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체류 우리 국민 163명 등 220명, 군 수송기로 14일 0시 귀국길
일주일 내내 폭발음과 사이렌 소리서 이제 '해방'…함께 탑승한 반려견도
미·영·프·독 등도 자국민 귀국 지원 창구 운영…출국 행렬 이어져
하늘길 풀리며 이스라엘 예비군들로 입국장도 붐벼…"가자지구로 간다, 마땅히 해야 할 일"
(텔아비브=연합뉴스) 김상훈 특파원 = "지난 10일 첫 수송기가 떠나고 나서 대한항공 측에서 로마와 두바이 등 제3국 경유 귀국을 안내해줬지만, 그곳까지 가는 비행기표 가격이 천정부지로 뛰는 바람에 두차례나 예매했다가 취소했습니다"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 7일째인 13일(현지시간) 이스라엘 관문인 벤구리온 국제공항 제3터미널.
정오가 지나자 입국장과 출국장 사이 2층 로비에 주이스라엘 한국 대사관이 마련된 임시 수속 창구에 한국 국적의 단기 체류객과 현지 교민, 주재원 가족 등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냈다.
한국 정부가 마련한 군 수송기 편으로 귀국길에 오르려는 사람들이었다.
자정을 넘겨 14일 0시1분 이스라엘 벤구리온 공항을 이륙한 우리 군 수송기 '시그너스'(KC-330)에는 현지 체류 한국인 163명과 일본인 51명, 싱가포르인 6명 등 총 220명이 탑승했다.
이들은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으로 발이 묶였거나 애초 예매했던 귀국 항공편이 취소돼 지난 일주일간 마음을 졸이며 불안감을 느껴왔다.
주이스라엘 한국대사관은 지난 12일 SNS 이스라엘 안전 정보 공지방을 통해 우리 국민 귀국을 위한 항공편 지원 소식을 알리고 탑승 신청을 받았다.
대사관 측은 항공편 출발 D데이로 잡은 13일 저녁 시작되는 유대 안식일을 앞두고 오후부터 대중교통 이용이 어려울 것으로 보고 신청자들에게 이날 오후 3시까지 공항에 집결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애초 예약했던 항공편이 전쟁으로 취소되면서 불안했던 일부 관광객들은 집결 시간보다 훨씬 일찍 공항에 나와 상황을 살폈고, 이젠 전쟁터를 떠나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됐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귀국이 무산될까 봐 끝까지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는 모습도 보였다.
자신들을 수송할 항공기가 군 수송기인 사실을 모르던 일부는 항공기 이륙 일정을 표시하는 전광판을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한국 국적기를 발견하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서 전광판에 출발 정보가 뜨고나서야 가슴을 쓸어내리는 모습이었다.
지난 4일 성지순례 관광차 이스라엘에 왔다는 조 모(여·58) 씨는 "우리 국민을 태운 대한항공기 비행기가 지난 10일 떠난 뒤에 한두차례 더 수송기가 뜰 것으로 예상하고 안심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조씨는 "원래 13일에 타기로 했던 비행편이 취소된 상태에서 대한항공에서 안내했던 로마 두바이 등 제3국 경유 귀국길의 경우 경유지까지 가는 비행운임이 천정부지로 뛰고 일정 확정도 안 돼 어제까지 패닉 상태였다"며 "뒤늦게 대사관에서 귀국 지원 공지를 해 신청하고 일찌감치 공항에 왔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하마스 공격 첫날인 지난 7일 예루살렘 감람산 관광 도중 폭발음과 함께 요란한 사이렌 소리를 들었다는 그는 "처음엔 무서워서 움직일 수도 없었다. 하지만 정보가 없어서 전쟁이 난 줄은 저녁에 숙소에 들어간 뒤에야 알았다"고 당시의 공포를 떠올렸다.
