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지원금 빼고 전세금 돌려준 HUG…'임대인 확약서 가져오라' 요구도
세입자 반발·국회 문제 제기에 전세금 전체 반환하기로
(서울=연합뉴스) 박초롱 기자 = 세입자가 집주인에게 받은 '이자지원금'은 전세보증금의 일부가 아니므로 보증보험을 통한 전세금 반환 요청 때 이를 제외하고 돌려줘선 안 된다는 판단이 나왔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는 집주인과의 분쟁 가능성 등을 우려해 '이자지원금'을 빼고 전세금을 돌려줬다가, 세입자들이 거세게 항의하자 결국 전세금 전체를 반환하기로 했다.
이 과정에서 세입자들은 수개월간 냉가슴을 앓아야 했다.
김모(28) 씨는 2021년 2월 서울 강서구 화곡동의 한 신축 오피스텔에 보증금 2억3천900만원에 전세로 들어갔다.
전세금이 높은 편이었지만 부동산은 '집주인이 월 20만원씩 2년 치 전세대출 이자를 한꺼번에 지원해준다'고 소개했고, 괜찮은 조건이라 생각해 계약했다.
그런데 계약 만기가 다가올 즈음 집주인은 연락을 제대로 받지 않기 시작했다.
층간소음, 주차 문제 등을 논의하던 입주민 단톡방은 순식간에 전세금을 돌려받기 위한 '대책위' 모임이 됐다.
총 27세대 중 13세대가 계약 종료를 결정하고 집주인을 만났지만, 집주인은 '보증금을 돌려줄 수 없다', '다른 곳에 건물을 짓고 있다'는 말만 반복했다.
세입자들은 다행히 HUG 전세금 반환 보증보험에 가입돼 있어 보증 이행을 청구해 전세금을 받아내기로 했지만, 문제는 여기서 생겼다.
집주인이 적게는 277만원, 많게는 1천200만원까지 지급한 '이자지원금'을 세입자들이 받아 간 '수수료'라고 주장하며 HUG에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임차인들이 이자지원금을 받은 사실을 알리지 않고 HUG에 보증금 반환을 청구했기에 돌려줘선 안 된다는 주장이었다.
HUG는 세입자에게 먼저 보증금을 내어준 뒤 집주인에게 받아내기 때문에 보증금 반환 규모를 줄이면 집주인이 그만큼 부담을 덜 수 있다.
집주인의 이의 제기에 실무를 담당하는 HUG 서부관리센터는 6월부터 세입자들이 받은 평균 853만원의 이자지원금을 제외하고 보증금을 반환하기 시작했다.
세입자들은 "이자지원금은 전세보증금과는 별개로, 임대인이 전세대출을 유도하기 위해 준 돈"이라고 반발했다.
HUG 본사는 피해 제보를 받은 정의당 심상정 의원이 질의서를 보내자 지난달에야 '이자지원금은 전세보증금의 일부로 볼 수 없다'는 취지의 답변을 내놨다.
뒤늦게나마 나머지 보증금을 받을 수 있을 줄 알았지만, 끝이 아니었다.
HUG 서부관리센터는 이번엔 임차인들에게 임대인으로부터 '이자지원금은 보증금의 일부를 반환한 것이 아니었다'는 확약서를 받아오라고 요구했다. 앞서 이자지원금을 제외한 전세금 반환 때도 확약서를 전제 조건으로 내걸었다가 임차인 반발에 거둬들였는데, 재차 요구한 것이다.
집주인이 이 확약서에 순순히 서명할 리는 만무했다.
심상정 의원은 "세입자들에게 임대인의 확약서를 받아오라고 요구한 것은 HUG가 해야 할 일을 떠넘긴 것 아니냐"며 "임차인을 보호해야 할 HUG가 그들에게 불가능하고 무리한 요구를 해 이자지원금을 포기하게 하려던 것이 아닌지 의문이 든다"고 비판했다.
세입자들이 HUG 요구가 부당하다며 거부한 가운데 HUG는 오는 19일 국정감사를 사흘 앞두고 확약서 없이도 미지급 보증금을 반환하겠다고 통보했다.
대부분 올해 1∼2월 전세 계약이 끝난 세입자들은 6월에야 이자지원금을 뺀 전세금을 돌려받고, 10월을 넘겨 나머지 금액을 돌려받을 수 있게 됐다.
세입자 이모 씨는 "보증금 반환 시기가 밀리면서 이사 갈 다른 집을 구했는데 계약금을 날리고 이사 가지 못한 분도 있다"며 "분명히 다른 건물에도 같은 집주인으로부터 피해를 본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월셋집으로 이사했다. 전세 피해를 당하고 보니 다시 전세로 살고 싶은 마음이 없어졌다고 했다.
chopar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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