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경매 유예 요청에도 대부업체 '거부'…경매 유예·중단 강제 못해 한계
임차인 최우선변제 받아도 수천만원 손실…'셀프 낙찰' 받거나 우선매수권 행사
대부업체 채권 회수 위한 경매 줄이을 듯…임차인 보호 방안 점검해야
(서울=연합뉴스) 서미숙 기자 = 정부의 전세사기 피해자 주택에 대한 경매 유예 조처에도 불구하고 최근 피해자 주택의 경매 입찰이 본격화되고 있다.
채권자인 대부·채권추심 업체들이 추가 경매 유예를 거부해 경매 절차가 진행되고, 후순위 임차인의 보증금 피해가 현실화하는 것이다.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특별법의 사각지대에서 보증금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셀프 낙찰'을 받거나 우선매수권을 행사하는 임차인도 나오고 있다.
◇ 채권추심업체 경매 유예 '거부'…전세사기 피해주택 경매 본격화
23일 연합뉴스가 법원경매전문회사 지지옥션의 도움을 받아 전세사기 피해가 많았던 인천지역의 최근 경매 결과를 살펴본 바에 따르면 A 대부업체가 한꺼번에 경매 신청한 인천 미추홀구 숭의동 H아파트 4채 중 전용 40㎡ 3채가 입찰에 부쳐져 지난달 15일 인천지방법원 경매 16계에서 낙찰된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아파트는 전세사기 피해가 인정된 주택으로 금융기관이 건축주에 대출을 해주면서 선순위 근저당권을 설정했다가 A 대부업체에 채권을 매각했으며, 임차인은 권리관계상 모두 후순위다.
해당 경매 물건 중 하나는 지난달 열린 3회차 경매에서 총 8명이 응찰해 감정가(1억6천만원)의 63.3%인 1억130만원에 낙찰됐다. 최저가(7천840만원)보다 2천만원 이상 높은 금액이다.
이 물건의 법원 문건접수 현황을 보면 지난 7월 6일 전세사기 피해자지원위원회가 법원에 경매 유예·정지 협조 요청을 했으나, 같은 달 12일에 1차 경매가 진행돼 유찰됐고, 8월에 2회차 경매도 그대로 진행됐다가 유찰됐다.
보증금 7천500만원에 전세를 들었던 후순위 임차인은 이날 경매 낙찰로 최우선변제금 2천700만원만 받게 돼 보증금 4천800만원을 날렸다.
또 다른 낙찰 물건인 전용 40㎡는 임차인이 직접 감정가(1억6천200만원)의 60%인 9천737만원 선에 '셀프 낙찰'을 받았다.
이 임차인의 전세 보증금은 7천만원으로, 선순위 근저당 때문에 최우선변제금 2천700만원만 받고 4천300만원은 회수가 불가능할 것으로 예상되자 스스로 낙찰을 받은 것이다.
역시 동일 주택형의 다른 아파트는 이날 경매에서 7명이 경합해 상대적으로 높은 금액인 1억1천900만원 선(감정가 1억6천200만원의 73.46%)에 낙찰됐으나, 역시 임차인은 보증금 6천만원 가운데 최우선변제금 2천700만원만 회수했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특별법 시행 이후에 진행된 경매지만 우선매수청구권은 행사하지 않았다.
지난 6월 1일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특별법 제정으로 정부와 민간 전문가들로 구성된 '전세사기피해지원위원회'는 법원에 전세사기 주택의 경매 절차 유예를 요청하고 있다. 이 경우 3개월간 경매 유예·정지가 가능하며 3개월씩 추가 연장도 할 수 있다.
위원회가 인정한 전세사기 피해자가 직접 법원에 경매 유예를 요청할 경우에는 최대 1년간 경매를 미룰 수 있다.
다만 정부가 경매 유예나 중단을 요청을 하더라도 채권자가 이를 거부하면 경매 중단 등을 강제할 수는 없다는 것이 문제다.
