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지구 유일한 통행로…"외국 여권 있어도 통행 못해" 목격담
각국 구호물자 반입 대기 중…이집트, 대규모 난민 우려해 난색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지상전을 예고하고 주민에게 대피령을 내렸으나 남쪽 이집트로 연결된 유일한 통행로는 여전히 열리지 않고 있다.
15일(현지시간) 미국 CNN 방송, 로이터 통신 등에 따르면 서방 각국이 가자지구에서 자국민 대피를 위해 이 통로를 열려는 노력이 주말 동안 계속됐지만 외국인 통행마저 원활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보도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이날 카이로에서 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을 만난 뒤 취재진에게 라파 통로가 재개통될 것이라고 말했다.
블링컨 장관은 "가자 주민을 지원하기 위한 물품들이 마련됐다"며 "유엔, 이집트, 이스라엘 등과 함께 필요한 사람에게 지원하는 방식을 준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국경관리 담당자는 CNN에 외국 여권을 소지한 팔레스타인인 수백 명이 국경으로 몰렸지만 몇 시간 동안 거리에 방치됐다며 "여행자든 거주자든 어느 나라 거주자든 국경을 통과할 수 없는 상태"라고 전했다.
이 당국자는 이집트가 통로를 콘크리트 판으로 막았다고도 주장했다.
이집트는 이같은 주장을 부인했다. 사메 수크리 이집트 외무장관은 국경이 열려 있지만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가자지구 쪽 도로가 마비됐다고 말했다.
라파는 가자지구 남쪽 지역으로. 이집트가 이곳에서 국경을 맞대고 있다. 이집트는 그러나 지난 7일 시작된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와 이스라엘군 교전으로 남쪽으로 피란민이 몰려오고 구호 물자가 끊긴 와중에도 라파 통행로를 통제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사실상 봉쇄하고 대규모 지상전을 예고한 상황에서 이곳은 인도주의적 재앙을 막을 유일한 보급로이자 주민들 탈출구로 꼽힌다.
이집트 적신월사에 따르면 튀르키예와 아랍에미리트, 요르단, 튀니지, 세계보건기구(WHO) 등의 구호 물품을 실은 항공기가 최근 라파에서 약 45㎞ 떨어진 이집트의 엘 아리시 국제공항에 잇따라 도착해 가자지구 출입 허가를 기다리고 있다.
이집트는 가자지구로 향하는 인도주의적 통로를 열겠다는 의사를 거듭 밝히고 있다. 다만 대규모 난민이나 무장정파 하마스 조직원 유입을 우려해 가자지구 주민을 받아들이지는 않겠다는 입장이다.
엘시시 대통령은 지난 12일 군 졸업식에 참석해 이집트가 처한 상황을 '불타는 마을의 외딴 집'에 비유했다.
그는 "이 어려운 시기에 의료적이든 인도주의적이든 가자지구를 도우려고 노력하고 있다"면서도 "우리에게 많은 비용이 들지 않는 방식으로 평화와 안전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엘시시 대통령은 그러면서 이집트가 이미 900만명의 이민자를 수용했다고 언급했다.
유엔 국제이주기구(IOM)에 따르면 이집트에는 수단과 시리아, 예멘, 리비아 출신 이민자가 가장 많다.
이집트 국내 여론도 가자지구 피란민을 받아들이는 데 우호적이지 않았다.
이집트 언론들은 정부가 가자지구 주민을 수용할 가능성을 짚으면서 그럴 경우 시나이 반도로 강제이주가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나섰다.
최근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 수반 등 아랍권 지도자들이 '제2의 나크바(대재앙)'를 언급한 이유도 비슷한 맥락이다.
팔레스타인인들이 대거 이집트 국경을 넘을 경우 가자지구를 되찾기 어렵고 결과적으로 또다시 이스라엘에 쫓겨나는 꼴이 된다는 것이다.
나크바는 1948년 이스라엘 건국과 아랍·이스라엘 전쟁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이 겪은 대재앙을 말한다. 당시 이스라엘 점령지 쫓겨난 팔레스타인 난민과 그 후손들이다. 이집트 영토였던 가자지구에 정착했다.
엘시시 대통령은 "(팔레스타인의) 대의에 종지부를 찍는 셈이어서 매우 큰 위험"이라며 "사람들이 자신의 땅에 남아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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