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동 주미대사 국감 답변에서 미국내 기류 전해
비핵화 목표보다 현실적인 핵억지력 강화 주문 많아
(서울=연합뉴스) 이우탁 기자 = "북한 비핵화 가능성이 점점 어려워진다는 평가가 있고, 북핵 해결을 위한 대화가 필요하다는 논의가 과거보다 점점 작아지는 것을 피부로 느낀다."
조현동 주미대사가 15일(현지시간) 워싱턴 D.C.의 주미 대사관에서 열린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한 말이다. 북한 비핵화와 관련된 미국 사회의 관심 정도를 묻는 국민의힘 태영호 의원의 질의에 대한 답변 과정에서 나왔다.
북한이 이미 지난 2017년에 핵 무력 완성을 선언하고 최근에는 헌법에 조차 '핵무기 발전의 고도화'를 명시한 국면이 되자, 이른바 '비핵화 30년'에 대한 반성과 재인식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져가고 있다.
실제로 지난 30년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북한이 핵 개발 포기를 공개적으로 약속한 여러 차례의 합의가 있었지만 모두 무위로 돌아갔다.
1991년 12월 31일 남북한이 합의한 '한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에서 북한은 '핵무기의 개발 포기'는 물론이고 '플루토늄의 재처리와 우라늄 농축'도 하지 않기로(금지 대상) 약속했고, 남북한 상호사찰도 합의했다.
그러나 북한은 주한미군의 전술핵무기 보유 여부에 대한 사찰 등을 고집하며 자신들의 핵시설 사찰을 거부했고, 결국 남북한 사이의 이 협상은 1992년 12월 종결되고 말았다.
이른바 제1차 1차 북핵 위기를 봉합한 1994년 미북 '제네바 합의'에서도 북한은 경수로 건설과 중유 지원을 대가로 영변 핵시설의 동결과 해체에 동의했다.
하지만 2002년 'HEU(고농축우라늄) 파동 이후 불거진 제2차 북핵 위기의 발발로 제네바 합의 이행은 중단됐다. 결과적으로 제네바 합의는 애초부터 북한에 10년간의 유예 기간을 제공한 것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또 지난 2005년 북핵 6자회담에서 채택한 '9·19 공동성명'에서도 북한은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 계획을 포기'하기로 약속했다. 이후 공동성명 이행을 위한 후속 합의인 2006년 '2·13합의'와 2007년 '10·3 합의'도 나왔지만 역시 이행되지 않았다.
결국 북한은 6차례의 핵실험을 거쳐 2017년 핵 무력 완성을 선언했다. 또 지난해 9월 '핵 선제사용'이 가능하도록 한 '핵 무력 법제화를 거쳐 이달 초에는 '핵무기 발전의 고도화'를 헌법에 명시했다.
미국 국방부가 지난달 28일 공개한 '2023년 WMD(대량살상무기) 대응 전략' 보고서에도 "북한의 역량 개발은 북한이 물리적 충돌의 어느 단계에서든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 선택지를 제공한다"고 평가했다.
북핵 30년의 경험이 주는 교훈은 간단하다. 앞으로 상당한 기간 북한의 비핵화가 실현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오히려 북한은 '핵보유 전략국가'로서 여전히 버리지 못한 '한반도 공산화'를 위한 강력한 수단으로 핵무기를 활용해 한반도내 주도권을 쥐려는 김정은의 국가전략은 비핵화의 정반대 길이라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에 따라 당북한 실현 가능성이 희박한 '비핵화 목표'를 현실적으로 북핵 위협을 막을 핵 억지력 확보에 집중해야 한다는 주장이 이어지고 있다.
조현동 주미대사가 지난 4월에 있었던 한미정상 간 워싱턴선언 합의를 강조하며 핵협의그룹(NCG) 2차 회의를 미국에서 개최할 예정이라고 소개하면서 "그런 과정에서 국민이 느끼는 불안이 최소화되도록 최대한 강력한 시스템을 만들 것"이라고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lwt@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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