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중환자에겐 사형선고"…미국·EU도 부정적 입장
이스라엘군 "24시간 불충분 인지…시간 제공 노력"
(브뤼셀·제네바=연합뉴스) 정빛나·안희 특파원 = 이스라엘이 13일(현지시간) 가자지구 중심도시 가자시티 주민 약 110만명 전원에게 남쪽으로 이동하라는 대피령을 내리자 국제사회에선 우려와 비판의 목소리가 잇따랐다.
전면 봉쇄된 가자지구 내 주민의 인도적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군사적 목적의 즉각적인 대피 경고가 비현실적인 데다 사태를 더욱 악화할 뿐이라는 것이다. 이스라엘에 우호적인 미국과 유럽연합(EU)까지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타릭 자사레빅 세계보건기구(WHO) 대변인은 이날 언론 브리핑을 통해 "가자지구 보건당국은 병원 환자를 가자지구 남쪽으로 대피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WHO에 알렸다"면서 "환자를 대피시키라는 요구는 잔인함 그 이상의 일"이라고 밝혔다.
자사레빅 대변인은 "인공호흡기 등 생명유지 장치에 의존하는 게 유일한 생존 수단인 부상자가 (가자지구에) 많다"며 "이런 중환자에겐 사형 선고"라고 비판했다.
특히 이스라엘군이 대피 시한을 24시간으로 제시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하마스의 공습에 보복 대응을 벌이는 이스라엘의 입장을 지지하는 미국까지 대피령의 비현실성을 지적하고 나섰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이날 MSNBC와의 인터뷰에서 대피령에 대해 "매우 짧은 시간에 많은 사람이 이동하는 것"이라며 "무리한 요구"라고 말했다.
다만 "우리는 그들(이스라엘)이 무엇을 하려는지, 왜 그렇게 하려는 지 이해한다"며 "진짜 표적인 하마스로부터 민간인 인구를 분리하려는 것"이라고 덧붙이긴 했다.
중국을 방문 중인 호세프 보렐 유럽연합(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기자회견에서 "다가올 군사작전에 대비해 내린 민간인에 대한 사전 경고"라면서도 "24시간 안에 약 100만명이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은 완전히 비현실적(utterly unrealistic)"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을 만난 요르단 압둘라 2세 역시 "팔레스타인인들을 쫓아내면 안 된다. 위기가 주변국으로 확산하고 난민 문제를 악화하는 일이 벌어져선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AFP 통신이 전했다.
튀르키예 정부는 비판 수위를 더 높였다.
튀르키예 외무부는 이날 성명에서 이스라엘군이 내린 대피령을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강조하고 "이 중대한 실수를 되돌리고 가자지구 민간인에 대한 무자비한 행위를 즉각 중단할 것을 기대한다"고 촉구했다.
이어 "수일간 무차별적 폭격을 받고 전기와 물, 음식이 끊긴 250만 명의 가자 주민에게 지극히 제한된 지역으로 이주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명백한 국제법 위반으로 인도주의에 배치된다"고 밝혔다.
유엔 팔레스타인난민기구(UNWRA)는 성명을 통해 "24시간 이내에 가자지구 북부에 거주하는 100만명 이상의 민간인을 이동시키라는 요구는 충격적인 것"이라고 반발했다.
이어 "지금 가자지구는 빠른 속도로 '지옥의 구멍'이 돼 가고 있으며 붕괴 직전에 있다"며 "(대피령은) 전례 없는 비극을 초래할 뿐이며 가자지구 사람들을 나락으로 몰아넣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스라엘군은 당초 제시한 것으로 알려진 '대피시한 24시간'과 관련해서 모호한 입장을 보였다.
이스라엘 육군 수석대변인인 다니엘 하가리 소장은 이날 언론 브리핑에서 "우리는 (대피를 위한) 시간을 제공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면서 "(전원 대피가) 24시간 안에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우리는 안다"고 말했다.
하가리 소장은 "24시간을 대피 시한으로 고지했느냐"는 질문에는 "난 그것이 정확한 시간이라고 말하지 않을 것"이라고만 답했다.
prayerah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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