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 겨냥 AI칩 규제…中 등 22개 국가에 '거부추정원칙' 적용
40여개 국가는 수출시 허가 필요…中 "시장경제·공정경쟁 위반" 반발
中 '일대일로 정상회의' 중 발표…내달 APEC 미중정상회담 영향 주목
(워싱턴=연합뉴스) 강병철 특파원 = 미국이 17일(현지시간) 발표한 대(對)중국 반도체 관련 추가 수출통제 조치는 인공지능(AI)칩과 반도체 제조 장비 등에 대한 기존 규정을 촘촘하게 보완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AI에 핵심인 고성능 반도체 칩 수출통제에서 발견된 '구멍'을 메우고 중국이 첨단 반도체 및 장비 수입을 위해 미국의 제재를 우회할 수 있는 경로를 원천적으로 막기 위해 수출통제 대상 국가를 대폭 확대했다는 점에서다.
이번 조치는 특히 화웨이의 7nm(나노미터·10억분의 1m) 스마트폰 출시로 중국의 반도체 자립 가능성이 제기되는 가운데 나왔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미국은 지속해서 첨단기술 수출통제의 고삐를 죈다는 방침이고, 이에 대해 중국은 반발하고 있어 향후 미중 관계 전반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한국 기업은 이미 무기한 제재 유예 조치를 받은 상태라 이번 조치로 인한 영향은 없을 것으로 관측된다.
다만 미국의 첨단기술 통제 기조에 따라 중장기적으로 중국 내 사업 전략을 검토할 필요성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엔비디아 겨냥한 '맞춤형 통제'…제재 우회 전방위 차단
상무부가 이번 최종 규정에서 첨단 컴퓨팅 칩의 통제 기준을 변경한 것은 자국 기업인 엔비디아를 겨냥한 것이다.
지난해 10월 발표한 잠정 규정에서는 반도체의 자체 성능 및 다른 반도체와의 통신 능력을 기준으로 수출 통제 대상을 설정했다.
이 규정에 따라 A100칩의 중국 수출이 불가능하게 되자 엔비디아는 중국용으로 사양을 다소 낮춘 A800과 H800를 만들었다.
인텔 역시 같은 방식으로 중국용 제품을 만들었는데, 이들 반도체는 강력한 성능을 갖고 있으나 반도체간 통신 속도를 제한한 것이 특징이라고 로이터통신은 이날 보도했다.
상무부는 이런 저사양 반도체칩의 수출도 금지하기 위해 '통신 능력'을 기준에서 빼고 '성능 밀도(단위 크기당 성능)'를 기준으로 추가했다.
엔비디아는 성명을 통해 "우리 제품에 대한 전 세계적인 수요를 감안할 때 단기적으로 의미가 있는 재정적 영향이 있을 것으로 보지 않는다"고 밝혔다.
다만 장기적으로 영향이 있을 수 있어 엔비디아 주가는 이날 장중 7.8%까지 하락하기도 했다고 블룸버그통신은 전했다.
미국은 또 수출통제 대상은 아니지만 기준에 근접한 반도체칩의 수출은 정부에 통보하도록 했다. 다소 성능이 낮은 반도체칩 역시 AI나 슈퍼컴퓨팅에 활용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나아가 상무부는 엔비디아의 전직 직원이 각각 창립한 스타트업 기업 '상하이 비렌 인텔리전트 테크놀로지'와 '무어 쓰레드 인텔리전트 테크놀로지'도 제재 대상에 추가했다.
미국은 수출 통제 대상을 중국에 있는 기업에서 ▲ 중국 본사의 해외 사업체나 ▲ 미국이 자국 무기 판매를 금지한 21개국으로 대폭 확대했다.
미국의 우방국에 있는 중국 회사의 사업체가 반도체를 수입해 이를 중국에 몰래 반입할 경우 통제가 안 되는 '구멍'이 드러나자 이를 막은 것이다.
미국이 자국 무기 금수 국가를 대중국 수출통제 대상으로 포함한 것도 같은 이유다.
이란, 러시아, 벨라루스 등 이른바 문제 국가들이 중국의 제재 우회 루트로 사용될 수 있는 만큼 '거부 추정 원칙'을 통해 통제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은 동시에 중국으로 이전될 위험이 있는 40개국 이상에도 수출 허가를 별도로 받을 것을 요구했다.
여기에는 아랍에미리트(UAE), 바레인 등 미국의 미사일 기술통제 국가들이 포함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국가에는 거부 추정의 원칙은 적용되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에밀리 벤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애널리스트는 뉴욕타임스(NYT)에 "수출 허가가 필요한 국가가 상당하게 확대된 것이 눈길을 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상무부는 수출통제 대상이 되는 반도체 제조 장비 유형도 확대했다.
이는 네덜란드 ASML의 심자외선(DUV) 노광장비와 관련 부품의 중국 수출을 차단하기 위한 것으로, 네덜란드의 수출통제 규정보다 강화된 것이라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 연1회 갱신 예고…중국에 사전 통보·일부 수출통제 예외도
상무부의 이번 조치는 지난해 10월 잠정 규정으로 발표한 수출 통제 조치를 확정하면서 내용을 보완한 것이다.
이 조치는 미국의 첨단기술이 중국의 군사력 증대 등에 사용되는 것을 막기 위한 이른바 '담장은 높게, 마당은 좁게(Small yard High fence)'라는 전략에 따른 것이다.
상무부는 기술 수준 변화 등에 맞춰 매년 최소 1회 수출 규정을 업데이트해서 고삐를 계속 죈다는 방침이다.
지나 러몬도 상무부 장관은 전날 자국 언론과 진행한 사전브리핑에서 "새 조치는 지난해 10월 발표한 규제의 구멍을 막아 중국의 군사적 발전을 막는 것이 목적이며 최소 연례적으로 갱신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지난 8월에는 ▲ 반도체 및 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 양자 정보 기술 ▲ 인공지능(AI) 시스템 등 3가지 분야를 대상으로 자국 기업의 중국내 투자를 규제하는 조치를 발표하기도 했다.
또 반도체법을 통해 미국 정부의 보조금을 받는 기업에 대해서는 중국 내 반도체 제조설비 투자를 제한하는 조치도 취하는 등 중국의 첨단 산업 발전을 견제하기 위한 조치를 지속적으로 취하고 있다.
미국은 동시에 상무장관, 재무장관 방중 계기 등에 사전에 중국에 수출통제 규정 강화 방침을 통보하면서 중국과의 이른바 '경쟁 관리' 노력도 병행하는 모습이다.
미국은 이날 발표에서 노트북, 스마트폰, 게임 콘솔 등의 소비재에 사용되는 반도체 칩은 일부 허가가 필요한 경우도 있으나 수출통제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부각하기도 했다.
중국은 시진핑 국가주석이 일대일로(一帶一路:중국-중앙아시아-유럽을 연결하는 육상·해상 실크로드) 10주년을 맞아 진행하는 일대일로 국제협력 정상포럼 기간에 발표된 이번 조치에 대해 반발했다.
주미 중국대사관은 대변인 성명을 통해 "정치적 목적을 위한 자의적 통제나 강제적 디커플링(decoupling·공급망 등 분리) 모색은 시장경제 원칙과 공정 경쟁 원칙 위반"이라면서 "단호히 반대한다"고 말했다.
중국의 이런 입장이 다음 달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계기에 추진되는 미중 정상회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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