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27개국 회의 상징적 장면…취재진 '질문 명당' 경쟁도 치열
기약없는 '마라톤 회의'도 특징…자정 넘어서야 첫날 기자회견
(브뤼셀=연합뉴스) 정빛나 특파원 = "당신의 푸틴 대통령과 회동을 다른 EU 정상들에게는 뭐라고 설명할 겁니까?"
지난 26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 EU 정상회의 첫날.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 면전에서 한 외신 기자가 큰 소리로 물었다.
오르반 총리가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 중에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회동한 것을 두고 EU 내부에서 강한 비판이 나온다는 점을 염두에 둔 질문이다.
그러자 오르반 총리는 영어로 "우리는 그걸 평화전략이라고 부른다"며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소통 채널을 열어둘 것"이라고 거침없이 답했다.
특정 국가가 난감하거나 민감해할 만한 질문을 쏟아내고, 이를 국가 정상이 직접 답변하는 도어스테핑(약식 문답) 현장이다.
EU에서는 정상회의 때는 물론, 장관급 회의가 열릴 때도 빼놓지 않고 도어스테핑이 관행처럼 굳어졌다.
물론 지각, 다른 일정 등 여러 이유로 27개국 정상 모두가 항상 카메라 앞에 서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회원국이 많다 보니 정상 2∼3명이 일정 간격을 두고 나란히 서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는가 하면, 한꺼번에 여러 명이 도착하면 입구 쪽에서 '대기 줄'을 서는 모습도 종종 포착된다.
이날도 카야 칼라스 에스토니아 총리의 문답이 평상시보다 길어지면서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가 한동안 자신의 순서를 기다려야 했다.
각국 정상의 발언은 EU 홈페이지를 통해 생중계되며, 전 세계 외신을 통해 실시간 타전된다.
각본 없는 약식 문답 특성상 때로는 회의 결과보다도 더 중요한 '뉴스'가 등장할 때도 잦다.
이에 맨 앞줄을 차지하려는 취재진의 경쟁도 치열하다.
필자도 회의 첫날 오후 2시께부터 예고된 도어스테핑을 취재하기 위해 당일 오전 8시 현장에 도착했지만, 전날 오후부터 일찌감치 삼각대를 세워둔 각국 방송사에 밀려 끄트머리에 겨우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분기마다 열리는 EU 정상회의의 또 다른 특징은 일단 시작됐다 하면 장시간에 걸쳐 진행된다는 점이다.
이번에도 첫날 회의가 자정까지 계속됐다. 중동사태에 관한 토론만 5시간 넘게 이어지면서 일정이 크게 지연됐다.
필자가 기약 없는 기다림에 지쳐 오후 11시쯤 현장에 있던 EU 관계자에게 '기자회견은 몇 시쯤으로 예상되느냐'고 묻자 "커피 한 잔 더 마셔둬라"는 답변이 돌아오기도 했다.
결국 첫날 기자회견은 자정을 넘겨 이튿날인 27일 오전 1시가 다 돼서야 시작됐다.
비슷한 시각 스웨덴 등 일부 국가 정상들의 별도 기자회견도 야심한 새벽 시간대에 진행됐다.
회의 때마다 '마라톤 회의'가 되풀이되다 보니 언론에서는 특정 사안에 대한 회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내부 견해차가 큰 것으로 해석한다.
통합과 단결을 지향하지만, 저마다 이해관계가 복잡한 27개국이 한목소리를 낸다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한지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다만 EU는 이 같은 격론이 '통합'에 도움이 된다고 반박했다.
샤를 미셸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이날 기자들의 관련 질의에 "정상 27명이 모였을 때 5시간이면 1명당 평균 10분씩 얘기하는 것이니 그리 긴 게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장시간 토론 뒤에도 공동성명 최종안은 초안과 거의 같았다면서 이 같은 과정이 "EU를 더 단합하게 만드는 EU (정책 결정의) 유효성을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shin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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