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 민간인 참사에도 입장차만 확인하며 말싸움 되풀이
미, '무작정 휴전'에 반대 vs 러 "미, 안보리 마비시킨다"
"가자지구의 굶주림·절망이 국제사회 향한 분노로 바뀐다"
(서울=연합뉴스) 이도연 기자 = 이스라엘아 가자지구 지상작전에 따른 민간인 참상 위기가 고조되지만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의 교전중단 논의가 공회전을 지속했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유엔 안보리는 30일(현지시간)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자치지구인 가자지구에서 벌이는 군사작전을 두고 긴급회의를 열었으나 미국과 러시아의 대치 속에 결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결의안이 가결되려면 안보리 15개 이사국 중 9개국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 특히 미국, 중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등 5개 상임이사국 중 어느 한 곳도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아야 한다.
이번 회의는 가자지구의 민간인 참사를 막기 위한 인도주의적 교전중지 수용을 이스라엘에 요구하기 위해 안보리 이사국인 아랍에미리트(UAE)의 요청에 따라 소집됐다.
이스라엘은 지난 7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기습으로 민간인을 포함한 자국민 1천여명이 숨지자 하마스 전면 해체를 목표로 내걸고 근거지인 가자지구를 침공했다.
가자지구는 이스라엘의 봉쇄 속에 물자가 차단된 채 지속적인 공습과 지상작전으로 사망자가 8천명을 넘어서는 등 민간인의 위기가 극도로 악화하고 있다.
국제사회가 이 같은 상황을 우려해 인도주의 휴전을 요구하는 가운데 이번 회의에서 강제력을 지닌 안보리의 결의가 나올지 주목됐다.
그러나 상임이사국으로 결의를 좌우하는 미국과 러시아는 이번에도 자국 입장만 고집해 논의는 헛바퀴를 돌았다.
미국은 하마스를 완전 해체하는 데 힘을 보태야 하고 이란과 그 대리세력을 통제해야 한다는 이스라엘의 입장을 강변했다.
그간 미국은 하마스 제거를 위한 이스라엘의 자기방어권을 명시하지 않은 일반적 휴전에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린다 토머스-그린필드 유엔 주재 미국 대사는 이 결의안이 "극도로 일방적이며 '하마스'와 '인질'이라는 두 단어를 고의로 누락했다"며 "하마스의 행동을 총회가 규탄하지 않는 것은 비양심적"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시리아와 이란의 지원을 받는 '테러 단체'가 시리아 영토에서 이스라엘을 향한 공격을 통해 가자 분쟁을 확대하겠다고 위협하고 있다"며 "시리아 정권이 이란이 지원하는 무장단체의 활동을 막고 시리아 영토를 통한 외국 무기와 전투기의 유입을 막고 골란고원에서의 확전 행동을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토머스-그린필드 대사는 미국이 시리아 내 미국인과 미국 시설에 대한 공격에 대해 계속 대응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러시아는 미국이 이스라엘 입장만 강조하면서 안보리를 마비시켰다고 비판했다.
바실리 네벤자 주유엔 러시아 대사는 "우크라이나 관련 안보리 회의 때마다 유창하게 표현했던 민간인들에 대한 동정심은 어디 갔나"라며 "팔레스타인인들의 목숨이 미국에서는 아무런 감정도 불러일으키지 않나"고 반문했다.
네벤자 대사는 이스라엘이 시리아 내 시설을 공격했다며 미국의 시리아 공격은 "불법적 행동이며 시리아의 주권에 대한 심각한 침해"라고도 말했다.
지구촌 안보와 경제를 위협하는 이번 사태에 대한 유엔 회원국들의 염원은 이번에도 안보리 강대국의 입장에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앞서 유엔 회원국들은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지상전 규모를 확대하자 지난 27일 긴급 총회를 열었다.
회원국들은 가자지구에 대한 인도주의적 접근을 위해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즉각적인 휴전을 촉구하는 내용의 결의안을 찬성 120표, 반대 14표로 채택했다.
미국 등 14개국은 하마스의 테러 행위를 규탄하는 내용 등이 포함되지 않았다며 반대표를 행사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과 관련해 군사 행위의 일시 중지 또는 휴전을 촉구하는 안보리 결의안이 그간 네 차례 제출됐지만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미국과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로 부결됐다.
지난 25일에도 미국과 러시아가 자국 입장을 반영한 안보리 결의안 초안을 각각 작성해 제출했지만, 상대방의 결의안에 대해 반대 입장을 고수해 접점을 찾지 못했다.
안보리 논의가 공회전하자 유엔 전문기구에서는 우려와 탄식이 쏟아졌다.
필립 라자리니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구호기구(UNRWA) 집행위원장은 이날 안보리 회의에서 "가자지구의 굶주림과 절망이 국제사회에 대한 분노로 바뀌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라파 국경을 통과하는 소수의 트럭은 가자에 갇힌 200만명 이상의 (인도주의적) 수요를 고려하면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마틴 그리피스 유엔 인도주의·긴급구호 사무차장은 성명을 통해 "까자지구에서 사람들이 공포의 규모를 다 표현하기는 어렵다"며 "의료 시스템이 망가졌다"고 전했다.
그는 "이 환자들이 갈 수 있는 안전한 곳은 어디에도 없다"며 "생명 유지 장치에 의존하는 환자들과 인큐베이터에 있는 아기들에게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은 사형 선고나 다름없다"고 호소했다.
dy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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