은 이날도 예정됐던 하원 본회의를 전날에 이어 다시 취소했다.
스컬리스 원내대표 반대 입장을 천명한 극우 성향의 마조리 테일러 그린(조지아) 하원의원은 본회의를 개최해 표 대결을 하자고 당 지도부를 압박하는 등 당내 분열 상황은 계속 터져 나왔다. 결국 스컬리스 원내대표는 이날 저녁 강경파 의원들에게 백기를 들었다.
애초 150표 정도 득표를 기대했으나 실제 113표밖에 못 받은 것도 사퇴 결정에 영향을 줬을 것으로 분석된다.
◇ 답 없는 공화당 혼란에 미국 안보·민생 모두 위기
스컬리스 원내대표 사퇴로 공화당은 다시 지난 3일 강경파 8명의 반란으로 자당 소속 케빈 매카시 전 의장이 해임됐을 때로 되돌아갔다.
특히 이번에는 "뽑기를 해서 진 사람이 하원의장을 하는 것으로 하자"(마이크 콜린스 하원의원)는 자조적인 말이 나올 정도로 더 답이 없는 상태다.
당장 새 하원의장 후보를 뽑는 선거를 다시 진행할지, 전날 진행된 투표에서 진 조던 위원장을 후보로 내세울 것인지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마크 앨포드 의원(미주리)은 "아무 생각이 없다"면서 "우리는 방향타가 없는 배"라고 말했다고 NBC방송 등이 전했다.
강경파 모임인 프리덤 코커스 창립멤버인 조던 위원장이 하원의장 후보로 나서게 되더라도 문제라는 게 공화당의 우려다.
113표를 얻은 스컬리스 후보가 설득전에 실패했다는 점에서 99표를 받은 조던 위원장이 당내에서 가결에 필요한 표를 받기는 더 어렵다는 관측에서다.
마이크 가르시아 의원(캘리포니아)은 미국 언론에 "소수의 횡포에 대해 보상해야 하느냐는 학문적 논쟁이 있으나 나는 조던을 지지한다"면서 "문제는 조던에게도 스컬리스 같은 문제가 있으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조던 위원장 본인은 적어도 13일까지는 입장을 내지 않겠다는 방침이라고 의회전문매체 더힐이 전했다.
하원 공화당은 13일 오전 다시 회의를 진행할 예정이다.
하지만 공화당 내 의원 중에 스컬리스 원내대표나 조던 위원장만큼 득표력을 가진 제3의 후보가 있는지도 불투명한 상태다.
이 때문에 하원의장 공백에 따른 하원 마비 사태가 장기화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하원 지도부의 공백을 해소하기 전에는 하원에서 일반적인 입법과 예산안 처리는 사실상 불가능하게 된다.
특히 하마스의 기습 공격을 받은 이스라엘에 대한 지원,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 등을 위한 추가 예산 처리가 시급한 상황이지만 돌파구는 보이지 않고 있다.
나아가 내년 회계연도 예산의 경우도 일시적 업무정지(셧다운)를 피하기 위해 지난달 30일 처리한 45일짜리 임시예산안의 시한(11월 17일)이 한 달여밖에 남지 않은 상태다.
이때까지 새 예산안이나 추가 임시예산안을 처리해야 하는데 공화당 내 강경파의 강화된 입지를 고려할 때 쉽지 않다는 전망이어서 연방정부 셧다운의 가능성은 점차 커지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그뿐만 아니라 주한미군 규모 유지, 한국에 대한 미국의 확장억제 공약 확인 등의 내용이 담긴 NDAA의 처리도 어려워질 수 있다.
이런 이유에서 하원의장 공백이 길어질 경우 임시 하원의장의 권한을 확대하는 논의가 힘을 받을 가능성도 있다.
현재는 임시의장의 권한이 새 의장 선출에만 제한돼 있다는 것이 민주당 주장이지만, 이스라엘·우크라이나 지원 등 예외적 사안에 대해서는 권한 행사를 가능하도록 할 수 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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