재단법인 원뉴맨패밀리 소속으로 지난 8월부터 이스라엘 유대 기구에서 알리야(해외 거주 유대인의 이스라엘 귀환) 지원 업무를 해온 황미진(여·32) 씨는 "전쟁이 터진 후에도 업무는 계속해왔지만, 상황이 점점 안 좋아지고 한국에 가는 비행편이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귀국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황씨는 "계속 사이렌이 울리는 상황을 처음 경험하는지라 처음엔 불안했지만 일에 집중하려 노력했다. 또 이스라엘 군 당국에서 사흘 치 식량을 준비하라고 했을 때는 충격도 받았다. 방공호에서 사흘간 생활을 하는 게 진짜냐고 현지 직원에게 묻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여수에서 왔다는 한 여성 관광객(59)은 "애초에 예매했던 비행기를 타려고 지난 10일에 공항에 왔다가 발길을 돌려야 했다. 그때부터 다소 불안했다"며 "언론에서 나오는 전쟁 소식을 계속 들으면서 더 불안해졌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 돌아간다니 마음이 놓이고 가족들도 안심하는 것 같다"며 "하지만 비행기가 뜰 때까지는 마음을 완전히 놓을 수 없을 것 같다"고 했다.
거제에서 온 관광객 홍수명(60) 씨는 "애초 예약한 비행편이 취소된 후 처음에는 다소 불안했다"며 "하지만 대사관과 대한항공 등에서 긴급하게 잘 지원해주고 친절하게 응대해줘서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벤구리온 공항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리시온 레치옹에 머물렀다는 그는 "7일 새벽부터 어제까지도 폭발음과 사이렌 소리가 계속 들었다. 하지만 애써 덤덤하게 넘기려 노력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군수송기로 귀국하는 지인을 배웅하러 나온 신 모(여·50) 씨는 "업무 때문에 11월까지 이스라엘에 머무를 예정이다. 예루살렘은 상대적으로 안전하다"며 "하지만 숙소 인근의 아랍계 동네가 소란스러울 때마다 이스라엘 경찰이 들어와 충돌할까 봐 겁난다. 숙소를 옮길까 생각 중"이라고 했다.
이날 군 수송기로 귀국하기 위해 공항에 나온 사람 중에는 단기 체류객 이외에 현지 교민과 주재원 가족들도 있었다.
반려견을 데리고 공항에 나온 주재원 가족은 "우리가 떠나면 돌봐줄 사람이 없어 어쩔 수 없이 데려왔는데, 반려견을 태워주지 않을까 봐 걱정"이라고 했다.
한국 이외에도 독일,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 등 유럽 국가 대사관들이 공항 2층에 자국민 귀국 지원을 위한 창구를 열었다.
출국장인 3층에도 미국, 덴마크, 핀란드, 불가리아 등이 지원 창구를 열고 자국민의 귀국을 도왔다.
주요 국가들이 이스라엘의 상황을 그 만큼 심각하게 여기고 자국민 보호에 나섰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귀국 지원 상황을 묻기 위해 독일대사관 측 창구에 접근하자 아무것도 말해줄 것이 없고 사진도 찍어서는 안 된다며 민감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전날까지 하마스의 집중적인 로켓 공격으로 닫혔던 하늘길이 점차 풀리면서 이날은 출국장뿐만 아니라 입국장도 꽤 붐볐다.
특히 이날 낮에 도착한 비행기에는 동원령에 따라 가자지구 작전에 참여하기 위해 해외에서 온 예비군들도 다수 섞여 있었다.
입국장에는 이스라엘 국기와 국기 색깔인 흰색과 파란색 풍선 등을 들고나온 가족과 친척 수십명이 입국하는 예비군 동원 대상자를 껴안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참전을 위해 뉴욕에서 왔다는 한 남성은 "일요일(15일)부터 군복을 입고 가자지구 인근으로 간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인데 비행편이 계속 취소되면서 귀국이 늦어졌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meola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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