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극우, 反이민 조장·선동…눈감은 '반이민' 伊 정부, 조치 없이 방치
시위대에 쫓기는 마크롱·폭언하는 英노동당 대표…"선거가 내일이라면" 아찔
英 안전기관 설립·정상회의 개최, AI 대응 전면에…마약·난방규제 등 소재 안가려
(유럽 특파원 종합=연합뉴스) 유럽에서는 내년 총선이나 지방선거를 앞두고 반(反)이민·극우 정당 등이 가짜뉴스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독일에서 급부상 중인 극우 정당이나 이탈리아에서 집권한 극우 정부가 노골적으로 가짜뉴스를 이용하거나 방치해 반이민 여론을 조성하는 경우가 대표적 예다.
분노한 시위대에 쫓기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나 직원에게 폭언하는 영국 노동당 대표 등 인공지능(AI)을 활용해 만든 정치지도자 관련 딥페이크도 성행하고 있다.
유럽 각국 정부는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가짜뉴스에 대항해 관련 법안을 제정, 가짜뉴스가 공공의 안녕이나 선거의 공정성을 해치지 못하도록 대응을 서두르고 있다.
◇ 가짜뉴스 이용·방치하는 유럽 극우…'반이민' 여론 선동
"더 많은 난민은 안된다"
최근 급부상하고 있는 독일 반이민 극우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의 연방하원 원내부대표가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진에는 이런 구호와 함께 공격적으로 소리 지르며 달려드는 것으로 보이는 성난 표정의 남성들이 담겼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널리 확산한 이 사진은 '난민 반대'라는 메시지를 뒷받침하기 위해 인공지능(AI)으로 만들어낸 사진이다. AI가 만든 것을 증명하듯 일부 얼굴들은 변형됐고, 모든 사람이 입을 벌리고 있으며, 가장 앞쪽의 사람은 손가락이 여섯개인 것으로 보인다.
사진 속 남성들은 피난 이력이 있는 사람들에 대한 기존의 편견에 더해 의식적으로 불안과 선동을 부추길 수 있도록 합성된 것으로 분석됐다.
노르베르트 클라인뵈히터 AfD 원내부대표는 오히려 "전형적인 사진을 만들어주는 신기술에 매우 고맙다"고 밝혔다.
내년 구동독 지역 선거를 앞두고 AfD의 지지율이 23%까지 급상승하면서 독일은 이러한 가짜뉴스 퇴치에 비상이 걸렸다.
독일 내무부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위협이 고조된 가운데 관련 부처와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특히 러시아발 가짜뉴스에 대한 감시를 강화했다.
독일 정부는 또한 SNS를 통한 가짜뉴스와 음모론 확산을 제지하기 위해 대형 온라인 플랫폼의 책임을 묻고 있다. 독일에서 영업하는 대형 온라인 플랫폼은 네트워크시행법에 따라 이용자들의 불만을 빠르게 처리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이와 함께 유럽연합(EU) 차원의 디지털서비스법(DSA)에 따라 대형 온라인 플랫폼들이 가짜뉴스를 통해 돈을 버는 것을 방지하고, 오해로 이어지거나 틀린 정보를 신고할 기회를 더 제공한다는 방침이다.
아프리카 대륙과 가까운 이탈리아 최남단 람페두사섬에는 지난 9월 11∼13일 사흘 동안 섬 인구 6천명보다 많은 8천500명의 이민자가 상륙했다.
워낙 많은 이민자가 한꺼번에 몰려들면서 시스템이 무너져 대혼란이 발생했다. 당시 SNS에는 이러한 혼란을 틈타 가짜뉴스가 범람했다.
엑스(X·옛 트위터)에 올라온 한 동영상은 람페두사섬에 도착한 이민자들과 경찰관들이 격렬하게 충돌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영상에 등장한 경찰차가 이탈리아 군사경찰대인 카라비니에리 차량이 분명했기에 SNS 이용자들은 람페두사섬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이 영상은 2년 전인 2021년 8월 람페두사섬이 아니라 이탈리아 중부 마르케주의 몬돌포에서 촬영된 것이었다.
람페두사섬 이주민들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영상이 람페두사섬 이주민 소요 사태 영상으로 둔갑한 것이다. 해당 영상은 조회수 130만회를 기록한 뒤 삭제됐다.
람페두사섬과 관련한 허위 정보들은 이탈리아는 물론 유럽 전체가 직면한 이민자 위기를 과장하고, 이민자와 관련해 부정적인 이미지를 퍼뜨린다.
이탈리아 정부는 이러한 이민자 관련 가짜뉴스에 별다른 조처를 하지 않은 채 방치했다. 이를 두고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관계와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뒤따랐다.
지난해 10월 취임한 조르자 멜로니 총리는 강경한 반이민 공약을 앞세워 집권에 성공한 뒤 이를 밀어붙이기 위한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
◇ 분노한 시위대에 쫓기는 가짜 마크롱·폭언하는 딥페이크 英노동당 대표
올해 초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추진한 연금 개혁에 반대하는 시위가 전국적으로 벌어졌을 때 SNS에는 마크롱 대통령이 분노한 시위대에 쫓기거나 환경미화원 복장을 한 사진, 경찰에 제지당하는 사진 등이 대거 올라왔다.
마크롱 대통령의 생생한 표정, 현실적인 주변 환경 등 언뜻 보면 '무슨 일이 벌어진 건가' 싶을 정도로 감쪽같지만, 모두 인공지능(AI)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프랑스는 가짜뉴스에 대응하기 위해 2018년 3월 '정보조작방지법(가짜뉴스 방지법)'을 마련, 국회 통과 등의 절차를 거쳐 그해 12월 말 시행에 들어갔다.
