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안정에 亞로 자원 돌리려던 美 노선 흔들…동맹국 협력축소 가능성"
전선 2개로 늘어 미 무기생산 역량도 시험대
(서울=연합뉴스) 김지연 기자 = 1년 반 넘게 계속되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이어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를 상대로 전면전을 준비하면서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을 모두 지원하는 미국이 받는 압박이 가중되고 있다.
'민주주의의 무기고'로 불리는 미국의 방산업은 우크라이나 전장에서만도 넘치는 수요를 따라잡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미 국방부는 중동에 배치된 미군 보호를 위한 방공 강화를 서두르는 가운데 친이란 세력의 미군기지 공격에 맞서 시리아에서 공습에 나서는 등 중동 대응에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있다.
아시아에서는 중국과 대만 사이 긴장이 이어지고 있다.
글로벌 분쟁과 긴장이 동시다발로 이어지는 상황에 유럽과 아시아 동맹국들 사이에서는 미국의 대응능력이 압박받고 있다는 근심이 커지고 있다고 블룸버그 통신이 2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궁극적으로 미국 동맹국들의 협력관계가 축소될 수 있고, 중국과 러시아, 이란은 그 틈을 놓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대외적으로는 미국이 약속했던 대로 모든 위협에 대응해 동맹국들을 지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안심시키고 있다. 하지만, 사석에서 바이든 행정부 당국자들은 최근의 중동 위기가 미국의 대외정책을 뒤흔들어 놓았음을 인정하고 있다고 한다.
그동안은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의 관계 정상화, 사우디와 이스라엘의 수교 협상 등 중동 정세가 예전만큼 미국이 품을 들이지 않아도 될 만큼 비교적 안정됐기에 미국은 더 동쪽으로 눈을 돌려 중국 대응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충돌이 격화되면서 미국의 이같은 방향 전환은 속도를 늦추게 됐다고 당국자들은 설명했다.
실제로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은 최근 포린어페어스에 낸 7천단어짜리 장문의 기고문에서 중동을 "수십년 만에 가장 조용하다"고 언급했던 것을 삭제해야 했다.
소식통들에 따르면 미국은 과거에 중동지역에 투입했던 외교 자원을 중국과 러시아 대응으로 돌리고 있었는데, 그 배경에는 주요 아랍국가들과 화해 무드를 조성하고 있던 이스라엘의 안보가 미국 없이도 보장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고 한다.
이같은 믿음은 지난 7일 이스라엘이 하마스의 대규모 기습을 사전에 감지, 차단하지 못하고 속절없이 당하면서 깨졌다.
결국 미국은 이란에 개입하지 말 것을 경고하기 위해 중동 지역으로 핵추진 항모와 방공 시스템을 급파했다.
그러나 이런 확전 억제 노력이 무색하게 중동에 배치된 미군을 향한 무장단체들의 공격이 이어졌고 미국은 27일 시리아 내 친이란 세력을 겨냥한 공습을 감행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중동 지상에서 미군이 싸울 일은 없다고 공언하고 있다.
그러나 부통령 시절에도 상황실에서 "강대국은 허세를 부리지 않는다"고 말한 것으로 유명한 바이든 대통령은 전쟁 억제 노력이 실패했을 때 미군이 끌려들어 갈 위험성을 충분히 알고 있을 것이라고 블룸버그는 지적했다.
당장 미국과 동맹국들이 우크라이나에 충분한 포탄 지원할 수 있는지 의구심도 제기되고 있다.
미 육군과학위원회(ASB)는 지난달 보고서에서 미국이 "탄약 증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우크라이나 전쟁이 미국 국방 공급망의 취약성을 노출했다고 지적했다.
이 보고서는 최근 전쟁 시나리오를 보면 중국의 대만 침공시 미국의 핵심 정밀·원거리 공격 무기 재고가 짧게는 수일 만에 소진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냉전 종식 이후 미국은 무기 생산 능력보다는 효율성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고, 전체 경제에서 군비 비중은 20여 년 만에 가장 작은 수준이다.
현재 미국의 방산업이 동맹국들이 동시다발로 겪고 있는 전선에 충분히 대응할 역량이 없다는 우려가 크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미국 정치매체 더힐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분쟁으로 미국의 무기 생산 능력이 시험대에 올랐다고 지적했다.
싱크탱크 애틀랜틱 카운슬의 매슈 크로닉은 이 매체에 "우리가 유럽과 중동, 아시아의 안보 이익에 부합할 만한 병력과 탄약, 방산업 기반을 실제로 보유하지 않고 있는 현실이 문제"라고 꼬집었다.
미국내 상황 역시 여의찮다. 내년 대선을 앞둔 가운데 공화당 유력 주자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가까운 강경파를 중심으로 미 하원에서는 이미 1년 반 넘게 장기화한 우크라이나 지원에 부정적인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20일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 지원, 인도·태평양 지역 안보 등을 포함한 1천50억달러(약 140조원) 규모의 안보 예산안을 의회에 제출하고 승인을 요청했다.
그러나 마이크 존슨 신임 하원 의장을 비롯한 친트럼프 의원들 중심으로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 등에 대한 지원은 분리해서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같은 국내 정치나 경제적 상황이 더해지면서 미국의 대외적 대응능력이 받는 압박은 커질 대로 커진 것으로 지적된다.
척 헤이글 전 국방장관은 블룸버그에 "미국의 통치 능력에 역사적인 불능과 분열이 목격되는 때이자 전 세계가 위험할 정도로 복잡하고 불확실한 시기에 미국은 도를 넘을 위험을 무릅쓰고 있다"고 우려했다.
cheror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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