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 괴짜' 후보 선두 속 절치부심 집권여당·야권연합 후보 '맹추격'
(부에노스아이레스= 연합뉴스) 김선정 통신원 = "기성 정치인들은 꼴도 보기 싫다. 모두 도둑들이다. 하비에르 밀레이에게 한 표를 줄 거다"(26세 마티아스)
"(집권 여당인) 페론당이 뭉치면 그 누구도 이길 수 없다. 페론당이 이룬 업적 잊으면 안된다"(방송 프로듀서 글로리아)
"밀레이는 너무 과격하고, 여당은 현재 경제 상황에 책임을 져야 하니 야당 연합에 투표하겠다"(54세 빅토르)
"어차피 다들 똑같으니 기권표를 던질 것이다"(25세 아리엘)
아르헨티나 대선을 19일(현지시간)로 사흘 앞둔 가운데 선거판이 뜨겁게 달아오르면서 막바지 민심이 요동치고 있다.
이번 대선은 외화 고갈과 연간 140%를 넘는 높은 인플레이션 등 경제위기 가운데 치러지는 선거인 만큼 향후 아르헨티나의 장래를 결정짓게 될 중요한 선거라는 점에서 안팎의 관심이 높다.
지난 8월 예비선거를 거친 이번 대선에는 모두 5명의 후보가 출마했다.
이 가운데 자유전진당의 극우 하비에르 밀레이 후보와 여당인 페론당 소속의 현직 경제 장관인 세르히오 마사 후보, 전임 정권에서 치안 장관을 지낸 야당 연합의 파트리시아 불리치 후보가 3파전을 벌이는 양상이다.
아르헨티나 언론 보도 비중을 살펴보면, 밀레이 후보와 마사 후보에게 집중되어 있고, 이 두 후보가 내달 결선에 진출할 것 같다는 여론조사가 주를 이루고 있다.
다만 경제위기에 대한 여당 심판론도 거세게 불고 있어 야권 후보인 불리치 후보가 마사 후보를 역전할 수 있는 가능성은 열려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부동층이 여전히 광범위하게 퍼져 있고 각종 스캔들과 정부의 선심성 선거용 경제 조치로 민심이 흔들리고 있다는 점과 수년간 여론조사가 한 번도 적중한 적이 없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쉽게 결과를 예측하기란 불가능해 보인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중심가에서 만난 마티아스(26)는 밀레이 후보에게 한 표를 행사하겠다면서 "그야말로 이 모든 부정부패와 진정한 변화를 이끌 수 있는 인물"이라고 강조했다.
버스 정류장에서 만난 프리실라(27)와 마리아 루스(18)도 같은 이유로 밀레이를 지지한다고 했다.
밀레이 후보는 아르헨티나 페소화 폐기 및 달러화 도입, 중앙은행 폐쇄, 방만한 국가재정 국민총생산의 15% 긴축, 장기 매매 허용, 낙태법 반대, 기후 문제 부정, 국립영화진흥회 및 국립연구소 민영화 등을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다.
이념적으로 반중·친미·친이스라엘을 외치고 있어 '아르헨티나의 리틀 트럼프'라 불리고 있다.
그는 지난 8월 예비선거에서 깜짝 1위를 한 뒤 돌풍을 이어가고 있다. 유세 현장에서 전기톱을 들고 다니며 불필요한 '정부 보조금'을 싹둑 잘라내겠다면서 부정부패한 기성 정치인들에게 '모두 꺼져라'를 외치는 그는, 이상한 헤어스타일에 록스타처럼 소리만 지르는 괴이한 경제평론가에서 아르헨티나의 유력 대통령 후보로 발돋움했다.
현재 거의 모든 대선 여론조사에서 1위를 달리고 있다.
현지 언론은 물론 외신들도 밀레이 후보를 가장 유력한 대선 후보로 꼽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거리에서 느껴지는 민심도 밀레이 후보에 대한 지지가 압도적이라는 점이었다.
