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적서 제출한 업체를 낙찰자로 미리 결정…'들러리 입찰'로 77건 담합
(세종=연합뉴스) 박재현 기자 = 한국전력공사가 발주한 '디지털 축소형 모자익 배전반(이하 디축배전반)' 구매 입찰에서 담합을 벌인 업체들이 공정거래위원회의 제재를 받게 됐다.
공정위는 대웅전기공업, 에스지파워텍, 삼영전기, 유성계전, 한신전기, 삼영제어, 신진전기, 청진산전 등 8개 업체에 시정명령과 과징금 8억1천700만원을 부과한다고 25일 밝혔다.
공정위에 따르면 이들 업체는 2014년 1월부터 2021년 7월까지 한전이 발주한 77건의 디축배전반 구매 입찰에서 담합을 벌였다.
디축배전반은 변전소 주 설비의 감시·제어·계측 기능을 통신방식으로 운영하는 중앙감시제어 시스템이다. 전력 계통 및 설비의 운전 상황을 모자익 그래픽 상의 램프로 표시하며, 각종 제어스위치를 내장해 운전자가 신속한 현황 판단과 제어를 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 설비는 '중소기업자 간 경쟁제품'으로 지정돼 중소기업만 공공 조달시장 입찰에 참여할 수 있다.
한전은 그동안 특정 사업자를 임의로 골라 세부 사양 등 정보를 입찰 전에 제공하고, 견적서를 제출받아 추정가격을 산정하는 방식으로 디축배전반 입찰을 진행해왔다.
입찰공고 후 실제 입찰까지 주어진 기간이 길지 않은 만큼, 사전에 한전의 선택을 받아 견적서를 제출하는 '예행연습'을 한 업체가 해당 입찰에서 매우 유리한 구조였다. 사실상 한전이 설계한 입찰 구조가 담합을 유도하는 측면이 있었던 셈이다.
이에 디축배전반을 만드는 업체들은 한전으로부터 견적서 제출을 요청받은 사업자를 해당 입찰의 낙찰자로 미리 정하고, 나머지는 들러리를 서는 방식으로 담합을 벌였다.
낙찰자로 정해진 업체는 자신이 섭외한 들러리 업체에 입찰 참가에 필요한 규격서와 입찰 가격 등을 작성해 이메일로 전달했고, 들러리 업체는 이를 그대로 활용해 입찰에 참여한 것으로 조사됐다.
한전은 현재 디축배전반을 다른 설비로 대체하고 관련 구매 입찰을 중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공정위는 "앞으로도 공고 입찰 담합에 관한 감시를 강화하고 담합이 적발될 경우 법과 원칙에 따라 엄중하게 제재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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