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 닮아가는 아시아나 인수전…EU '몽니'로 안갯속

입력 2023-10-22 07:30  

대우조선 닮아가는 아시아나 인수전…EU '몽니'로 안갯속
EU, 같은 독과점 이유로 조선·항공 국내기업간 합병 반대
아시아나, 산업은행 'NO 지원' 선언으로 제3자 매각 어려워져

(서울=연합뉴스) 김보경 임성호 기자 = 대한항공[003490]과 아시아나항공[020560] 기업결합의 최대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이는 아시아나항공 이사회가 오는 30일 열린다.
유럽연합(EU)의 시정 요구에 따른 아시아나항공 화물사업 매각안이 이사회에서 부결될 경우 3년을 표류했던 두 항공사의 합병 건은 EU 경쟁당국의 까다로운 심사를 넘지 못할 수 있다.
EU가 '독과점'을 이유로 국내 기업 간 합병을 훼방 놓은 사례는 지난해 한국조선해양(현 HD한국조선해양)과 대우조선해양 건에서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합병 불발 후 산업은행의 지속적 지원으로 결국 한화의 품에 안긴 대우조선해양과 달리, 산업은행이 "추가 지원은 없다"고 못 박은 아시아나항공은 대한항공과의 합병이 무산될 경우 '제3자 매각'도 어려워질 전망이다.



◇ EU '몽니'에 2년2개월만에 불발된 대우조선해양 인수전
22일 산업계에 따르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 건은 지난해 1월 EU의 제동으로 결국 불발된 한국조선해양과 대우조선해양의 합병 추진 상황과 여러모로 닮아있다.
현재 한화오션으로 새출발한 대우조선해양은 2001년 워크아웃(채무조정) 졸업 후 산업은행 관리를 받으며 새 주인을 찾다 2019년 3월 같은 조선 '빅3'인 한국조선해양과의 합병이 결정됐다.
당시 한국조선해양은 산업은행과 본계약을 체결하며 EU를 포함한 6개국으로부터의 기업결합 심사 완료를 인수의 선결 조건으로 내걸었다.
이후 두 조선사의 합병은 카자흐스탄과 싱가포르, 중국 경쟁당국으로부터 무조건 승인을 받으며 순항했다. 또 EU의 승인을 따내면 나머지 심사국인 한국과 일본도 이를 따를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EU는 코로나19 등을 이유로 기업결합 심사를 세 번이나 유예하다 지난해 1월 최종 불허를 결정했고, 결국 합병은 무산됐다. 심사를 개시한 이래 2년 2개월 만이었다.
당시 EU는 두 조선사의 결합이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시장의 독과점을 야기해 시장 경쟁을 저해한다는 이유를 댔다. 유럽은 LNG 운반선 선사들이 몰려있는 지역으로, 세계 '톱4' 조선사 간 합병이 선가에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한 EU의 속내가 작용한 결과였다.
EU는 심사 기간 한국조선해양에 LNG 운반선 사업부 일부 매각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에 한국조선해양은 가격을 당분간 인상하지 않고, 유럽 중소 선박업체에 건조 기술을 일부 전수한다는 조건을 제시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문제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도 이와 유사한 경로를 밟고 있다는 점이다.
2020년 11월 산업은행의 통합 추진 발표로 본격화한 두 항공사의 합병은 대한항공이 올해 초 기업결합을 신고한 14개국 중 11개국으로부터 승인받으면서 성사를 눈앞에 뒀다.
하지만 올해 5월 EU가 합병에 따른 화물 경쟁 제한 가능성을 우려하는 중간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제동이 걸렸다.
이에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 화물사업 매각과 유럽 일부 노선 슬롯 반납을 담은 시정 방안을 마련했지만, 이러한 안을 제출하기 위해선 아시아나 이사회로부터 매각과 관련한 찬성을 얻어야 한다.
만약 이사회가 매각을 거부한다면 EU의 기업결합 심사 승인은 물 건너갈 가능성이 크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또 EU를 통과해도 미국과 일본 경쟁당국의 기업결합 심사 승이라는 또 다른 관문을 남아있다.
산업계 관계자는 "한국조선해양과 대우조선해양은 '톱4' 조선사간 결합이었고,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이보다는 규모가 작고 독과점 우려도 적다"며 "하지만 EU가 같은 경쟁 논리를 내세워 반대하는 만큼 승인 가능성이 높다고는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 산은 '지원 없다'에 3자 매각도 어려워…대한항공 인수만 남아
EU의 반대로 이번 합병이 무산될 경우 아시아나항공의 독자생존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이 업계의 대체적 해석이다.
올해 상반기 기준 아시아나항공의 총부채는 12조원으로, 지난 6월 말 기준 부채 비율은 1천741%에 달한다.
부채 탓에 올해 상반기 거둔 영업이익 2천14억원보다 더 많은 2천23억원이 이자 등 금융 비용으로 지출됐다.
현금 유동성도 한계에 직면했다.
올해 상반기 기준 아시아나항공의 보유 현금은 9천600억원이었지만, 지난 7월 말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에 각각 5천억원, 2천억원을 갚으면서 남은 현금은 3천억원으로 줄었다.
여기에 지난 21일 만기가 된 기간산업안정기금(기안기금) 2천400억원을 갚게 되면서 그마저도 바닥난 상태다. 설상가상으로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의 특별약정지원 1조8천억원도 이달 30일 만기가 된다.
합병이 불발되면 대출 연장도 불투명해 아시아나항공이 채무 불이행(디폴트)에 빠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런 상황에서 산업은행이 '합병 무산 시 아시아나항공에 대한 추가 자금 지원은 없다'는 취지의 입장을 EU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대안으로 떠오르던 '제3자 매각'도 버려야 할 카드가 됐다.
물론 산업은행의 태도는 아시아나항공 이사회가 화물사업 매각안을 통과시키도록 압박하는 카드로 해석되지만 이미 3조원을 투입한 채권단이 추가 지원에 난색을 보일 이유는 충분하다.
이에 따라 아시아나항공의 회생을 위해선 대한항공 인수 외에는 별다른 수가 없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다만 대한항공이 타국 기업결합 승인을 얻기 위해 아시아나항공 매출에서 21%를 차지하는 화물사업을 넘기는 것이 국내 항공업계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는 불식시켜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vivid@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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