이날 낙찰된 주택의 경매 기일이 유예되지 않은 것에 대해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전세사기피해지원위원회가 경매 유예나 중지를 요청할 수 있지만 실제 집행은 법원 판단에 달려 있다"며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한 경우인지, 다른 어떤 사유인지는 정확한 확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지옥션 이주현 선임연구원은 "법원의 실수가 아니라면 피해자가 최소한 최우선변제금이라도 받을 수 있는 상황이어서 경매가 그대로 진행됐거나 임차인들이 우선매수청구권을 행사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며 "법원 경매 유예는 권고사항으로, 채권자가 이를 거부하면 강제할 수 없다는 것이 한계"라고 말했다.
실제 최근 제도권의 금융기관이 아닌 영세한 대부·채권추심업체들이 채권 회수를 위해 경매 유예를 거부하는 경우들이 나오고 있다.
인천지방법원 경매 2계에서 나온 인천 미추홀구 숭인동 H상복합아파트의 경우 1개의 사건으로 묶인 4건의 경매 물건 중 3건이 다음 달 13일로 경매 기일이 잡혔다.
해당 아파트 역시 전세사기 피해 주택으로 정부가 6월 19일에 전세사기피해자 지원을 위해 경매 유예 요청을 했고, 같은 달 22일에 경매 기일 변경이 이뤄졌다.
그러나 법원 문건접수 내역을 보면 대부업체가 경매 유예기간 중인 8월 25일에 법원에 경매 속행 신청서를 제출하며 경매 진행을 요구했다. 경매 절차를 더이상 미룰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자 9월 12일에 한 임차인이 전세사기 피해자 자격으로 기일 연기 신청을 했으나, 이틀 뒤인 14일 채권자가 다시 경매 속행 신청서를 법원에 제출하면서 결국 경매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이후 다른 임차인은 곧바로 전세사기 특별법에 따른 임차인 우선매수청구권 행사를 위해 우선매수신고서를 제출했다.
법원에 우선매수신고서를 제출한 임차인의 경우 전세 보증금이 8천500만원으로 선순위 근저당권이 설정된 2015년 기준으로 소액임차인 범위를 벗어나 경매에서 낙찰될 경우 보증금 전액은 물론 최우선변제금도 받을 수 없다.
이 때문에 피해를 최소화하려고 우선매수청구권 행사 가능성을 고지한 것으로 보인다.
우선매수신고서를 제출하지 않은 다른 임차인들은 다음 달 해당 주택이 제3자에 낙찰되면 선순위 근저당권자에게 우선 배당이 이뤄져 최우선변제금 2천700만원만 받게 될 전망이다.
◇ 경매 중단 강제는 못해 임차인 보증금 손실 우려…피해 최소화해야
전문가들은 채권추심업체가 확보한 물건을 중심으로 경매가 본격화하면서 전세사기 임차인들의 피해가 커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최근 수도권 집값이 상승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고금리의 장기화로 자금난을 겪고 있는 영세한 채권추심업체들이 집값 상승기를 틈타 본격적으로 채권 회수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는 게 경매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국토부에 따르면 지난 6월 전세사기피해지원위원회 출범 이후 전세사기 피해자 등의 가결 건은 총 6천627건, 긴급 경·공매 유예 협조 요청 가결 건은 총 717건에 이른다.
그러나 위원회와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경매 유예 요청을 하더라도 채권자가 채권 회수를 위해 거부하면 현실적으로 절차를 중단할 방법이 없어 앞으로 피해자 지원에 난항이 예상된다.
법무법인 명도 강은현 경매연구소 소장은 "경매 절차를 계속 미루거나 중단하는 것은 채권자의 권리를 제한하는 것이어서 강제하기 어렵고, 제도권 금융기관이 아닌 채권추심업체들은 정부의 입김이 작용하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며 "전세사기 문제로 1년 가까이 채권 추심이 지연된 대부업체들이 한계에 다다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지지옥션 이주현 선임연구원은 "전세사기 피해주택의 경매가 이어질 경우 낙찰가가 떨어질 가능성이 있고, 우선매수권 청구 의사가 없는 임차인의 경우 보증금 손실이 불가피할 것"이라며 "경매 진행에 따른 임차인 보호와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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