이미 지지 후보를 결정한 시민 중 10대와 20대 유권자들은 밀레이 후보의 열렬한 지지자가 많았고, 30대도 대부분이 밀레이를 지지했다.
"밀레이 말처럼 기성 정치인들은 도둑들이고 다 꺼져야 한다"는 알란(27)은 밀레이 공약처럼 정부 보조금을 삭감하면 대중교통비가 10배 이상 오른다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여당이 선거에서 이기려고 하는 거짓말이며 옹졸한 선거 유세"라고 화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밀레이 후보는 최근 "페소는 배설물보다도 못하다"라는 발언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그의 발언 이후 달러 환율이 크게 폭등하면서 페소화 폐기 등 그의 '과격한(?) 공약'에 대한 유권자들의 우려가 폭발하는 양상이 드러나기도 했다.
40대 이후 유권자들 중에는 여당 후보인 마사 후보 지지자들도 눈에 띄었다.
매장에서 점원으로 일하는 플로르(32)는 지난 8월 예비선거에서 밀레이에게 표를 줬는데 이번 본선거에서는 누구에게 투표할지 아직 결정을 못 했다고 했다.
그는 정부보조금을 없애면 대중교통비가 현재보다 10배늘 뛸 수 있다는교통부의 발표를 거론하며 "과연 (정부보조금 철폐를 주장하는) 밀레이가 당선되면 물가가 어떻게 될지 걱정이 앞섰다"고 말했다.
여당인 페론당 당원이자 방송 프로듀서인 글로리아는 마사 후보의 선전을 기대했다.
그는 "페론당이 뭉치면 그 누구도 이길 수 없다"면서 "지금은 유급휴가, 여성 투표, 주 5일제 근무 등이 당연해 보이지만, 이건 페론당이 이룬 업적이며 노동자들의 권리이다. 아무리 지금 경제가 어렵다고 이걸 잊는 페론당원은 없을 것"이라고 역설했다.
약사인 호르헤(49)도 "이번에, 유럽에 가족과 같이 여행을 다녀왔는데, 유럽 상황이 생각 보다 좋지 못했다. 아르헨티나가 연 140%에 달하는 물가상승률로 시름하고 있다고 하지만, 월급도 따라 오르고 결국 사는 걸 보면 우리가 더 잘 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며 웃었다.
호르헤는 "난 마사 후보가 아주 좋은 결과를 얻을 것으로 생각한다"며 우회적으로 지지를 표현했다.
비록 여론조사에서 밀레이 후보와 마사 후보에게 밀리면서 3위를 달리고 있지만, 경제위기 여권 심판론이 강하게 불면서 40대 이상, 중상층에서는 야당 연합의 불리치 후보에 대한 선호도가 두드러졌다.
"급진적인 변화를 원하면 밀레이를, 점진적인 변화를 원하면 불리치에게 표를 줘야 한다"는 국립대학 경제학 교수인 다리오(53)는 "경제를 이렇게 망가트리고 무분별한 '돈 찍어내기'로 재정적자를 메꾸는 여당 후보에게 표를 줄 수는 없다"며 열변을 토했다.
지지자들의 대부분이 중상층이라고 알려진 것과 달리, 식당에서 일하는 빅토르(54)와 환경미화원인 후안(66)도 불리치에게 표를 줄 것 같다고 했다.
빅토르는 "밀레이는 너무 과격하고 공약이 실현 가능한지 모르겠다"며 "여당은 현재 경제 상황에 책임을 져야 하니 야당 연합에 투표하겠다'고 말했다.
이제 본선거까지는 불과 3일.
아르헨티나 유권자들이 어떠한 결정을 할 것인지는 투표함을 열어봐야 알겠지만, 승자가 누가 되든 물가상승률은 꾸준하게 오를 것이고 단기적 시장 불확실성은 고조될 것이라는 유권자들의 걱정은 선거일이 다가올수록 커지고 있다.
sunniek8@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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