가짜뉴스를 이용해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치려는 시도를 막으려는 목적이 컸다.
이 법은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유포된 가짜뉴스가 공공의 안녕이나 선거의 공정성을 해친다고 판단되면 담당 판사가 48시간 이내에 가짜뉴스 유포 중단을 명령할 수 있는 약식절차를 도입했다.
영국도 내년으로 예상되는 총선을 앞두고 가짜뉴스에 경계심을 키우고 있다.
지난달 초 제1야당인 노동당의 키어 스타머 대표가 직원에게 폭언하는 음성 파일이 소셜미디어에 퍼졌다. 마치 몰래 녹음한 것 같은 이 오디오는 사실은 인공지능(AI)을 이용해 만든 딥페이크였다.
이 음성이 사실이 아니라는 점은 얼마 지나지 않아 밝혀졌지만, 민주주의 본산지로서 자부심이 큰 영국인들은 크게 긴장했다.
노동당은 다음 선거에서 승리해 2010년 이후 처음으로 정권을 잡을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이다.
노동당 예비내각의 기술 및 디지털 장관인 알렉스 데이비스-존스 의원은 "위협적인 것은 선거 전날이나 당일에 이런 일이 생기면 어떻게 되느냐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아이뉴스가 지난달 27일 보도했다.
딥페이크와 관련해서 BBC와 상원에 자문하는 AI 전문가 헨리 에이더는 "딥페이크는 정치와 언론 전반의 신뢰를 손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영국에선 코로나19 때 백신 등과 관련해 유명인의 발언, SNS 등을 통한 거짓 정보가 이슈가 되기도 했다.
영국 정부는 지난달 26일 발표한 AI 보고서에서 "생성형 AI는 허위 정보와 잘못된 정보의 규모, 설득력, 빈도를 높이는 데 쓰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와 관련, 영국 정부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AI 안전 기관을 세우고 이달 1∼2일 AI 안전 정상회의를 개최, AI 규제에 관해 논의하는 등 AI의 위협 대처에 적극 팔을 걷어붙이며 전세계 주도권 경쟁에 뛰어든 모양새다. 미국, 중국, 유럽연합(EU), 영국 등 주요국은 AI가 심각한 피해를 초래할 수 있다며 처음으로 공동선언을 통해 협력을 다짐했다.
다음 AI 안전 정상회의는 6개월 후 한국에서 열린다.
◇ 프랑스 좀비마약부터 스위스 난방규제까지…가짜뉴스 '무한 확장'
지난 9월초 프랑스에서는 소셜미디어상에 의문의 동영상 두 편이 올라와 논란이 됐다.
한 영상에는 루앙시의 거리에서 대낮에 한 여성과 젊은 남성이 어색한 자세로 걷는 모습이 담겨 있었고, 또 다른 영상에는 역시 루앙의 트램에 두 남성이 미동도 없이 앉아있는 장면이 등장했다.
두 영상에 공통으로 붙은 설명은 이른바 '좀비 마약'이었다.
미국에서 논란이 된 좀비 마약, 즉 펜타닐이 프랑스에까지 퍼져 루앙시를 중심으로 좀비 마약 복용자가 늘고 있다는 취지의 영상이었다.
두 영상은 즉시 소셜미디어에서 빠르게 퍼져나갔고, 심지어 한 TV 채널의 심야 토크쇼에서까지 방송됐다.
SNS에서는 '진짜 펜타닐이 프랑스에 퍼지고 있는 것이냐'는 물음들이 쏟아졌다.
그러나 이 두 영상과 수반된 설명은 모두 '가짜'였다.
첫 번째 동영상 속 여성과 남성은 걸음걸이와 몸놀림이 불편한 장애인들이었고, 두 번째 동영상 속 남성들은 술에 취해 잠들어 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 SNS상에서 좀비 마약 중독자로 취급받은 것이다. 루앙시도 한순간에 '마약 좀비'들이 거리를 활보하는 도시가 됐다.
사회 불안이 커지자 프랑스 마약 및 약물중독 감시 센터(OFDT)는 "펜타닐은 프랑스 내에서 발견된 적이 없다. 현재까지 이 약물은 미국에서만 사용되고 있다"며 진화에 나섰다.
두 영상을 사실확인도 없이 그대로 방송에 내보낸 토크쇼는 규제 당국의 조사를 받았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후 첫 동절기를 앞둔 작년 10월께 스위스에서는 연방정부의 난방 규제를 둘러싼 허위 정보가 소셜미디어를 통해 돌아다녔다.
전쟁이 유럽 전반에 에너지 위기를 초래하면서 스위스 연방정부가 실내 난방 온도를 19도 이하로 규제하고 이를 어긴 사례에 대해 신고를 접수한다는 내용이다.
실상은 연방정부가 각 가정에 겨울 실내 난방을 19도 이하로 할 것을 권고한 게 전부이지만 강제적 난방 규제와 신고제 도입이라는 허위 정보를 담은 가짜 정책 포스터가 버젓이 만들어져 온라인 공간을 누볐다.
경찰은 허위 포스터 작성·유포자를 단속했고, 연방정부는 이런 사실이 허위임을 거듭 알렸다.
(런던 최윤정, 파리 송진원, 베를린 이율, 제네바 안희, 로마 신창용 특파원)
yulsid@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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