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싫어' 우토로 방화 들은 日 여성, 통역 감사 선물로 한국인에게 받은 장구 기증
(도쿄=연합뉴스) 박성진 특파원 = 한국의 전통악기 장구가 태평양전쟁 기간 격전지였던 일본 오키나와와 재일 조선인 집단 거주지인 교토부 우지시 우토로 마을을 이어줬다.
16일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에 따르면 지난달 27일 교토부 우지시의 니시우지중학교 문화제에서 농악 공연이 펼쳐졌다.
학교 체육관 무대에서 학생들 갈채를 받은 이들은 우토로 마을에 사는 60∼80대 재일 교포 2세 여성들.
행사에는 한복을 입은 우토로 농악대 재일 교포 2세들과 함께 우토로 마을 김순이 씨의 지도를 받은 이 학교 학생들도 참여했다.
우토로 마을은 일제강점기 교토 비행장 건설을 위해 동원된 조선인이 모여 살면서 형성된 주거지다. 이곳 주민들은 1980년대 후반까지 상수도가 정비되지 않은 열악한 환경에서 온갖 차별을 받으며 생활했다.
우토로 마을에는 약 2년 전인 2021년 8월 20대 실직자인 아리모토 쇼고가 빈집에 불을 질러 가옥 등 7채가 불탔다. 그는 "한국이 싫었다"고 범행 동기를 밝혀 논란이 일기도 했다.
니시우지중학교 학생들은 인권·평등 교육의 하나로 우토로의 재일 교포 생활사를 배우는데, 교류를 심화하기 위해 우토로 농악대를 문화제에 초청했다.
특히 이번에 농악대가 연주한 악기 중 하나인 장구가 오키나와 출신 여성이 기증한 것이라 행사에 의미를 더했다.
미국이 통치하고 있던 오키나와가 1972년 일본에 반환된 이후 매년 5월 15일 오키나와에서는 시민단체가 평화 행진을 벌이며 주일미군기지 문제 해결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이 행진에는 10년 전부터 한국의 문화예술단체도 참가하고 있다.
니시우지중학교 농악 공연에 쓰인 장구는 오키나와 평화 행진에 참여한 한국인들의 통역으로 활동한 일본인 아리메 유리 씨가 감사의 선물로 받은 것을 기증한 것이다.
아리메 씨는 애초 장구를 오키나와에 있는 지인 음악인에게 맡겼다.
우토로 마을 방화 사건을 듣고 걱정한 아리메 씨의 지인은 "악기를 우토로에 기증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해 기증이 성사됐다.
한국에서 오키나와로 건너간 장구는 올해 봄 우토로 마을에까지 전달됐다.
김순이 씨는 "오키나와 사람들에게 정말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 말을 전해 들은 아리메 씨는 "악기가 가장 어울리는 곳에 자리 잡았다. 나야말로 감사하다"고 화답했다.
sungjinpar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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