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무의 덫' 비판에 작은 민생사업 추진도…64조 융자금·기금 15조 증액 '돈 보따리' 여전
개막연설 34차례 협력 강조…"경제 억압 반대"에 저사양 AI칩 추가 수출금지 美겨냥 해석도
(베이징·서울=연합뉴스) 한종구 정성조 특파원 홍제성 기자 =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일대일로(一帶一路:중국-중앙아시아-유럽을 연결하는 육상·해상 실크로드) 발표 10주년을 계기로 열린 정상포럼에서 개발도상국들을 상대로 '우군 다지기'에 힘을 쏟았다.
시 주석은 18일 베이징에서 열린 '제3회 일대일로 국제협력 정상포럼' 개막식에서 개도국과 함께 현대화에 나설 것이라고 천명했다. 또 각국 정상들과 양자회담에서도 개도국 지원을 약속했다.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주로 남반구에 위치한 신흥국과 개도국을 통칭)의 맹주로서 입지를 더 공고히 다지는데 상당한 공을 들였다.
시 주석은 이와 동시에 일대일로 참여 개도국 및 저개발국 정상들 앞에서 "일방적 제재와 경제적 억압, 디커플링(decoupling·공급망 등 분리)에 반대한다"고 언급하면서 미국을 향해 견제구를 던지는 것도 잊지 않았다.
◇ 26분 개막연설서 34차례 '협력' 언급…'채무의 덫' 의식? 개도국 끌어안기 초점
시 주석의 정상포럼 개막연설은 일대일로에 참여하는 개발도상국을 끌어안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그는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중국만을 생각하는 현대화가 아니다"라며 "수많은 개발도상국을 포함한 각국과 함께 현대화를 실현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세계의 현대화는 평화 발전의 현대화, 호혜 협력의 현대화, 공동 번영의 현대화여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이어 "경제발전의 속도가 빠른 국가는 경제발전이 잠시 뒤처진 파트너(저개발 국가)를 도와줘야 한다"며 중국이 각국과의 협력 동반자 관계를 심화시키고 각국의 현대화를 실현하는데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올해 10주년을 맞은 일대일로 사업에 대해선 "협력이 유라시아 대륙에서 아프리카와 남미로 뻗어나갔고, 150여개 국가와 30여개 국제기구가 일대일로 협력 문건에 서명했다"며 "일대일로 협력은 '큰 그림'에서 '세밀한 그림' 단계로 진입했다"고 자평했다.
'하나의 띠, 하나의 길'이라는 뜻의 일대일로는 시 주석이 지향하는 대국 굴기와 통하는 '중국몽' 실현을 위한 핵심 구상으로, 중국 서부-중앙아시아-유럽을 잇는 육상 실크로드와 중국 남부-동남아시아-아프리카-유럽으로 이어지는 해상 실크로드가 양대 축이다.
시 주석은 대규모 프로젝트로 참여국 상당수를 '채무의 덫'에 빠뜨렸다는 서방의 비판을 의식한 듯 앞으로 '랜드마크 프로젝트'와 '작지만 아름다운' 민생 사업을 통합적으로 추진하겠다는 계획도 공개했다.
이를 위해 시 주석은 중국 국가개발은행과 수출입은행이 각각 3천500억위안(약 64조원)의 융자 창구를 개설하고 실크로드기금 800억위안(약 15조원)을 증자하겠다는 계획과 함께 ▲1천개의 소규모 민생지원 프로젝트 ▲ 2030년까지 10만건의 녹색 협력 강화 교육 실시 ▲ 향후 5년간 각국이 참여하는 과학 실험실의 100곳 확대 등의 계획도 제시했다.
그는 이번 정상포럼 기간 기업인 세션을 통해서는 972억 달러 규모의 계약이 체결된 사실도 공개하며 호혜적인 성과가 있었다는 점도 강조했다.
시 주석은 26분 분량의 기조연설에서 협력을 34차례나 언급할 정도로 개도국을 중심으로 한 일대일로 참가국과의 공조와 상생을 강조했다.
◇ '일방 제재·경제 억압·디커플링' 총동원해 美 견제…'대중 추가 수출금지' 비판?
시 주석은 일대일로 사업을 중국의 패권 추구로 의심하며 대중 견제와 제재를 강화해 온 미국을 겨냥한 메시지도 발신했다.
'다른 사람의 발전을 위협으로 보고, 경제적 상호 의존을 리스크로 보면 자신의 삶을 개선하거나 더 빨리 발전할 수 없다'는 그의 발언은 자국을 패권 도전국으로 상정하고 강력한 압박을 가하는 미국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읽힌다.
한발 더 나아가 시 주석은 "우리는 이데올로기적 대립과 지정학 게임, 집단 정치 대결을 하지 않고, 일방적 제재와 경제적 억압, 디커플링(decoupling·공급망 등 분리)에 반대한다"며 보다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미국을 거명하지는 않았지만, 미국을 향한 비판이 명확했다.
특히 이날은 미국 정부가 이전의 대(對)중국 수출통제 조치 때 규정한 것보다 사양이 낮은 인공지능(AI) 칩에 대해서도 중국으로의 수출을 금지하는 조치를 발표한 바로 다음날이라는 점에서 시 주석 발언은 더 주목받았다.
시 주석은 직접 이 문제를 언급하지 않았지만, 중국 정부는 강한 불만을 표시하며 반발했다.
중국 상무부 대변인은 "미국은 끊임없이 국가 안보 개념을 일반화하고, 수출 통제 조치를 남용해 일방적인 괴롭힘을 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해 정당한 자기 권익을 단호히 수호할 것"이라고 했다.
◇ 서방 주요국 대거 불참했어도…푸틴 등 '일대일로 우군'들과 숨가쁜 릴레이 외교
시 주석은 일대일로 정상포럼을 계기로 자국을 찾은 각국 정상들과 릴레이 정상회담을 하며 우군 다지기에 공을 들였다.
시 주석은 우선 최근의 신냉전 구도 국제정세 속에서 밀착 행보를 보여 온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올해 두 번째 회담에서 미국에 맞선 양국간 공조를 과시했다.
이에 앞서 시 주석은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 동남아시아 인도네시아, 아프리카 에티오피아, 동유럽 헝가리·세르비아, 남미 칠레, 오세아니아 파푸아뉴기니 등 지역별로 중국과 전통적 우호 관계거나 관계에 공을 들여온 국가수반들과 릴레이 정상회담도 했다.
이 과정에서 시 주석은 에티오피아와의 관계를 최고 단계인 '전천후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했으며 세르비아와는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는 등 가시적인 성과도 냈다.
특히 개도국 정상들에게는 남남협력(개도국 간 협력)의 중요성과 이를 위한 중국의 역할을 강조했으며 글로벌 다자주의와 내정불간섭 원칙 등도 거론하며 미국을 우회적으로 겨냥하기도 했다.
시 주석의 이런 행보는 '개발도상국인 중국은 미국과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며 든든한 우군을 확보함으로써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대중(對中) 포위전략'에 맞서 나가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2017년과 2019년에 이어 세 번째로 열린 올해 포럼에 각국 정상 및 정상급 인사 26명을 비롯해 140여개국에서 4천여명이 참석했지만, 서방 주요국 지도자들은 대거 불참해 반쪽 행사에 그쳤다는 일각의 평가를 극복하려는 속내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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