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임상수 기자 = 국제신용평가사 피치가 석유·가스회사 등 화석연료 업종 기업의 상당수가 향후 저탄소 시대에 제때 적응하지 못하면 신용등급 강등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31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피치가 갈수록 엄격해지는 배출규제 등 기업의 기후변화 대응에 대한 분석 결과, 석유·가스 기업들이 가장 취약한 것으로 조사됐다.
등급 평가를 받는 글로벌 기업의 20% 이상이 향후 10년간 기후변화 관련 위험이 커짐에 따라 신용등급 강등 위기에 직면해 있는 것으로 조사됐으며, 이중 절반이 석유·가스 업종이었다.
석탄과 유틸리티 기업 역시 상대적으로 높은 강등 위험에 노출된 것으로 파악됐다.
게다가 715개 표본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기후 위험으로 인해 강등 가능성에 직면해 있는 기업의 절반 이상이 현재 투자 등급 기업이었다고 피치는 지적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30년 이전에 전 세계 석유 수요가 정점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으나 일각에서는 그 시기가 앞당겨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피치는 2025년에 정점에 달하고, 이후 20년간 수요가 60% 이상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피치의 기업평가 부문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담당 소피 쿠토 총괄은 "수요감소 폭이 엄청나게 클 것"이라며 "기업들이 적응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피치의 경고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화석연료 가격이 치솟는 에너지 위기가 촉발된 후 석유업계가 투자를 크게 늘리는 가운데 나왔다.
하지만 최근 영국의 글로벌에너지기업 BP가 가스 수익 저조로 시장의 예상치를 밑도는 실적을 발표하고, 일부 애널리스트들은 유가 100달러 가능성도 갈수록 낮게 보는 등 그동안 막대한 규모를 자랑했던 화석연료 수익은 줄어들 조짐을 보이고 있다.
피치는 또 주요 석유·가스 기업들이 아직 완전하게 개발되지 않은 탄소 포집 기술을 사용해 향후 배출량 감축을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지만 실현 가능한 탄소 배출량 감축 계획을 마련할 수 있는 시간도 부족하다고 경고했다.
이런 가운데 기후 리스크가 이미 신용평가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징후도 나타나고 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2015년 파리협약 이후 기후 리스크에 노출이 많이 된 기업들의 신용등급이 이에 빠르게 적용한 동종기업에 비해 하락한 사실을 확인했다.
또 캐나다 은행의 7월 보고서에 따르면 기후변화나 경기침체 등 신용 전환 리스크가 높은 기업에 투자할 때 보증보험이나 신용부도스와프(CDS) 등 신용보증을 위해 상당한 추가 비용을 지불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와 함께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도 규제 및 정책 리스크를 기업의 신용 평가에 가장 중요한 항목으로 보고 있다고 밝히는 등 기후 리스크가 신용평가사의 평가모델에 주요항목으로 포함되고 있다고 블룸버그는 덧붙였다.
nadoo1@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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