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정착민, 전쟁 이후 면죄부 받은 듯 행동"…팔 주민 7명 살해
이스라엘 경찰도 폭력행위 비호…바이든 "극단적 정착민에 책임 물어야"
(서울=연합뉴스) 박진형 기자 =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지상전을 본격화한 가운데 요르단강 서안지구(이하 서안지구)에서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땅을 빼앗으려는 유대인 정착민(이하 정착민)들의 폭력이 극심해지면서 주민들의 인명피해가 크게 늘고 있다.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지난 7일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한 이후 팔레스타인 주민들에 대한 정착민들의 폭력행위가 기록적인 수준으로 늘었다고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가 3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국제사회의 관심과 이스라엘군 병력이 가자지구에 집중된 사이 서안지구에서 정착민들이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상대로 폭력을 더 자주, 더 강하게 휘두르고 있으며, 이스라엘 경찰도 주민들을 보호하기는커녕 오히려 표적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인권단체 '벳셀렘'에 따르면 하마스의 공격 이후 서안지구의 팔레스타인 주민 최소한 7명이 정착민들에 의해 피살됐다.
또 유엔에 따르면 이 기간 이스라엘 군경에 피살된 팔레스타인인도 100명이 넘고, 500여명은 살던 곳에서 쫓겨난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 28일에는 한 정착민이 올리브를 수확하던 팔레스타인 주민 빌랄 살레(38)를 총으로 쏴 숨지게 했다.
당시 출동한 이스라엘 경찰은 현장에 있던 사망자의 형제인 하셈 살레에게 목격자 증언을 요청했다.
그러나 하셈이 경찰차에 다가서자 제복 차림의 경찰관들이 아직 사망자의 피가 묻어 있는 셔츠 차림의 그에게 수갑을 채우고 트럭에 밀어 넣어 끌고 갔다. 이후 경찰은 하셈을 하마스 지지 혐의로 붙잡고 있다고 밝혔다.
평소 정착민들이 팔레스타인 농부들을 자주 괴롭히기는 했지만, 이번 사망 사건으로 지역사회가 충격을 받았다고 사망자의 친척들과 이웃들은 말했다.
하셈은 경찰에 끌려가기 전에 WP 기자에게 "그들이 우리를 향해 총을 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며 "그들이 총을 쏜 뒤에도 난 형제가 땅에 쓰러진 것을 알아차리기 전까지 총을 맞은 줄 몰랐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정착민 그룹 지도자인 요시 다간은 페이스북에 올린 영상에서 그 정착민이 "하마스 지지자 수십 명에게 돌로 공격을 당하다가" 자기방어를 위해 총을 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인권단체 벳셀렘은 정착민들이 위협과 폭력으로 팔레스타인 주민을 거주지에서 몰아내는 상습적인 수법을 쓰면서 국제사회 관심이 가자지구에 쏠린 틈을 타 면죄부라도 받은 양 행동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벳셀렘 대변인은 정착민들의 "공격 범위가 넓어지고 있으며 공격 심각성도 커지고 있다"며 서안지구가 "서부 개척 시대 같은" 무법천지가 됐다고 평가했다.
서안지구 중심 도시 라말라 동쪽 마을의 주민 타리크 무스타파는 하마스의 공격 이후 무장한 정착민들이 거의 매일 마을을 배회하면서 주민들에게 떠나지 않으면 살육을 자행하겠다고 위협하자 결국 가족과 함께 달아났다.
정착민들은 그에게 "여기서 나가. 요르단으로 가라"고 외치고 그의 거처를 부쉈으며, 한 정착민이 무스타파의 차를 몰고 가버려 그는 아내, 세 자녀와 함께 가까운 마을까지 걸어가야 했다.
무스타파는 이스라엘 경찰에 전화해서 신고하려고 했지만 경찰관이 전화를 끊어버렸다며 "가자지구 전쟁이 정착민들에게 '파란불'을 켜줬다"고 한탄했다.
이런 정착민들의 폭력에 지난해 12월 집권한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의 극우 연정도 일조하고 있다.
정착민 출신의 극우 인사인 이타마르 벤 그비르 국가안보장관의 주도로 정부가 정착민들에게 무기를 지급하면서 정착민 무장 자경단이 늘어나고 더 조직화하고 있다고 WP는 설명했다.
서안지구에서 유대인 인구는 올해 초 50만명을 넘긴 가운데 정착민들은 정부의 비호 아래 정착촌 확장을 거듭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측은 극단주의적인 정착민들이 하마스의 공격을 자신들의 목적인 땅 빼앗기에 이용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지난 25일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정착민들의 폭력이 이미 타오르는 불길에 "휘발유를 끼얹고 있다"며 드물게 직접 비판에 나섰다.
바이든 대통령은 "서안지구에서 팔레스타인 주민을 공격하는 극단주의적 정착민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이는 중단돼야 하며 그들에게는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jhpar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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